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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육아를 하는 아버지들이 최대 1년의 유급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 가장 후한 대접을 받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넉넉한 유급 육아휴직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활용하는 한국의 아버지들은 10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

지난달 1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펴낸 <글로벌 메가트렌드와 미래교육(Trends Shaping Education) 2022> 보고서는 양 극단에 서 있는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현실을 지목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한국의 남성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유급 육아휴직 보장기간은 OECD에서 가장 길다. 8세 이하의 자녀를 키울 때 1년까지도 유급 육아휴직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인 9주에 비하면 5배가 넘는다. 그러나 이 제도를 실제로 활용하는 아버지들은 그리 많지 않다.

육아하는 아빠. 경향신문 자료사진

육아하는 아빠. 경향신문 자료사진

OECD의 이 보고서는 회원국들 간의 교육여건 및 교육정책을 비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각각의 제도가 나타내는 효과 역시 함께 보여준다. 보고서는 “아버지의 육아 참여는 아이들, 특히 딸에게 전반적인 발달과 교육의 성과, 직업 전망 등의 면에서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아버지들의 육아를 독려한다. 그러나 제도상으로는 세계 최장 수준의 남성 육아휴직을 보장하고도 이 제도가 실제 거두고 있는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또 다른 국제비교 자료를 보면 오히려 실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OECD 내 비교 대상국 중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낸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을 위한 개선 과제’ 보고서에는 육아휴직 관련 국내 제도 활용 현황과 문제점, 개선 방안 등이 담겼다. 이 가운데 제도 활용도를 비교 조사한 부분을 보면 한국의 제도 활용도는 국제적으로 최하위권에 머문다. 2020년 기준 한국에선 아이가 태어난 해에 출생아 100명당 여성 21.4명, 남성 1.3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는데, 이는 OECD에서 관련 통계를 비교 가능한 19개국의 기록과 비교할 때 가장 낮다. 최상위권인 스웨덴에서는 여성 380명, 남성 314.1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OECD 국가 평균 역시 여성 118.2명, 남성 43.4명으로 한국보다 높았다. 아이 1명에 대해 육아휴직을 여러 차례 나눠 쓴 경우를 중복 포함한 수치라 해도 한국과 다른 나라와의 격차는 크다.

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국내에 도입돼 올해 35년째를 맞았다. 제도를 활용하는 인원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남성 노동자가 활용하는 비율도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육아휴직 사용자에 대한 사측의 불이익 및 차별 사례가 잇따르며 온전한 권리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제도 활용이 저조한 것은 현행법상 사업주 제재 규정의 실효성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상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또는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같은 법률에 근거해 육아휴직 신청을 허용하지 않거나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직원에게 같은 수준의 업무·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에도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불이익이 우려되면 제도 사용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퇴사하는 경우가 보다 일반적이다. 때문에 보고서는 육아휴직의 보장을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상의 근로자에 대한 구제명령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행과 같은 사업주 제제는 노동자의 이익과 연계되기 어렵고, 법정에서 사업주의 불법행위가 인정돼야만 민사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그래서 부당 처우에 대한 입증 책임도 사업주가 지도록 하고 이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보고서를 쓴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특히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이 근로자 개인에게 별다른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사유로 근로자가 불리한 처우를 받은 경우, 원직복직 및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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