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의 기업본색
2024.04.29 06:00 입력 2024.04.29 06:28 수정 박상영 기자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롯데하이마트 서울역롯데마트점. 롯데하이마트 제공

롯데하이마트 서울역롯데마트점. 롯데하이마트 제공

지난해 직원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든 업종은 어디일까. 그리고 직원 수가 감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기업분석연구소인 리더스인덱스는 1년 전보다 직원 수가 줄어든 곳과 늘어난 곳의 업종을 비교하는 내용의 자료를 냈다. 유통업 직원 수는 2022년 9만8438명에서 지난해 9만272명으로 8.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5.6%), 은행(-1.4%) 등 직원이 줄어든 다른 업종과 비교해도 감소 폭이 유난히 가팔랐다.

유통 기업 중 직원 수가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곳은 롯데하이마트였다. 이 회사 직원 수는 2022년 3373명에서 지난해 2882명으로 14.6% 줄었다. 감소한 것은 직원 숫자만이 아니었다. 롯데하이마트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2022년 391개였던 지점이 지난해에는 336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물류센터도 14개에서 11개로 감소했다.

롯데하이마트 점포 수는 2019년까지만 하더라도 466개에 달했다. 몸집을 키우면 제조사에 대한 구매 협상력이 높아지고 매입 단가를 낮출 수 있어 유리하다. 전자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롯데하이마트와 같은 ‘카테고리 킬러(Category Killer)’형 전문점에는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그러나 좋은 입지에 점포망을 확대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경영 전략은 코로나19로 힘을 잃었다. 유통의 무게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갔기 때문이다. 2019년 20조641억원이던 국내 가전 부문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해에는 29조9878억원으로 급증했다. TV와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해외직구’로 구매하는 현상도 한몫했다.

여기에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경직, 가전산업 성장세 둔화까지 겹치면서 롯데하이마트의 수익성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9년 4조원이 넘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2조6101억원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98억원에서 8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22년 사상 첫 적자(-520억원)에서 불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지만, 회사 측은 “부가세 환급 효과(356억원) 등의 일회적 요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벌어들이는 돈은 줄어든 데 비해 빌린 돈은 늘었다. 2021년 61.1%였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89.9%로 증가했다. 자산에서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차입금 의존도도 25.4%에서 35.4%로 늘었다. 차입금이 늘면서 금융비용 부담은 커졌다. 2021년 136억원이던 롯데하이마트 순이자 비용은 2022년 152억원, 지난해 224억원으로 증가했다. 2년 연속 영업이익이 순이자 비용보다 적은 셈이다.

회사의 미래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전망도 어두워졌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12월 롯데하이마트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도 지난달 AA-에서 A+로 바꿨다. 신용등급이 하락함에 따라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롯데하이마트는 점포와 인건비 등 비용을 줄이는 방향을 택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지난해 수익을 내지 못한 점포의 폐점을 통해 약 120억∼150억원의 비용 절감이 이뤄진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도 매출이 뒷걸음질 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롯데하이마트 직원 수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서울의 한 이마트 매장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이마트 매장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온라인 쇼핑이 성장하면서 다른 유통업체도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롯데쇼핑 할인점 (-6.9%), 이마트(-4.6%) 등 주요 대형마트는 1년 전보다 직원 수가 줄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직원 감소세는 더 두드러진다. 2019년 롯데쇼핑 할인점은 1만2995명에서 1만616명으로 18.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 직원 수는 2만5779명에서 2만2744명으로 11.7% 줄었다.

같은 유통업종이지만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 편의점은 고용 인원이 늘었다. GS25 직원은 2019년 2463명에서 지난해 2699명으로 9.6% 증가했다. 같은 기간 CU는 2641명에서 3303명으로 25.1% 뛰었다.

직원 수 변화는 매출의 결과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유통업계에서 대형마트 매출 비중은 27.8%였지만, 지난해에는 12.7%로 반토막이 났다. 백화점(17.4%)은 물론, 편의점(16.7%)보다도 비중이 작았다.

이마트는 지난 2월 투자설명서를 통해 “편의성과 접근성에서 강점을 가진 편의점, 저가 상품을 찾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아웃렛 등은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타 유통 업태와의 경쟁 강도가 심화함에 따라 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영업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대형마트에도 ‘봄’이 찾아오면 고용 인원은 다시 늘어날 수 있을까. 최근 대형마트는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를 높이고 먹거리와 즐길거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변신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매출이 증가한다고 해서 고용 인원도 함께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가성비 치킨을 내세운 이마트는 월 대여료가 70만원인 튀김 로봇을 도입해 비용 절감에 나섰고, 무인 계산대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그동안 마트 직원들이 했던 일들을 로봇이나 소비자가 직접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고용 감소는 백화점에서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백화점 마산점은 올해 상반기를 끝으로 문을 닫기로 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점포도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터라 근무지 이동은 기대하기 힘들고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롯데쇼핑이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영업보고서에서 백화점 매장 효율화 작업을 거론한 만큼 이 같은 구조조정은 다른 매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든 이마트, 경영 효율을 위해 부진한 사업부문을 떨어내겠다고 천명한 롯데…. 올해도 감원 바람은 매섭게 불고 있다.

이런 기사 어떠세요?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