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아수라 백작 벽보 붙은 까닭은?

2012.11.14 13:43 입력 2012.11.15 09:18 수정

지난 6일 서울 종로·신촌·여의도 일대 버스정류장에 ‘벽보’ 하나가 나붙었다. 벽보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들의 얼굴이 반반씩 그려져 있었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두 대선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벽보’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지난 8일 이 벽보를 그려 붙인 팝아트 작가 이하씨(44)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직선거법 93조1항은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 당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정당 명칭이나 후보자 이름을 나타내는 광고나 벽보, 사진 또는 그와 유사한 것을 배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씨가 ‘벽보’로 수사기관에서 조사 받게 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6월 말 ‘독사과를 든 박근혜 공주’라는 벽보 200여장을 부산 시내에 붙인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했다. 지난 5월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29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든 모습을 그린 포스터를 전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 붙였다가 약식기소됐다.

팝아트 작가 이하씨가 ‘문재인·안철수 대선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벽보’를 들고 앉아 있다.<br />/이하씨 제공

팝아트 작가 이하씨가 ‘문재인·안철수 대선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벽보’를 들고 앉아 있다.
/이하씨 제공

이씨는 ‘벽보를 그려 거리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는 ‘팝아트 작가’다. 그는 이 일로 수사기관에서 총 8번의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이 일’은 어떤 의미일까. 그와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일(벽보를 그려 붙이는 일)을 하면서 제가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숭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과 법은 원래 궁합이 맞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법이 볼 때는 제가 하는 일이 몹시 거슬리는 일일 거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한국도 길거리 예술의 시대가 옵니다. 그때가 되면 저의 사건이 코미디가 될 겁니다. 기관에 가서 조사를 받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일인데요. 그럼에도 훈장을 받으러 간다는 생각을 하고 갑니다.”

이씨가 그려 붙인 벽보들은 ‘이슈’가 됐다. 지난 6월 부산 거리에 붙인 벽보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백설공주 차림으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사과를 든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이씨는 “(그 사건으로) 부산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만일 재판에서 패해 벌금형이 확정된다면 전 교도소에 들어가 교도소에서 벽화를 제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9만원권 자기앞 수표를 들고 있는 벽보를 붙인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이씨는 “당시 저는 광주문화재단에서 5·18특별전을 초대받아 전시 중이었고 의미있는 초대전을 하는 작가로서 당연히 제가 해야되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고 했다.

“역사에 위대한 분으로 남고 싶으시다면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시고 광주에 내려가 옛날 도청 앞에서 무릎 꿇고 통성으로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시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가진 몇가지 문제를 한순간에 해소할 수 있는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안철수 아수라 백작 벽보 붙은 까닭은?

이씨는 ‘지도자’들을 많이 그린다. 아니,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는 “사회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들 또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신 분들을 작품 주제로 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인뿐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그리고 국내인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인물들도 그린다.

지난해 말 이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나치 문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를 제작해 거리에 붙였다. 그는 “당시엔 현 대통령에 대한 피로도가 최고조였다”며 “시민들의 피로감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포스터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처음 거리에 포스터를 붙일 때는 굉장히 두려웠지만 당시 현장에서 포스터를 본 젊은 신사분이 대통령의 별명을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자신감을 갖고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엔 주한 일본대사관 주변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 침묵하는 일본 정부에 항의하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였다. 이씨는 “제가 정치인만 그려서 붙이는 건 아닌데 (선관위는) 유독 정치인(을 그린 벽보)에 대해서만 편향적으로 수사를 한다”고 했다. 이씨는 “한국에선 정치인의 얼굴을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거리에 발표하는 행위가 대단히 예민한 행위인 것 같다”며 “그것이 이슈가 된다는 건 그동안 한국사회가 제대로 된 정치인에 대한 열망이나 갈증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뉴욕에서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를 전시했다.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 등이 과장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씨는 “독재자는 실물보다 화려하고 예쁘게 그린다”고 했다. “지난 시절의 독재자들이 지금은 이미지만 남은 우스운 녀석들이 되듯이 현재의 독재자들도 훗날엔 만화 캐릭터같은 우스운 녀석들이 되기 때문에 조롱하는 뜻에서 귀엽고 예쁘게 그린다”는 것이다.

팝아트 작가 이하씨의 작품 /이하씨 제공

팝아트 작가 이하씨의 작품 /이하씨 제공

반면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눈물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민주주의나 상식, 가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분들”이다. 이씨는 “대부분 억울하게 돌아가셨거나 암살당하셨기 때문에 눈물시리즈로 제목을 정하고 실제작품엔 눈에 눈물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예술인들을 소개하는 한 웹사이트에 이씨의 ‘작가노트’가 있다. 이씨는 ‘작가노트’에서 “인간의 적은 자본 권력자와 정치 권력자”라고 했다. 이씨는 “인간은 인종이나 종교 또는 외모를 떠나 모두 다 소중한 존재”라며 “하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시스템이 우리 이웃이나 이웃나라, 이웃 종교를 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웃을 적대시하면 할수록 이웃도 우리를 싫어한다. 우리의 시스템은 인간이 이웃 인간을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다”며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웃과 경쟁해야 하고 우리 영혼을 나에게 영향을 주는 권력자에게 팔아야 생존하는 구조인 거 같다”고도 했다. 이어 그는 “인간끼리 미워하고 경쟁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의 적은 이웃 인간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만들어 자신들의 거대한 욕심을 채우는 권력자들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작품을 길거리에 붙이는 퍼포먼스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씨는 “미술판에서 정치적인 작품을 하는 건 제도권 미술에 들어가기 상당히 어렵다. 또한 한국의 메이저 미술판은 타락한 비즈니스의 세계”라며 “전 갤러리나 부자들을 위한 미술이 아닌 사회적 상처를 위로해주고 그 피로감을 풀어주는 미술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만일 저의 신념이 잘못된 거라면 현장에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절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제게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이 훨씬 많은 거 보니 제 신념이 잘못된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이씨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상식이라는 것이 한국에선 말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일인 듯하다”며 “예술은 세상을 풍부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예술가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의식들을 정리하여 작품으로 발표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말했다. “역사는 지나친 법의 잣대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회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 예술을 기억합니다.”

팝아트 작가 이하씨/이하씨 제공

팝아트 작가 이하씨/이하씨 제공

이씨는 조만간 또 다른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 ‘퍼포먼스’는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씨는 “언론 보도를 보시고 간혹가다 제게 도움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뜻은 정말 감동적으로 고맙지만 제가 모두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완전하게 독립된 순수한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처벌을 받을 것 같습니다. 기꺼이 감수할 것입니다. 외롭지만 이건 저의 직업이고 저의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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