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왈저 “나토 확장이 우크라전 촉발? 동의 못해···안보, 러 아닌 동유럽이 필요”

2022.04.25 21:56 입력 2022.04.25 21:58 수정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인터뷰 - ‘정의전쟁론’ 마이클 왈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명예교수

마이클 왈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사회과학 명예교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제공
■마이클 왈저

1935년 미국의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낸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다. 그는 정의로운 전쟁과 그렇지 않은 전쟁에 대한 이론을 세웠을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정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회운동, 페미니즘까지 폭넓은 주제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해왔다. 왈저는 모든 전쟁을 부정하는 평화주의와 모든 전쟁이 정당화된다고 보는 현실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전쟁 개시, 전쟁 수행, 전쟁 종결 등 전쟁의 각 국면에 대해 정의로운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민주적 좌파’를 위한 정치문화 잡지 ‘디센트’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저술과 인터뷰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1960년대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에 적극 가담한 이후 사회운동에 꾸준히 참여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도 사회운동을 위한 실용적인 조언을 기술한 <운동은 이렇게>이다.


‘우크라인은 러시아인’이란 푸틴 주장 맞선 저항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전쟁 증명
러는 핵보유국, 서방의 직접 파병은 위험…휴전 가능성 높지만 휴전은 오래 못 갈 것

민주주의에서 ‘사회운동’은 억압받고 소외된 시민들에게 정치 참여의 길을 열어줘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힘과 복지국가화 모두서 실패…불평등에 대처할 정치가 필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24일을 기점으로 석 달째에 접어들었다. 전쟁 초기 미국과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이 전쟁을 촉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민간인 피해를 멈추려면 우크라이나가 양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의전쟁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진보적 정치이론가 마이클 왈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명예교수(87)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와 동유럽의 안보와 주권을 위협하는 것은 러시아이며,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도 러시아인데 비판의 대상을 잘못 찾았다는 것이다. 왈저 교수는 1960년대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에 적극 가담한 이후 사회운동에 꾸준히 참여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경향신문은 지난 20일(현지시간)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e메일을 통해 왈저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의미와 전망, 사회운동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등에 관해 물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 “러시아 목적은 우크라이나를 위성국가로 만드는 것”

- 당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부정의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침공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강요했다. 만약 그들이 싸울 이유가 없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내심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저항도 공격도 없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이야말로 이번 전쟁이 부정의하다는 것을 증명한다.”(왈저 교수는 지난달 ‘우크라이나인들의 정당한 전쟁’이란 제목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의 명분뿐 아니라 민간인 학살, 마리우폴 등 주요 도시에 대한 전면 포위와 민간인 고사 작전 등 수단에서도 정의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 이번 전쟁과 다른 전쟁들의 차이점이나 공통점은 무엇인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는 다르고 1939년 소련의 핀란드 침공과 유사하다. 2003년 이라크에서는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미국의 침공을 환영했다. 하지만 1939년 소련이 침공하자 핀란드는 강력하게 저항했다.”(1939년 11월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해 1940년 3월13일까지 ‘겨울전쟁’이 이어졌다. 러시아 제국에 속해 있다가 1917년 러시아 내전을 배경으로 독립한 핀란드를 소련이 침공한 전쟁으로, 핀란드는 결국 소련에 항복하고 영토 일부를 양보해야 했다.)

-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자초했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과 유럽이 나토 확장을 추진하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시도한 것이 러시아의 안보 불안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과 좌파 성향 학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나온다.

