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다시보기

귀신이 온다

2005.04.07 16:04

1945년, 일본군 점령하의 중국 시골마을에 괴한이 나타나 마다산(지앙 웬)의 집에 두개의 자루를 던져넣는다. 일본군 하나야(가가와 데루유키)와 중국인 동한천(유안 딩)이 포박된 자루였고, 괴한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잘 맡아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사라진다.

[영화다시보기]귀신이 온다

사로잡힌 몸이면서도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는 하나야는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며 객기를 부리지만, 일본에 부역중인 동한천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반대의 뜻으로 통역한다. 정월 초하루 아침, 하나야는 중국어로 욕을 배워 마다산 등에게 퍼붓지만, 동한천이 욕이라며 가르쳐준 말은 우리 식으로 하자면 이런 뜻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귀신이 온다’(2000)는 배우로도 유명한 지앙 웬이 두번째로 감독한 작품. 그는 앞서 ‘햇빛 쏟아지던 날들’을 통하여 베니스국제영화제, 싱가포르국제영화제 등에서 감독상·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역시 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귀신이 온다’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중국 검열당국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어리석은 촌민이 일본군에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등을 문제삼아 삭제를 요구한 것이다. 이를 거부하자 한때 지앙 웬의 영화제작과 출연은 금해졌고, ‘귀신이 온다’의 중국 내 상영도 금지되었다. 식민지배를 당한 과거와 분단상황에 처해있는 현실이 우리에게 정신적 외상이 되고 억압기제로 작용하듯, 이는 중국에도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사후적인 얘기지만 세계에 얼굴을 알리는 데 장이머우 감독의 덕을 본 지앙 웬이 ‘귀신이 온다’를 만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무렵, 장이머우는 엉성한 이야기를 화려한 영상과 액션으로 포장한 ‘영웅’과 ‘연인’을 통하여 중화주의의 선교사가 되어 망가지기 시작했다. 너무 이성적이면 비겁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자루를 떠안은 지 반년. 가난한 마을사람들은 마냥 포로를 먹여 살릴 수도, 그렇다고 일본군에 알릴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궁여지책으로 왕년의 망나니를 찾아 포로를 죽여달라 했더니 형편없는 솜씨로 소동만 일으킨다. 결국 모두가 살기 위한 타협이 이루어져 하나야는 일본군에 인도되지만, 이미 전사자로 ‘신사’에 봉해져있는 그를 맞는 일본군의 반응은 냉랭하다. 살아돌아온 죄로 뭇매를 맞으면서도 마을사람들과의 약속을 지켜달라 간청하는 하나야에게 못이기는 척, 일본군 장교는 곡식을 싣고 마을로 향한다. 기묘한 해피엔드일 것 같았던 영화의 처참한 비극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귀신’은 괴한이나 침략군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귀신이 온다’는 역사의 흐름에 휘말린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귀신이 되어버렸는지, 그리고 제국주의와 전쟁은 그 누구든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들 수 있음을 증언한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복수를 위해 일본군 수용소에 난입하여 도끼를 휘두르다 체포된 마다산. 중국 관료는 일본군의 안전한 철수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되레 마다산을 참수하려 하고, 반성의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본군 장교에게 칼까지 내어준다. 근육경련에 의해 돼지머리처럼 미소를 지으며 죽어간 촌부의 얼굴, 그것은 언제든 다시 보게 될 수도 있기에 더욱 섬뜩하다. 방심한 사이에 귀신은 불현듯 찾아올 것이며, 심지어 우리 안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배회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원|웹진 ‘가슴’ 편집인〉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