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피의자는 대등하지 않다"

2019.09.28 10:49

“그래서, 피의사실공표죄는 없애는 것이 맞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 및 그 가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소위 ‘경마식’ 피의사실 공표는 틀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최순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는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애초에 검사가 기소하기 전 피의자에 대한 범죄혐의를 피의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표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쓰는 ‘관행’은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장(58·한국헌법학회장)은 일관되게 피의사실공표죄의 위헌성을 주장해온 학자다. 문 원장은 시대를 막론하고 검찰발 기사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행태에 대해 “이상한 형태로 발전해온 언론과 이상한 형태로 발전한 검찰이 공생하면서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5일 문 원장의 집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이 9월 25일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영민 기자

문재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이 9월 25일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영민 기자

-피의사실공표죄는 위헌이라는 주장을 해오셨다.

“애초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기 대등의 원칙은 법정에서 보통 이야기하지만 일방적으로 많은 수사정보를 갖고 있는 검찰이 언론을 통해 수사과정이나 혐의사실을 공표할 때 반대편에 있는 피의자는 발언권 측면에서 검찰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검찰이 ‘이러이러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했을 때 피의자 역시 그렇지 않다는 반박을 동일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검찰발 정보를 언론이 피의자에 대한 반론권 보장 없이 일방적으로 보도하면서 재판도 받기 전에 피의자에게 유죄가 확정돼 버리는 것 자체가 힘의 불균형 때문에 벌어진다는 말이다. 양쪽에서 자유롭게 떠들 수 있고 언론이 받아쓰는 상황, 즉 언론이 펼쳐놓은 공론의 장에 양쪽 스피커가 대등하면 피의사실 공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역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피해자로 볼 수는 없을까.

“조국 장관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검찰에 피의사실공표죄가 적용돼서는 안 되는 예다. 조 장관은 검찰과 힘의 우위를 놓고 봤을 때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계속 조 장관이나 가족들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검찰 수사의 문제점, 각종 혐의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고 그것을 또 언론이 받아쓰고 있지 않나. 피의사실공표죄는 검찰의 수사 결과 누설 또는 발표로 인해 일방적으로 당하는 피의자에 대한 문제로 놓고 봐야 한다. 검찰은 주요 인물에 대한 수사를 하게 되면 발표를 할 수밖에 없다. 또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면 언론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국가관에 따라 사실관계를 취사선택해 임의로 보도하게 될 것 아닌가. 언론은 결국 쓴다는 속성을 갖고 있고, 검찰이 발표하지 않아도 어차피 언론은 보도를 할 것이다.”

-무기 대등은 법정에서의 검찰과 피고인에 대한 관점이고, 기소 전 혐의사실에 대한 무기 대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 같지 않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들은 무기 대등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거기에 대응해 반박할 경로가 충분히 확보돼 있다. 문제는 일반인인데 결국 보도의 형식에 달려 있다고 본다. 보도는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단정적인 형식으로 보도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독자로 하여금 유죄의 심증을 갖도록 만드는 형식의 보도를 하는 것. 즉 언론의 보도행태 문제도 굉장히 크다.”

-현실적으로 검찰이 주요 혐의 외에 ‘망신주기식’ 흘리기를 하고, 언론이 무분별하게 받아쓰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언론 보도의 중심축이 검찰이 아닌 법원, 특히 공판 중심으로 넘어가야 한다. 거기서는 양측이 공방을 하고, 그 안에서 각종 증거 제시와 반박이 일어나지 않나. 그걸 보도해야 한다. 또 현실적으로 이것은 ‘돈’ 문제다. 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무죄판결을 받으면 사후에라도 정정보도 청구 및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없는 사람은 손해배상 청구를 해본들 변호사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여기서 징벌적 손해배상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언론이 보도할 권리와 자유는 넓게 보장하되 개인의 반론권이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정 선’을 넘어간 보도를 했을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큰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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