“현실주의자들의 입장은 소련에 세력권을 부여한 얄타에서 이미 시도됐다(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의 최고 지도자들이 크름반도 얄타에 모여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처리와 관리에 대해 의견을 나눈 회담을 말한다. 당시 독일 분할, 폴란드 일부 영토의 소련 병합 등이 합의됐다). 이후 소련이 세력권 내에서 보여준 행동들은 잔인하고 권위주의적인 위성국가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저항을 낳았다. 그리고 그것이 (동유럽 공산 독재 정권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1989년 이후 나토 확장 요구로 이어졌다. 안보를 필요로 한 것은 동유럽이지 러시아가 아니었다. 좌파들의 경우 여전히 러시아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 아니면 단순히 미국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자동적으로 반대한다. 하지만 해당 국가 인민과 상의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또는 다른 나라를 다시 러시아에 넘겨준다는 것은 분명히 민주적이지 않고 좌파적이지도 않다.”

-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는 보내지만 군대는 보내지 않고 있다. 올바른 대처인가.

“그렇다. 무기와 자발적인 의용군은 지원해야 하지만 러시아가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군대를 직접 파병하는 것은 위험하다. 조심스럽게 관여하면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계속된 항전이 민간인 희생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언제든 항복하면 살육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항은 우크라이나인들의 분명한 권리이며,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러시아인들이다. 민간인 살해에 대한 비난은 러시아를 향해야 한다.”

-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양보함으로써 물러설 명분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러시아의 목적은 우크라이나를 복속시켜 위성국가를 만드는 것이며, 돈바스 지역 점령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첫번째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돈바스 지역에 일종의 자치를 부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그렇게 해왔는데 러시아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날까.

“최종 해결보다 휴전의 가능성이 더 높지만 휴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잔류한다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완화해선 안 된다. 제재의 지속은 아마도 푸틴 이후 러시아 정부로부터 모두의 주권을 보장하는 최종 해결책이 나오도록 압박할 것이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더 가까워졌다. 반면 중국·러시아와 미국의 대결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국제질서가 신냉전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에 동의하나.

“잘 모르겠다. 지금은 패권이 둘이 아니라 셋이며, EU가 이 상황에 잘 대처한다면 넷이 될 수도 있고, 동맹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새로운 형태의 협력을 강요할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사에서 어떤 사건으로 규정될 것인가.

“어떻게 종결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러시아가 이긴다면 역사에는 스페인 내전처럼 그려질 수 있다(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이 1936년 스페인 좌파 인민전선 정부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켜 시작된 전쟁. 소련과 각국에서 몰려든 의용군으로 구성된 국제여단이 인민전선을 지원했고,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 등 파시스트 진영이 프랑코파를 지원했다. 1939년 프랑코파가 승리해 스페인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섰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주권국가로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면 더 나은 국제질서를 위한 신호로 비칠 것이다. 특히 대만 문제를 고려해보면, 중국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역사적 중요성을 결정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 “사회운동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집중돼 있고 구체적”

- 당신은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저서 <운동은 이렇게>(원제 Political Action)에 성찰의 결과를 적었다. 민주주의에서 운동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나.

“공통의 목적, 다시 말해 공유하는 이익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둘 다를 위해 시민들을 동원하는 집단행동 방식으로서 운동의 기원은 19세기 노동운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선거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대중적 인기를 위한 계산에 의해 좌우된다. 운동은 억압당하거나 주변부로 밀려났던 또는 새로운 이익과 생각들에 정치적 길을 열어준다. 운동은 수동적이었던 시민들을 참여로 이끌고, 이들은 사회운동에서 정당으로 옮겨갈 수도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를 더욱 참여적으로 만든다.”

- 최근에는 운동이 과거처럼 폭넓은 지지를 얻는 사례가 드물어 보인다. 미국의 운동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일관된 운동 정치가 약화되거나 부재하는 현 상황을 낳은 원인은 여러 가지다. 미국에서는 극도로 당파적인 정치가 많은 이들의 의욕을 꺾었다. 지도부에 대한 고려가 없는 최신 좌파 이데올로기는 조직화를 어렵게 만든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전국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어떤 조직 구조도 없었고 지속될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노동운동 역시 급속하게 쇠퇴했는데, 현행 법률과 법원 판결은 대기업들이 노조 결성 시도를 억압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 2020년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M)’ 시위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의미와 한계는.

