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에 고서문화 심고싶다”

2008.05.23 17:59

고서이야기 펴낸 ‘호산방’ 주인 박대헌씨

헌책방 혹은 고서점이라 하면, 서가에 빼곡하게 책들이 들어찬 어두컴컴한 공간을 대개 떠올린다. 그러나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지하 아케이드에 자리한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은 다르다. 서너평 남짓할 정도의 작은 공간이지만 통유리로 시원하게 개방해놓은 것이 일단 눈에 띈다. 투명한 비닐포장지에 책을 넣어 출판사와 출판연도, 특징 및 가격을 표기한 띠지도 색다르다.

[이사람]“도심속에 고서문화 심고싶다”

고서점업계 최초라 할 정찰제 실시, 도서목록 발행, 책박물관 설립…. 남다른 운영 철학과 고서에 대한 열정으로 ‘사고’를 친 박대헌씨. 그가 지난 25년간 호산방과 영월책박물관을 운영하며 고서에 바쳐온 열정을 담아 ‘古書이야기-호산방주인 박대헌의 옛책 한담객설’(열화당)을 펴냈다. “서점과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책은 원없이 만져봤죠. 이를테면 중간결산이랄까요?”

조선 후기의 중인 서화가인 우봉 조희룡의 호를 딴 호산방을 처음 차린 것이 1983년이다. 20대에는 도예가가 되고 싶었지만, 열정만큼 성과를 이룰 수 없자 고서와 고미술품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서점을 차리면서 그와 책의 인연은 시작됐다. 장안평 고미술상가에 차렸던 서점을 92년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서점은 물론이거니와 신간서적을 취급하는 일반서점도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 등에 밀려 도심에서 사라지는 추세지만, 오래 전부터 저는 좋은 환경에서 고서문화를 바꿔봤으면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호텔 로비 같은 곳에 고서점을 차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빵집이나 꽃집, 커피숍대신 고서를 취급하는 서점이 호텔에 자리한다면 그 나라의 품격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는 이를 실행에 옮겨 지난해 5월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호텔 지지향 2층에 호산방 분점을 열었다.

책을 통해 삶의 수준, 문화 수준을 높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책문화마을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구체화돼 있었다. 99년 강원 영월에 영월책박물관을 세운 것도 실은 영국의 헤이온와이 같은 책마을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었다. 호산방을 정리한 뒤 그는 영월책박물관에서 그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책’ ‘종이로 보는 생활풍경’ ‘님의 침묵과 회동서관-근대출판의 시작’ ‘책의 꿈, 종이의 멋’ 등 기획전을 통해 출판문화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랬던 그가 2년 전 홀연히 영월책박물관의 문을 걸어잠그고 다시금 서울의 호산방에 눈을 돌린 이유가 궁금했다. 말을 아꼈지만, 책문화마을을 만들고 싶었던 구상을 실행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날 영월이 박물관고을로 탄생하는 데 가장 큰 밑그림을 그린 이가 바로 박씨인데, 그런 구상이 지자체의 행정정책으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박씨가 배제되었던 것. 가족을 이끌고 내려와 폐교를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영월군 박물관협회장을 맡아 박물관고을의 발전방향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열정을 기울인 그로서는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하나 지난 2년간 다시금 호산방의 문을 열고 책을 만지며 그는 어느 정도 상처를 극복한 듯 보였다. 얼마 전 자신의 문화마을 구성안을 자료로 만들어 영월군에 보냈다는 그는,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깔끔하게 포장한 고서 두어 권을 펼쳐 보여줬다. 1933년 미국 블루리본 북스가 펴낸 ‘The Popup Minie Mouse’라는 책이었다. 무려 70여년 전 나온 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색감과 정교하면서도 인간적인 손맛이 느껴지는 팝업이 탄성을 자아냈다. 그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 책을 펼쳐보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바로 좋은 책”이라면서 책의 됨됨이를 강조했다.

화려한 디자인의 커버에 글씨는 볼록하게 에폭시 처리를 하고 그도 모자라 띠지까지 두르고 나좀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요즘 책들과 달리, 그의 ‘고서이야기’는 녹색천에 단정하게 소색 종이를 덧씌웠다. 자꾸만 ‘고서이야기’에 눈길이 가던 이유는 한 길을 걸어가는 박씨의 오롯한 성정이 배어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글 윤민용·사진 우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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