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

2010.04.05 17:51 입력 2010.04.05 22:50 수정
글·동영상 박효순 기자 / 사진 박민규 기자 (동영상=khan.co.kr)

“자살은 ‘사회적 질병’ 인식 필요…예방법 빨리 만들어야”

하루 35명.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의 숫자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한해의 자살 사망자 수는 1만2858명.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1999년까지만 해도 10만명당 13명 정도이던 자살률이 10년 새 2배로 껑충 뛰었다. 지난 10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합하면 무려 9만명에 육박, 경기 동두천시나 전남 고흥군 등 웬만한 시·군 인구와 맞먹는다. 대한민국이 왜‘자살공화국’으로 불리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경향과의 만남]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연예스타를 비롯해 유명·유력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수시로 뉴스에 오르내린다. 최근에는 탤런트 최진영씨가 누나 최진실씨의 뒤를 이어 자살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남녀가 동반자살하는 일도 일부 젊은층 사이에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TV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자살로 끝을 맺으면 ‘상투적인 결말’로 치부될 정도로 자살은 우리 곁에 흔하다. 1등만을 대접하며 성공과 성장을 향해 숨막히게 질주해 온 우리 사회의 암울한 그늘이다.

자살은 흔하지만 그러나 이를 예방하려는 공동의 노력은 드물다. 벼랑에 몰린 개인의 막다른 선택으로 치부하며 사회적으로는 방관하다시피 해왔다. 하지만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사회의 결속력이 약해지면 자살이 독버섯처럼 번진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국내 7대 종단이 손잡고 자살 예방운동에 나선 것은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자살을 남의 일로만 치부하면 ‘자살대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다.

지난 2일 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49)을 만나 우리나라의 자살 실태와 문제점 및 대처방안을 들어봤다. 전날 독일 ARD방송이 그를 심층 인터뷰했고, 이날은 본지에 이어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서 대담을 하는 등 최근에는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의 자살사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 탤런트 최진실씨에 이어 동생 최진영씨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잘나가던 국내 유수 기업 엘리트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뉴스를 듣다보면 자살이 마치 유전이나 유행병처럼 여겨집니다.

“실제로 자살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유명인의 자살을 따라하는 소위 ‘베르테르 효과’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최진실씨가 죽었던 달에는 자살자가 전달에 비해 무려 66%나 늘어났지요. 상당수가 모방자살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또 부모가 자살하면 그 자손도 결국엔 자살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전이라기보다는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대물림됐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자살할 때는 잠시 큰 충격에 휩싸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해지는 것입니다. 자살도 안타깝지만 그 심각성을 금세 잊어버리는 세태는 더 안타깝지요.”

- 국내 자살률이 2003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년 전에는 교통사고율이 최고였죠. 그런데 지난 10년새 교통사고 사망자는 4위에서 7위로, 자살은 7위에서 4위로 자리바꿈했습니다. 2008년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7000여명입니다. 왜 이렇게 줄었을까요. 그동안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기 때문입니다. 신호체계 개선, 도로 확충 등의 교통 안전 인프라 구축과 함께 안전띠 매기, 음주운전 추방 등의 캠페인을 꾸준히 벌인 결과 큰 불길을 잡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투자하고 있나요. 자살예방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은 교통사고 줄이기 예산과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OECD 국가 중 자살예방에 대한 법이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 신종플루처럼 강력한 조치를 취하면 자살률이 뚝 떨어질까요.

