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된 인권’ 정신병원

3. 병원인가 감금시설인가

2006.08.09 18:19

전남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박모씨(47)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있는 게 아니다. 입원생활만 벌써 16년째. 그는 병원에서 ‘장기수’로 통한다. 장기수라는 말에는 타의에 의해 강요된 환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생의 황금기를 빼앗긴 그의 사연은 ‘멀쩡한 사람도 바보로 만든다’는 정신병원의 어두운 그늘을 잘 보여준다.

병원에 들어오기 전 ‘사회’에서 박씨는 새시업자였다. 공사 대금을 받으러 갔다가 강도를 당해 실신했다. 깨어난 후 박씨는 정신분열 증상을 보였고 가족은 그를 전남의 한 국립병원에 입원시켰다. 이때가 1990년. 국립병원에서 3년간 머문 후 박씨는 인근의 한 정신요양원으로 옮겨졌다. 요양원에서 박씨는 ‘남편’이 됐다. 여성환자와 결혼하면 요양원 밖에서 통원하며 지내게 해주겠다는 요양원장의 제안에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통원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부인 때문에 요양원을 떠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또 다시 12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요양원을 찾아온 아버지를 따라 현재의 병원에 입원했다. 이렇게 박씨는 요양원과 병원을 전전하며 16년간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아버지 동의가 있어야 퇴원이 가능한데 아버지가 반대한다”고 말했다.

[‘감금된 인권’ 정신병원] 3. 병원인가 감금시설인가

정신보건시설에서 박씨 같은 ‘장기수’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정신보건법의 맹점 때문이다.

정신보건법 23조에 따르면 본인 의사에 의한 입원환자는 퇴원이 자유롭다. 그러나 비자발적 입원환자라면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같은 법 24조에는 의사의 진단과 보호의무자 동의서가 있어야 입원과 퇴원이 가능하다. 환자 본인이 퇴원을 하고 싶어도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없으면 퇴원이 불가능하다. 보호의무자 동의서가 환자를 의료시설에 ‘구속’시킨 후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정신질환자 대부분은 본인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입원이 많아 장기입원이 양산되고 있다. 2005년 현재 자의 입원 환자는 9.7%에 불과하다. 반면 가족(77.4%)과 지방자치단체장(11.7%)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89.1%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29.6%(1999년 기준)인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복지수준이 최고인 영국과 독일은 10% 이하다.

게다가 보호의무자의 범위를 법으로 정해놨지만 무자격자가 보호의무자를 대신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이혼한 배우자, 양아버지에서부터 양로원 간호사, 환자 보호자가 알고 지내는 사찰 주지와 목사, 마을 이장 등 전혀 연고가 없는 이들까지 보호의무자로 둔갑돼 있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하는 당일 동의서를 급히 만들어내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분실했다고 핑계를 댄다”면서 “환자의 입·퇴원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서류가 병원에서는 가장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제 조사를 나가보면 환자들이 ‘이거 조사하면 퇴원할 수 있나요. 언제 나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꼭 한다”면서 “오히려 병원에서 병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2005년 현재 정신보건시설에 재원 중인 환자는 6만7천8백95명. 교도소 재소자보다 많은 수치다. 교도소 재소자는 무기수나 사형수를 제외하고는 사회로 복귀할 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정신보건시설의 환자는 ‘퇴원’ 날짜조차 기약할 수 없다.

〈조현철기자 cho197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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