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감독

2010.03.08 18:29 입력 2010.03.08 23:20 수정
조미덥·사진 서성일 기자

“삼촌처럼 친근하게 다독이며 선수들 열정 이끌어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을 일으켰다. 사상 첫 남녀 동반 500m 석권에 이어 아시아인 최초의 1만m 금메달까지. 세계인들이 한국의 급성장에 ‘원더풀 코리아’를 외쳤다. 한국이 쇼트트랙 이외 종목에서 금메달을 3개씩이나 따내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이처럼 눈부신 성과 뒤에는 2004년부터 대표팀을 맡아 묵묵히 선수들을 키워낸 김관규 감독(43)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는 점점 얇아지는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찾아 집중 육성했다. 위압적으로 억누르기보다는 삼촌처럼 친근하게 선수들을 다독이며 열정을 이끌어냈다. 밴쿠버의 기적은 6년 동안 흘린 땀의 결과였다.

금의환향한 그를 지난 5일 서울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에서 만났다. 귀국 후 바쁜 일정으로 피곤해 보였지만 인터뷰 내내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경향과의 만남]김관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감독

- 한국에 돌아와서 일주일은 어땠습니까.

“축하전화 받고 인사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때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그렇게 많은 팬들이 나왔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동네에서 슈퍼마켓 아저씨도 알아보니까 ‘내가 밴쿠버에서 뭔 일을 저지르고 오긴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 이런 성적을 예상했나요.

“남녀 모두 500m에서 적어도 동메달 이상은 딸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다만 남자는 규혁이와 강석이를 예상했는데 결과는 태범이였죠. 첫날 승훈이가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것이 컸습니다. 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살아났어요. 특히 승훈이, 상화, 태범이, 세 동기(한국체대 07학번)들 사이에 ‘쟤도 따는데 나도 딴다’는 긍정적인 기운이 돌았습니다. 태범이와 승훈이는 첫 메달로 자신감을 충전한 것이 추가 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됐고요.”

- 다른 나라 코치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처음 땄을 땐 ‘축하한다, 잘한다’ 그랬는데 두번, 세번 이어지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더라고요. 다들 ‘코리아’ 하면 혀를 내둘렀죠. 그런데 네덜란드 코치가 ‘한국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인터뷰한 걸 우연히 보고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대회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죠. 그리고 속으로 ‘다음 올림픽까지 한번 두고보자’고 다짐했습니다.”

-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의 금메달 비결을 하나씩 짚어주십시오.

“모태범은 근성이 있습니다. 남들이 그만둘 때 이 악물고 한번 더 하죠. 자세 같은 것을 한번 지적해주면 고쳐질 때까지 반복해서 훈련합니다. 이상화는 파워가 좋습니다.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키운 힘은 유럽 선수들에게도 전혀 뒤지지 않죠. 이승훈은 장거리 선수에게 필요한 지구력과 내성을 타고났습니다. 어릴 때 배웠던 스피드스케이팅의 리듬감이 살아있는 데다 쇼트트랙 훈련을 통해 코너워크를 완벽하게 다졌죠.”

- 팬들의 기대대로 이상화와 모태범이 사귄다면 어떨 것 같나요.

“제 눈을 피해서 만날 순 있겠죠. 근데 운동하는 동안은 스트레스 받을 겁니다. 같이 있는 게 좋아도 표현하기 힘들고, 전날 싸워도 마주보고 운동해야 하는데, 운동이 되겠습니까. 그게 걱정이죠. 운동 그만두면 만나도 될 것 같아요.”

- 어린 나이에 ‘올림픽 금메달’이란 목표를 이룬 선수들이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을까요.

“아직 21살, 22살이니 올림픽 2연패라는 목표를 세워야죠. 제가 얘기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땄으니 대충 할 생각이라면 은퇴하고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라’고요. 정상에 가는 것보다 지키기가 더 힘들 겁니다. 세 선수 모두 올림픽 전에 계속 1등하던 선수가 아니에요. 메달 딴 것은 얼른 잊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이규혁, 이강석에 대한 마음은 어땠나요.

“태범이가 금메달을 땄을 때 ‘야호!’라고 외쳤는데 규혁이랑 강석이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죠. 사람들이 ‘김 감독 표정이 왜 그래?’라고 묻더라고요. 규혁이에겐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어 그냥 안아줬습니다. 2006년 토리노 대회 땐 ‘다음이 있다’고 하면서 위로했는데 이젠 다음이 없잖아요. 강석이는 정말 아까워요. 레이스 전 준비도 완벽했고 스스로도 ‘자신있다’고 했는데 경기가 계속 지연되면서 흐름을 놓쳤습니다. 강석이가 태범이에게 잘했다고 악수하는 걸 보는데 ‘참, 저 놈 속은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넌 메달 딴 거나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마음 잘 추슬러라’고 하긴 했는데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겁니다.”

