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10살 딸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딸이 사람을 무서워한다”

2013.12.19 11:36

10살짜리 소녀의 사진 아래 한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다. “강간하고 싶지 않냐?” 그러자 수많은 누리꾼이 보기에도 민망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중 ‘좌익효수’란 누리꾼이 쓴 댓글은 이랬다. “지 애미처럼 저 X도 커서 빨갱이 될 거 아님? 운동권 애들에게 X주고…”.

2011년초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한 게시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인터넷방송 ‘망치부인의 시사수다’ 진행자 이경선씨(44·여)의 딸이었다. 이씨는 당시 커뮤니티에서 이 모습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그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 애 사진을 걸어 놓고 그짓을 했는가”. 지난 5일 만난 기자에게 이씨는 목 메인 소리로 반문했다.

누리꾼들이 벌인 ‘테러’의 이유는 단순했다. 2011년 1월초 국내 일부 누리꾼이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한 일이 있었다. 당시 이씨는 자신의 방송에서 “국내 누리꾼들이 국정원에서 접속 금지한 사이트에 드나든 것은 불법이 아니냐”란 의견을 냈다. 그러자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던 보수 누리꾼들은 이씨를 ‘빨갱이’라며 비방했다. 이씨는 “정치적인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 10살짜리 사진을 올려놓고 그런 글을 달다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방송 ‘망치부인의 시사수사’ 진행자 이경선씨 | 박용하 기자

인터넷 방송 ‘망치부인의 시사수사’ 진행자 이경선씨 | 박용하 기자

하지만 올해 7월 그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해야 했다. 세간을 뒤흔든 ‘국정원 정치개입 댓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한 때였다. 국정원이 댓글 작업에 동원한 계정들이 언론에 공개됐다. 그 중 익숙한 별명이 이씨의 눈에 들어왔다. ‘좌익효수’. 그의 딸을 성희롱했던 바로 그 누리꾼이었다.

딸을 성희롱한 주체가 정부 기관이란 사실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다음날 국회에 나가 삭발식을 하며 항의했지만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환청이 들렸고, 어느날은 응급실에 실려갔다. 이씨는 “비정상적인 누리꾼의 일탈인 줄 알았더니 국정원 직원이라니…. 이를 알았을 때의 충격은 아이에 대한 성폭력 댓글을 봤을 때보다도 충격이 더 컸다”라며 “‘우리나라가 이제 기본을 벗어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씨의 딸도 변했다. 정보 기관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어느날 이씨가 장을 보러 간 사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무서워 혼자 있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람이 무섭다”, “창밖에서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딸의 말을 들은 이씨는 가슴이 무너졌다. 딸에 대한 미안함에 6년 동안 계속해 오던 방송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딸은 “엄마가 이렇게 하는게 자랑스럽다”며 “나 때문에 엄마가 포기하면 내가 부끄러울 것 같다”고 했다. ‘성숙한’ 딸의 한마디에 그는 방송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이경선씨는 인터뷰 도중 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눈물을 보였다. | 박용하 기자

이경선씨는 인터뷰 도중 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눈물을 보였다. | 박용하 기자

이씨는 악플을 단 것으로 추정되는 국정원 직원들을 현재 협박 및 모욕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그는 “그냥 넘어가면 우리 딸은 이런 일을 겪고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고 자란다. 그래서 고소한 것”이라며 “아이디를 사용한 사람이 누군지 밝히고, 민간인이었다고 해도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이 국가기관이 민간인에게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원칙을 세우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끝까지 싸워서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기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수사 상황을 보면 아쉬움도 크다. 이씨는 “솔직한 얘기로는 그럴 줄 알았다”라며 “국정원 범죄 수사하는 검찰을 잘라냈다는 것은 전 정권의 죄를 현 정권이 대를 이어 짓고 있다는 것이다. 뽑아준 국민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면 전 정부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댓글 사건 이후 마음앓이를 했지만, 아직 그는 ‘망치부인’ 방송도, 정부를 향한 특유의 독설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요즘 딸에게 “과거에 독재정부도 사람을 많이 죽이고 압박했지만 다 역사가 밝혀냈다”라며 “지금은 이 몫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고 말하곤 한다.

6년간 꿋꿋이 이어온 ‘독설 방송’. 방송을 통해 그녀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취재진의 질문에 그녀는 짧게 답했다. “합리적인 사회의 서민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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