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존’으로 시작된 미·일 동맹, 70여년만의 대전환 이뤄질까

2023.01.12 16:35

독일-일본 합동 군사훈련이 열린 28일 일본 후지산 상공으로 일본 자위대 소속 F-2 전투기와 독일 공군 소속 유로파이터 전투기 편대가 비행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미지 크게 보기

독일-일본 합동 군사훈련이 열린 28일 일본 후지산 상공으로 일본 자위대 소속 F-2 전투기와 독일 공군 소속 유로파이터 전투기 편대가 비행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2+2 회담은 일본이 지난해말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를 천명한 뒤 가진 미국과의 첫 고위급 회담이란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 열리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방위력 증강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번 회담을 시작으로 반격 능력의 실제적 운용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논의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개정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일본의 ‘전수방위’ 원칙을 전제로 하던 미·일 동맹의 성격이 근본적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전수방위>
일본의 방위력은 상대의 공격을 받은 후에만 행사할 수 있으며, 그마저도 최소한도로 필요한 정도만 행사해야 한다는 수동적 방위전략을 뜻한다. 1970년 발행된 일본 방위백서에 처음으로 ‘전수방위’란 용어가 명시됐다.

①군대도 없던 일본이 ‘미·일공동방위’ 조약을 맺기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2년 미국과 일본간에 첫 안보조약이 발효됐을 당시만 해도 미·일 안보동맹에서 일본의 공간은 협소했다. 1945년 2차세계대전 패망 이후 일본은 일명 ‘평화헌법’을 강요받았고, 이에 따라 일본군은 완전 무장해제됐다. 일본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육해공군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한다.

하지만 1950년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등 주변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미국과 일본 간 안보조약이 체결됐고, 1954년에는 군대 대신 일본의 방위를 담당하는 자위대가 창설됐다.

다만 이때도 일본의 역할은 자국의 안보를 책임져 주는 미국에게 필요한 영토와 시설을 제공하는 것에 한정됐다. 일본은 당분간 경제성장에 전념하고,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외교노선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1960년 기시 노부스케 당시 총리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미·일 안보조약이 개정되면서 중요한 내용이 추가된다. 일본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일이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한다”(5조)는 미국의 ‘방위 의무’를 명문화한 것이다. 새 안보조약은 단순히 미군이 일본에 주둔할 권리를 인정한 기존의 안보조약과 달리, 미·일 공동방위를 의무화해 일본의 재무장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담게 됐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 국내에서는 ‘평화헌법’이 무력화되고,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일본 전역에서 안보조약 개정을 반대하는 이른바 ‘안보 투쟁’ 시위가 거세게 확산됐지만, 당시 일본 집권당은 새 안보조약 비준을 강행했다.

‘안보의존’으로 시작된 미·일 동맹, 70여년만의 대전환 이뤄질까

②거듭되는 지침 개정, 모호해지는 전수방위

그러나 개정된 미·일 안보조약에는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면 양국이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선언적 내용만 담았기에, 실제 공격을 당할 경우 구체적인 역할 분담이 모호한 문제가 있었다. 이에 양국은 미·일 안보조약을 토대로 1978년 미군과 자위대의 역할 분담을 규정한 방위협력지침을 처음 제정한다.

다만 이 때도 일본 영토가 직접 침략당하는 경우 이외에는 미·일의 구체적인 역할 분담을 정하지 않았다. 일본 바깥에서 일어난 사태가 일본의 안전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 대해서는 정세 변화에 따라 협의한다는 방침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일본에 군사적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줬다. 냉전이 끝나면서 구소련의 봉쇄전략에서 아시아에서의 잠재적 위협을 억제하는 쪽으로 미국의 전략 방향이 전환된 것이다. 특히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계기로 미·일은 한반도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본이 미국을 도와 어떤 역할을 할 지 명확히 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일본의 역할 변화가 모색되기 시작했고, 1997년 미국의 요청으로 방위협력지침이 처음으로 개정됐다.

방위협력지침의 첫 개정안은 일본 영토가 직접 침략을 당하는 경우 이외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할 상황을 ‘주변 사태’라 정의하고 일본의 구체적인 역할을 명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나 대만해협 등 일본 주변국가 유사시 미군에 대한 병참 보급이나 정보 지원, 구조 작업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평화헌법의 무력화와 연결돼 있기에 한국 등 주변국들의 반발을 불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전투행위가 이뤄지지 않는 ‘후방지역’이란 개념을 고안해 냈다. 후방지역은 일본의 영토 및 현재 전투 행위가 이뤄지지 않는 지역으로, 일본은 이 곳에서의 활동은 미국의 무력행사와 일체화되지 않으므로 평화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③중국의 부상, ‘보통국가’로의 기폭제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은 그 뒤에도 9·11 테러 등을 거치며 확장 일로를 걷게 된다. 2001년에는 PKO(평화유지활동) 협력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했으며, 2004년에는 육상 자위대를 이라크 전쟁에 파병하기도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시절 미국과의 군사협력이 잠시 주춤했으나, 간 나오토 전 총리 등을 거치며 다시 동맹을 강화하는 기조가 강해졌다.

미·일의 협력은 중국의 부상이 두드러진 2010년대 들어와 또 한 번 변화를 맞게 된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2위로 올라서고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영토분쟁이 본격화되며 지역 내 안보 위협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중국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며 ‘전수방위’의 개념을 허물기 시작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그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아베 전 총리는 2015년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한 번 개정해 자위대의 연합작전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했다. 1997년 개정 때만 해도 일본의 개입은 한반도와 대만해협 등 주변국에 제한됐으나, 이제는 미군이 활동하는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평화 유지, 해상 안보, 후방 병참 지원’ 등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안보협력지침 개정으로 형해화되던 일본의 전수방위 원칙은 지난해말 일본 정부가 ‘반격 능력’을 3대 안보 문서에 명문화하며 완전히 허물어졌다. 여기에도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커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는 등 국제 정세의 급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의 협력을 맞닥뜨린 미국은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를 ‘역사적 조치’라며 지지했다. 방위협력지침의 세번째 개정도 사실상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국의 방위협력지침에 담겨있는 내용들은 미일 동맹의 성격을 규정하는 의미도 있기에 지침이 개정될 때마다 동맹의 변화 방향을 알 수 있는 가늠자가 됐다. 향후 양국이 방위협력지침의 개정을 확정하면, 지난 70여년간 이어져온 미·일 동맹의 성격은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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