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주의에 도전하는 대통령

2024.05.23 21:07 입력 2024.05.23 21:08 수정

법에 명시된 권한은 아무 때나 해도 되는 것일까? 대통령의 거부권은 법에 명시된 권리이니, 형식적 요건만 충족된다면 행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법을 지킨다는 합법성(legality)은 통치 행위의 정당성(legitimacy)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일까?

이것은 답하기에 간단한 질문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은 이하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 같다. 특정한 행위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단지 그것을 허용하는 법의 존재뿐 아니라 그 합법적 행위의 필연성이나 불가피성, 당위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법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법적 해석에 문제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통치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적으로 제정된 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합법적 정치 행위는 얼마든지 비판 가능할 뿐 아니라, 중대한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일이다. 합법적인 정치적 행위도 얼마든지 국가의 운영에 대한 원리, 곧 헌정주의적 원리와 충돌할 수 있다. 합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는 관례와 전통을 무시한 정치적 행위들은 헌정주의의 기반을 갉아먹는다.

헌정주의란 단지 헌법이 존재하는 나라의 통치를 말하지 않는다. 헌정주의란 말 그대로 통치의 권위가 헌법이 설정한 질서 안에서만 정당하다는 뜻이며, 그 핵심 원리는 ‘제한 정부’에 있다. 제한 정부는 통치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정치적 근대성의 요체다. 이것은 단순히 통치자가 법률을 지킨다는 것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포함된 헌법적 원리를 존중하고 따른다는 의미를 갖는다.

현대 정치에서 권력자의 통치를 제한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만약 그것을 기다리기 어려운 비상한 상황이 발생하면, 시민들은 직접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우리는 민주화나 탄핵의 과정에서 이미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데 권력 통제의 기준이 단순히 그때그때 달라지는 여론뿐이라면 이 민주주의는 항구적인 불안정 속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헌법’을 만들었다.

헌법에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사항도 들어 있지만, 주요하게는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권력자(기구)의 통치 행위에 대한 원리가 제시되어 있다. 요컨대, 헌정주의는 어떤 경우에도 ‘자의적인 통치를 제한하는 것’에 그 주요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통치가 아무리 합법적으로 행해지더라도, 그것이 점점 자의적인 방향으로, 심지어 빈번하고 무차별적으로 행사되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가 된다. 합법적 통치 행위가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쪽으로 나아간다는 분명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정질서의 핵심 원리는 ‘민주공화정’,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통치는 공적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입법부·사법부·행정부 간의 균형 잡힌 견제 관계다.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가원수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에서 주권의 핵심은 입법권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주권 기관도 의회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을 견제할 수 있지만, 그것은 주권기관으로서 입법부에 대한 존중이 먼저 전제가 될 때 가능한 일이다. 견제권이 입법권이라는 본질을 침해할 수는 없다.

헌법이 있다고 항상 헌법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헌법은 법을 왜 지켜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한 사회가 도달한 답을 담고 있지만, 그 경우에도 헌법이 헌법을 지켜야 할 이유까지 제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정치와 민주주의의 영역이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견제의 목적을 가진 합법적 권한이 남발될 때, 이것은 헌정주의적 원리에 대한 도전에 해당한다고 말이다.

정치이론 분야의 저작에 대해 아마도 가장 권위있는 상을 받은 리처드 벨라미는 <정치적 헌정주의(Political Constitutionalism)>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의적 통치를 극복하고 법에 의한 통치를 달성하는 것은 법 자체보다는 정치에 달려 있다. 법은 정치적 상황을 넘어서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운용된다.”

내가 이해하기로 이 구절은 거부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 것 같다. 불이 안 나는 게 가장 좋으나, 불이 날 때를 대비해 소방차도 필요하다. 대통령의 거부권이나 입법부의 탄핵권은 그런 비상 수단이다. 그러나 소방차가 있다 해서 자주 불을 내도 좋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건 정치적 실수나 월권을 넘어 헌정주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선거라는 제한 정부의 수단이 이미 발동된 바 있다. 대통령이 헌정주의 원칙과 민주주의를 존중할 때다.

이관후 정치학자

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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