이름은 하나, 후보는 둘···'솔로몬의 지혜' 필요한 일본 기명식 투표?

2021.10.25 15:23 입력 2021.10.25 15:27 수정 김혜리 기자

유권자들이 투표용지에 뽑고자 하는 후보의 이름이나 정당명을 자필로 적는 기명식 투표를 고집해온 일본이 31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같은 선거구에서 똑같은 이름의 후보 두 명이 출마했기 때문이다.

시마네현 제1구 중의원 선거에 ‘카메이 아키코’란 이름의 후보 두 명이 입후보했다고 산케이신문은 25일 보도했다. 두 사람은 입헌민주당의 카메이 아키코(56)와 무소속 신인 카메이 아키코(64)다. 둘의 이름은 한자로 표기하면 각각 ‘亞紀子’, ‘彰子’이지만 발음은 ‘아키코’로 같다.

시마네현 제1구 중의원 후보들. 순서대로 입헌민주당의 카메이 아키코, 자유민주당의 호소다 히로유키, 무소속 카메이 아키코. | 일본 트위터 갈무리

일본에선 기명식 투표로 선거가 진행되는 만큼 31일 투표에서 혼란이 예상된다. 투표 용지에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로 ‘카메이 아키코’라고 적어서 어떤 후보를 뽑았는지 판별할 수 없으면 각 후보자의 확인 가능한 득표수에 따라 표를 나누는 ‘안분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카메이 아키코(56)가 40표, 카메이 아키코(64)가 10표를 얻은 게 확인되면 ‘카메이 아키코’라고만 쓰인 표는 각각 득표율에 따라 0.8표, 0.2표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일본 선거에선 득표수가 소수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같은 이름의 후보가 두 명 출마해 안분표가 발생한 전례도 있다. 2019년 11월27일에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시즈오카현 제4구 후보로 두 명의 ‘다나카 켄’이 입후보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야당 4당이 추천한 무소속 신인 다나카 켄(43)이 먼저 입후보했고 ‘NHK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당’에선 “완전히 같은 이름의 후보가 출마하면 표가 어떻게 갈라지는지 시험해 보겠다”며 동성동명의 다나카 켄(54)을 출마시켰다. 둘은 한자로 표기한 이름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둘을 구분하기 위해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연령도 표시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의 공직 선거법은 후보자의 성명 외 다른 글자가 적힌 투표용지는 원칙적으로 무효 처리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직업·신분·주소 등을 기입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인정했다. 당시 선관위는 “연령도 신분의 종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연령 없이 ‘다나카 켄’이라고만 쓰인 3708개의 표는 각 후보의 득표수에 따라 나뉘어 다나카 켄(43)은 약 3550표, 다나카 켄(54)은 약 157표를 얻었다.

다만 현 선거관리위원회는 별다른 방침을 공지하지 않고 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후보에게만 주목이 가면 공평성이 결여된다는 이유다. 선관위는 투표용지에 각 후보자의 나이를 기입해 달라는 공지도 아직은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시마네현 제1구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무소속 카메이 키메코의 포스터. | 일본 트위터 갈무리

시마네현 제1구 중의원 후보들의 포스터. | 일본 트위터 갈무리

한편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시마네현 제1구의 두 후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갑자기 입후보 선언을 한 무소속 신인 카메이 아키코(64)가 홍보용 포스터를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하고 별다른 선거활동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입헌민주당의 카메이 아키코를 방해하려는 여당의 작전이 아니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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