- 외국과 대비되는 한국만의 강점은 뭔가요.

“대표팀 소집훈련입니다. 일본만 해도 소집훈련이 없어 대표 선수들이 각자 소속팀에서 훈련합니다. 반면 우리는 모아놓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죠. 대표적으로 남자 단거리에서 이규혁-문준-이강석-모태범 4명은 서로 비슷한 실력을 가진 라이벌이면서도 선후배로 서로 약점을 보완해주면서 발전한 겁니다.”

- 쇼트트랙 기술을 스피드스케이팅에 접목시킨 것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는데요.

“쇼트트랙 훈련은 예전부터 해왔습니다. 매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해 왔죠. 이번엔 우리끼리 하지 않고 쇼트트랙 선수들이랑 같이 하면서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단거리로 코너를 돌기 위한 훈련이 효과를 봤죠. 사실 쇼트트랙뿐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만 된다면 어떤 종목 훈련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를 강화하기 위해 육상 단거리 스타트 훈련도 도입해봤고, 역도 선수들의 웨이트트레이닝법도 도입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훈련을 하면 선수들도 지루하지 않게 훈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 지도자 하면서 ‘이건 정말 잘했다’ 싶은 것이 있다면 뭔가요.

“우선 2004년 8월에 대표팀 감독을 맡은 것입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끝나고 코치를 그만두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감독 제안을 받고 또 그럴까봐 망설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결국 하길 잘했어요. 그리고 제 지도 스타일을 고집했던 것이 잘했다 싶어요. 제 스타일은 애들 위에 서서 윽박지르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 서서 친구처럼 편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위엄은 없어졌지만 선수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 훈련하다보면 언제나 부드러울 수만은 없을 텐데요.

“그럼요. 평상시에는 부드럽지만 훈련할 때는 좋은 말만 할 순 없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강한 말투로 얘기하면 선수들도 평소 말투와 다르다는 걸 아니까 매번 강하게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습니다. 풀어줬다가 조여주는 강약조절이 중요하죠.”

- 한체대 대학원에서 체육심리학을 전공했는데요.

“역학, 생리학 등 운동과 관련된 학문이 많지만 애들을 지도하다보니 심리가 성패를 좌우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똑같은 트랙을 반복해서 도는 ‘폐쇄기술운동’이라 심리상태가 더 중요하죠. 공부하고 논문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긴장을 덜 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상황 별로 어떤 말을 하면 더 효과적일지 알게 됐습니다. 감독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 집에서는 어떤 아빠인가요.

“집에서는 0점이죠. 시즌 끝나고 3월 중순에 20일 정도 여유있을 때 빼곤 주말에 한번씩만 집에 가니까요. 언젠가 집에 갔는데 딸이 ‘아빠 우리집에서 잘 거야?’ 그러더라고요. 딸에게 아빠 집은 선수촌인 겁니다. 올림픽 다녀오니까 요즘에야 ‘좀 더 잘해줘야 했는데’ 하고 후회가 돼요. 시즌 끝나고 여유 생기면 가족이랑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 딸 민지(10)도 스케이트 선수던데요.

“스케이트 타는 걸 좋아하기에 시켰습니다. 근데 제 자식은 제가 못 가르치겠더라고요. 가르치는 선생님들 얘기 들어보면 소질이 있고 승부 근성도 있대요. 남한테 지면 앞에선 안 울어도 아무도 없을 때 운다고 하더라고요. 전 딸에게 ‘상화만큼은 타야 된다. 언니가 라이벌이다’라고 강조했어요. 상화한테도 얘기했죠. ‘열심히 안하면 금방 민지한테 따라잡히니 조심하라’고요.”(웃음)

-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더 발전하기 위해선 어때야 합니까.

“우선 대표선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야 합니다. 올림픽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고 해서 지원을 줄이면 안됩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대표와 비슷한 기량의 선수가 많아져야 합니다. 밑에서 무섭게 올라오는 선수가 있어야 대표선수도 긴장하게 되죠. 그러려면 1차적으로 초등학교 팀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팀의 경우 마음껏 훈련할 수 있게 조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지금은 훈련할 수 있는 곳이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하나뿐이어서 국가대표부터 고등학생까지 같이 합니다. 더 많아져야죠.”

▲김관규는

서울체고에 다니던 1985년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국가대표에 뽑혀 89년까지 대표생활을 했다. 88년 캘거리올림픽엔 1500m와 5000m, 1만m 대표로 나섰다. 은퇴 후 91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성신여대와 용인대 선수들을 가르치다 2004년부터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현재 용인시청 코치를 겸하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