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눠먹기식 야합으로 끝난 ‘옥새 투쟁’

2016.03.25 20:40 입력 2016.03.25 20:50 수정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 투쟁’이 하루 만에 끝났다. 부산에 내려갔던 김 대표는 어제 서울로 돌아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다. 최고위는 대구 동갑과 달성, 수성을에 대한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유승민·이재오 의원이 탈당해 무소속 출마한 대구 동을·서울 은평을과 서울 송파을은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친박계는 ‘진진박(진짜 진박)’으로 통하는 정종섭(대구 동갑)·추경호(대구 달성) 후보를 구해내고, 김 대표와 비박계는 유·이 의원 지역구에 대한 무공천을 관철하는 선에서 ‘거래’한 것이다. 선거 역풍을 막기 위한 나눠먹기식 야합이나 다름없다. 역대 최악의 공천 과정에 썩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 하겠다.

김 대표는 회의가 끝난 후 “당의 갈등을 봉합하고 파국을 막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던 결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모호한 타협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앞서 김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 친박의 패권주의와 전횡에도 눈치보기로 일관했다. 김무성계 의원들이 공천을 받은 다음에야 행동에 나섰다. 정치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다고 여권 주류가 승자인 것도 아니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눈엣가시 같은 인사들을 솎아내겠다며 저지른 패악은 다시 돌아보기조차 수치스럽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은 실종되고 오로지 친박이냐 비박이냐, 친박 중에서도 진박이냐 아니냐 같은 구시대적 편가르기만 횡행했다. 특히 유승민 의원을 탈당으로 몰아간 과정은 민주주의를 떠나 인간적으로도 차마 저질러선 안될 폭거였다. 새누리당 공천은 청와대가 기획·연출하고 친박계가 주연, 김 대표가 조연을 맡은 저질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는 승자가 없었다. 모두가 패자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개소식에서 “북한의 도발이 언제 감행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회와 정치권에선 본인들만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옥새 투쟁을 겨냥한 우회적 비판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정치권과 국회가 각자의 정치만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본인들만의 정치’ ‘각자의 정치’를 하는 이가 누구인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던 대통령이 아닌가.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유승민 축출’을 위해 시작한 싸움이 ‘유승민의 사실상 당선’으로 귀결된 까닭을 겸허히 새길 필요가 있다. 주권자는 권력의 교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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