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권력과 인문정신’ 펴낸 문학평론가 이명원씨

“한국 지식인, 대중과 소통 못하는게 문제”

[이사람]‘시장권력과 인문정신’ 펴낸 문학평론가  이명원씨

“촛불항쟁은 행동문학, 행동예술을 하는 문인, 예술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드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예술’입니다. 1980년대식 집단예술과는 또 다른 의미의 ‘퍼포먼스’ ‘삶 예술’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4일 만난 문학평론가 이명원씨(38)는 전날 밤 참여한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예술가는 물론 지식인들도 이 같은 시위 양상이나 대중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 규정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2008년 5~6월을 검토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혁명적인 변곡점을 돌았다는 평가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씨는 최근 ‘시장권력과 인문정신’(로크미디어)이라는 책을 냈다. 책에서 그는 한국사회의 지식인, 문학, 예술은 모두 ‘사회적 공감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통탄했다. 이것이 지식인의 죽음, 근대문학의 종언, 기초예술의 위기를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은 수많은 전문지식을 보유한 ‘기업’이 되고 있으며, 교수들은 “학술진흥재단과 대학 당국이라는 제도에 의해 상징권력을 보증받고, 제도에 의해 문제의식을 검증받는 식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기능인”으로 전락했다. 문인, 예술인들도 예전의 “나는 예술가인가, 지식인인가” 하는 유의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나는 연예인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됐다. 특히 문인은 “자기가 속한 ‘수도원’ 안에서의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는 충만한 상황이 됐지만, ‘수도원’ 바깥 현실에 대한 관심은 약해졌”다. 그가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한국 문단에 주는 시사점에 동의하는 이유다.

크게 ‘지식인’으로 묶을 수 있는 이 존재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시장권력’의 확장에 기인한다. 1997년 이후 한국사회가 ‘절대 자본주의’ 체제로 재편됐다는 김상봉 교수(전남대)의 견해에 공감하는 그는 “시장권력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국가와 기업의 파괴는 물론이고 이에 대한 전통적 견제세력인 시민사회와 개인조차 그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는 대중을 헷갈리게 하며 성장한 시장권력이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시장 파시즘”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여기서 지식인들이 재발견해야 하는 것이 ‘인문정신’이다. 이씨가 말하는 인문정신은 “체제의 모순에 담론적으로 개입하는 입세의식(入世意識)”이다. “언제나 사회의 부정성으로 존재하면서, 체제의 논리를 승인하기보다는 그것과 불화하고 비판하는” 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창안(創案)의 정신”으로 나아간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의 촛불집회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술발달과 미디어환경의 변화 등으로 대중과 지식인의 거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에도, 점점 더 골방으로 들어가 자기의 내적 순수성에만 몰두하는 지식인의 모습으로는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이 공상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이씨는 시간강사 강의 일을 하고는 있지만 대학이라는 직장을 그만둔 상태다. 대신 교도소를 자신의 새 일터로 삼고 있다. 몇몇 동료지식인들과 매주 교도소를 찾아가 재소자들에게 시(詩)를 가르쳐 주고, 인문정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가 ‘실천인문학’ ‘평화인문학’으로 개념화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지식으로 치부되는 인문학 강의를 갑작스럽게 접하는 재소자들은 처음에는 난감해 합니다. 하지만 윤동주, 이상, 김수영, 천상병 등 ‘갇힌 자의 고통’에 민감했던 분들의 글을 읽으면 재소자들은 물론 나조차도 ‘우리 모두는 이 생에 갇혀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에 대해 그들의 환경을 통해 연결돼 있다는 감각, 호혜와 배려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것이 멀지만 확실하게 범죄를 종식시킬 길이 아닐까요.”

이씨는 연구활동 단체 ‘지행 네트워크’ 창립멤버이다. 한국작가회의 대변인을 맡고 있다. 이 바쁘고 할 말 많은 젊은 지식인도 지난 수년간 ‘절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근저로부터 나를 자극하고, 반성을 촉구하고, 괴로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행복감의 원천인 창조적인 지적 고문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점점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들어 주류 평단에서는 ‘한국문학의 축복’이라는 수사가 남발됐지만 그것은 거대 출판 자본에 힘입은 ‘일부의 사실’에 불과해 보였다. 그래도 그가 절필하지 않은 것은 ‘낮고 어두운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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