“신종플루 공포에 국민 모두가 떨었지만 공식 발표된 사망자수는 140여명 정도입니다. 의료계와 정부, 국민이 합심해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살의 경우 나타난 사망자만 연간 1만2800여명이지 자살 기도자는 10~20배에 달합니다. 연간 10만~20만명이라는 얘기죠. 또 자살할 생각은 갖고 있지만 시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살기도자의 2~3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살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은 30만~40만명이라는 계산이 나오지요. 여기에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6명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자살의 심각성은 신종플루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신종플루 사망자수는 4일치 자살자수에 불과합니다. 신종플루를 막기 위해 투자한 비용과 국가적인 노력을 자살예방에 쏟는다면 ‘자살 바이러스’도 얼마든지 퇴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현재 자살은 전체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번째입니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연구는 다른 질병처럼 활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가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연구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데, 그냥 1등이 아니라 2등과 확 차이가 나는 1등이에요. 자살증가율도 지난 10년간 줄곧 1등을 달렸지요. 이렇듯 끔찍한 1위인데도 왜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지, 왜 지금도 올라가는지 원인에 대해 명확히 얘기할 수 없다는 게 첫번째 문제입니다. 원인을 못 짚어내니까 당연히 대책도 방향을 못잡고 있는 거죠. 또 원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실 대책도 미흡합니다. 다들 걱정만 하고 있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고 할까요.”

- 10대의 사망원인을 보면 교통사고에 이어 자살이 2위입니다. 청소년 자살이 갈수록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어 걱정입니다.

“두 가지가 큰 문제입니다. 청소년은 계획된 자살보다는 충동자살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 청소년 자살에는 우울증 등 정신적 장애가 더 많이 관여를 합니다. 따라서 우울증의 조기발견이 중요합니다. 또 게임중독, 학교 기피, 음주 등의 문제행동도 자살의 전조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사춘기때는 다 저래’ 하고 내버려두면 절대 안됩니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이므로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는 관심과 대화, 전문가의 상담이 꼭 필요합니다.”

- 자살률을 줄이는 데 성공한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노력했습니까.

“모두 장기적인 대책을 세웠는데, 그 첫번째로 초·중·고에서 자살예방을 정규교과과정에 포함시킨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과목으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보건, 도덕시간뿐만 아니라 국어, 생물, 영어시간 등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자살예방과 생명사랑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자살예방 교육을 아예 어린 학생들에게만 실시합니다. 이미 성인이 된 후에는 교육 효과가 적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자살률이 10만명당 10명 수준인데도 이를 7명으로 낮추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사회적인 약자나 소외계층, 특히 노인 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인데요.

“노인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아프고 외로워서 자살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노인층은 경제개발과 자녀교육에 헌신하느라 희생된 세대죠. 그러나 사회나 자녀들은 이전처럼 노인을 공경하고 대우해 주지 않습니다. 준비 없이 고령화 사회로 들어간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보다 2~3배나 될 정도로 심각합니다.”

- 자살에 이르는 가장 큰 원인으로 흔히들 우울증을 지목하는데요.

“사람은 큰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다 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연결시키는 그 중요한 매개가 우울증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거나, 회사에서 낙오되거나, 학교 성적이 안 좋아도 우울증이 없는 사람은 자살할 확률이 적습니다. 자살자의 60%가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대개는 쉬쉬하며 치료를 제대로 안하지요. 우울증 환자의 5%는 당장 치료가 필요한데 전체 환자의 20~30%만 치료를 받는 실정입니다. 우울증은 1개월만 치료받아도 최소한 자살에 이르지 않는 상태로 회복이 가능합니다.”

- 우울증을 비롯해 자살예방을 위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자살을 줄이기 위해 개인과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국민 모두가 자살은 곧 내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듯이 자살은 ‘사회적 질병’ 으로 예방과 진단, 치료가 가능합니다. 언론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벌여주세요. 정부와 국회는 하루 빨리 자살예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국회에 자살예방 관련법을 제출해 놓고 있는 상태인데 제대로 논의가 안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자살예방을 위해 구체적으로 자살위험 조기발견, 고위험자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 막 자살하려는 사람에 대한 응급관리 시스템, 범 국가적인 홍보체계 등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 같은 것들은 외국에 성공한 선례가 많이 있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하규섭은

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은 우울증, 조울증 분야의 임상연구, 약물치료, 조기발견·교육·재활 등을 통해 자살예방에 기여해 왔다. 1986년 서울대의대를 졸업, 90년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했으며 94년부터 서울대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국제조울병학회(ISBD) 부회장, 아시아 조울병 네트워크 부회장 겸 차기 회장, 동아시아조울병포럼 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또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 클리닉, 조울병 클리닉을 열고 있다. 보건복지부 진료정보 교류시범사업 연구책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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