“BLM 역시 전국 단위 구조나 조직의 지도자, 현장을 통제하는 강력한 윤리적·정치적 규율이 없는 조직적 취약성 때문에 시달렸다. 1960년대 민권운동이 형성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행진 진행요원 같은 것을 BLM 시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약탈과 방화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분명히 미국의 인종차별이 요인이었는데 마틴 루서 킹은 어떤 식으로든 이를 초월했지만, BLM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당신은 운동을 조직할 때 인터넷이 대면 접촉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이 운동과 정치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소셜미디어의 영향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보인다. 소셜미디어는 시민을 파편화시키고, 이데올로기를 가로지르는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들며, 그들만의 ‘팩트’를 간직하는 집단을 창조함으로써 이런 집단을 쉽게 동원할 수 있게 해준다. 민주주의가 너무 시끄러워져서 모두가 괴성을 지르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최근 미국에서 일부 나타난 노조 설립 성공 사례들은 지역 차원에서 작은 규모의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어떻게 하면 전국 차원에서 이런 것을 효율적으로 이뤄낼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 당신은 운동이 선거(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거나 바람직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운동과 정치의 관계는 양면적으로 보인다. 운동과 정치는 서로 급진주의와 기회주의를 비판한다. 동시에 운동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가 담합해 자리와 이권을 나누기도 한다. 운동과 정당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일까.

“정당은 기회주의적이고, 운동은 덜 그렇다. 정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포괄적이지만, 운동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집중돼 있고 구체적이다. 둘은 서로 다르고 달라야 한다. 정당은 선거 승리가 목표지만 운동은 대의의 증진이 목표다. 그러나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방식이고, 급진적인 운동가들은 그들의 대의가 정당의 강령에 포함되도록 하려면 정당에 가담할 필요가 있다. 급진파는 타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미국에서 민주당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노동운동은 그들의 어젠다를 민주당 강령에 일부 포함시킬 때가 있었고,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일부가 이행된 적도 있다. 운동이 약할수록 타협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운동은 원외 활동이지만 필수적으로 의회 정치와 관련을 맺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반의회 운동은 권위주의적 지배를 목표로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정치적 양극화가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큰 위협으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정치는 경쟁 상대의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극한 투쟁처럼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리 혐의를 받는 전임 대통령들이 자살하거나 수감되는 것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자 결과로 지목된다. 정치에서 적대와 증오를 낮추고 생산적인 경쟁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치 생활에서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공직의 순환은 규범이다.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가는’ 대신 ‘권력을 잃고 집으로 간 다음 선거에서 도전’하는 것이 규칙이 돼야 한다. 당파적 호전성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을 예로 들자면 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그는 감옥에 가는 게 마땅하지만 그가 선거에서 패배하고,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새로운 선거에서 또 패배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더 좋다.”

- 부패한 엘리트와 민중의 단순 대립 구도를 부각하고 동원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노동운동 등 전통적 진보 세력의 쇠퇴가 포퓰리즘 정치의 확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한국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파 활동가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른 나라 활동가들에게 조언을 하기는 어렵다. 해당 국가의 환경과 정치 문화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사민주의와 제휴된 운동이 포퓰리즘적 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이라는 데 동의한다. 더구나 공직에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할 준비가 더 잘 돼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은 노동자, 특히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불가피한 변화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신뢰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좋은 출발점은 신자유주의 독트린과 결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좌파들에게 재앙이었다.”

- 신자유주의와 결별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설명해달라.

“신자유주의와의 결별은 힘과 복지에 모두 해당된다. 노동의 힘을 강화하고, 노조 조직화를 쉽게 만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불평등에 대처하고 경제에서 힘의 균형을 변화시키기 위한 최선의 길이다.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잘 작동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인종과 젠더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효과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보건의료 서비스가 중요하다. 미국에서 불평등은 계급은 물론 인종적 함의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두 측면에서 모두 실패했으며, 우리는 두 전선에서 작동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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