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합류한 SCO, 반서방 단결 가능할까…중·러·카자흐 동상이몽

2024.07.05 13:56 입력 2024.07.05 15:29 수정

SCO정상회의, 아스타나 선언 남기고 폐막

시진핑 “서방 맞선 단결” 푸틴 “다극화” 강조

카자흐스탄 언론은 “동서남북 다 열려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3일 아스타나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3일 아스타나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벨라루스를 10번째 회원국으로 맞이한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중앙아시아 지역 협력체의 틀을 벗어나 몸집을 키웠다. 중국과 러시아는 SCO의 확대를 두고 서방 견제에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의장국 카자흐스탄은 SCO는 서방을 비롯해 세계 어느 곳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5일 중국 영문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전날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24차 SCO 정상회의는 처음으로 회원국 외 주요 국제기구와 지역 협의체도 참여하는 SCO 확대회의(SCO+) 형태로 진행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독립국가연합(CIS),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유라시아경제공동체(EAEC) 대표단이 참여했다. 유엔과 OECD를 제외하면 대체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옛 소련 소속 국가들의 안보·경제 협의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의 연설에서 “SCO 회원국들이 간섭과 분열이라는 현실적 도전에 맞서 더욱 단결하고 외부 간섭에 공동으로 저항해야 한다”며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라는 현실적 리스크를 맞아 우리는 발전 권리를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는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 규제를 겨냥한 말이다.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에서 시 주석 연설 내용을 소개하며 “일부 국가가 블록 대결을 촉진하고 ‘분리’를 옹호하는 반면 SCO 회원국은 또한 외부 간섭과 불화를 조장하려는 시도에 직면해 있지만 이를 거부한다”며 “종종 지역적 혼란과 불안정을 가져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과 달리 SCO의 확장은 지역 평화 세력의 성장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SCO는 2001년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4개국(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지역 협력체로 출발했다. 2017년 인도와 파키스탄, 2023년 이란이 가입했으며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국교를 복원한 사우디아라비아가 파트너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벨라루스 가입으로 회원국은 10개로 늘어났으며 지역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에 이어 유럽까지 확장됐다.

상하이 기반 중국 관영매체 펑파이신문은 벨라루스의 SCO 가입을 두고 벨라루스 전문가들을 인터뷰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로 벨라루스에서 서방보다 동방(유라시아)이 더 중요해졌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일 시 주석과의 양자회담에서 SCO를 “공정하고 다극화된 세계 질서의 핵심축 중 하나”라고 평가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역사상 최고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SCO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서방의 대러 제재나 대중국 첨단기술 견제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세계적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AP통신은 이번 SCO정상회의는 푸틴 대통령에게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무대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만나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만나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의장국 카자흐스탄은 SCO를 자국의 위상을 높이는 기구로 활용하면서도 중·러 중심의 서방과 대립하는 기구로 비치지 않도록 메시지를 관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인 ‘아스타나 선언’은 기후, 테러, 분리주의, 극단주의 등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인 신안보이슈로 평가받는 의제에 집중했다. 주목을 받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북핵 등 한반도 문제는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관영매체는 시 주석의 발언도 미국이나 서방을 겨냥한 언급은 제외하고 전달했다.

카자흐스탄 매체 아스타나타임스는 인도 언론 더 이코노믹 타임스의 외교 담당 편집자 판잔 로이 차우두리를 인용해 “벨라루스 가입은 연결성의 건강한 신호”라면서 “연결성이 단 하나의 회랑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카자흐스탄은 동서와 남북 회랑에 모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서쪽은 유럽, 남쪽은 인도 등 남아시아를 의미한다.

서방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카자흐스탄의 입장을 반영한 대목이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와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였다. 서방의 자유주의 개혁 요구에 반감을 갖는 중국, 러시아와 달리 토카예프 대통령 취임 이후 투자 유치를 위해 자유주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를 대체하는 투자, 에너지 수입처로 부상했으며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22년 상반기에만 전년보다 28.2% 증가했다. ‘(서방의) 간섭과 견제로 발전 권리를 제한당하고 있다’는 시 주석의 연설 내용은 카자흐스탄 상황과 들어맞지 않는다.

SCO는 나토와 마찬가지로 ‘안보’에 방점을 둔 기구이지만 집단 행동력은 미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만 하더라도 자국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나 중국 내 신장의 카자흐계 주민 탄압, 중국 국수주의자들의 영토 확장 요구 등에 경계심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2020년 중국 온라인에서 ‘카자흐스탄은 중국 복귀를 희망한다’는 글이 확산되자 카자흐스탄 정부는 중국 대사를 초치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일대일로, SCO 등에 참여하면서 중국과 경제협력을 늘려 러시아 의존도를 줄여나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이은 차기 의장국 중국은 전략적 목표에 따라 SCO에 ‘반서방 플랫폼’으로서의 의미를 계속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 등 중견국들도 국제사회에 자국 영향력을 확대할 목적으로 SCO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시 주석 요구대로 ‘반서방 단결’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중국은 국제 시스템에서 주요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고, SCO에 실질적 효과보다 훨씬 더 큰 상징적 가치를 부여했다”며 이것이 SCO의 당초 취지였던 ‘지역공동체’ 성격을 퇴색시키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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