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이 된 ‘유명함’

2022.07.28 03:00

[창작의 미래] 돈과 권력이 된 ‘유명함’

사회의 변화와 창작의 미래에 대해 나는 오늘 네 가지 입장을 살펴보려 한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화가

첫째는 “누구나 15분씩은 유명해질 사회가 온다”는 유명한 말이다. 20세기 후반의 미국 예술가 앤디 워홀이 한 말이라고 우리는 기억한다. 이 변화는 바람직할까, 바람직하지 않을까.

발터 베냐민이라면 반겼을 것 같다. 우리가 살펴볼 두번째 입장이다. 베냐민은 20세기 초반의 독일 지식인인데 예술의 민주주의를 꿈꿨다. 누구나 15분씩 유명해진다면 작가도 더는 뻐기지 못하고 독자도 주눅들지 않을 터이다.

반면 창작으로 먹고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닥 반가운 변화는 아니다. 세번째로 살펴볼 것은 책 <콘텐츠의 미래>에 실린 입장이다. 미국의 경영학 교수 바라트 아난드가 몇 해 전에 쓴 책인데, 내가 이 칼럼에서도 몇 차례 초들었다. 요컨대 21세기의 개인 창작자는 창작물로 먹고살기는 글렀으니 창작을 통해 몸값을 올리는 일에 신경을 쓰라는 이야기다. 그런 다음에는 높은 몸값을 이용해 강연이건 공연이건 무어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15분씩 유명해진다면, 창작자가 먹고살 정도로 자기 몸값을 올리는 일도 만만치 않게 된다. 너도나도 유명인사가 되는, 앤디 워홀이 말했다는 이 세상에서 창작자라는 직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봤다. 내 대답은 “가능하다”다. 앤디 워홀이 바로 증거다. “15분 유명”이라는 말은 사실 누가 했어도 상관없을 말인데, 우리는 굳이 그 말을 워홀에게 가져다붙인다. 워홀이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5분 유명”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앤디 워홀이 아니라는 증언이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그 말을 한 사람은 따로 있다. 함께 일한 큐레이터라고도 하고 사진작가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작당을 했다. “우리는 워홀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워홀이 그 말을 한 셈 치기로 했어요. 워홀이라는 브랜드를 우리가 만들었으니까요.” 21세기에는 창작품이 아니라 창작자의 ‘유명함’이야말로 진짜 창작물, 진짜 상품일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 “유명은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었다.” 우리가 살펴볼 네번째 입장은 정치학을 연구하는 이관후 선생의 SNS 글이다(허락받고 지면에 옮긴다). “유명이 유명을 낳고 유명 자체가 권력과 돈을 가져다준다.” 유명해지기 위해 욕먹을 짓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그래서다.

“ㅇ대학에서 청소 노동자를 상대로 학생이 소송을 걸어 이 정도의 ‘유명’을 확보했기 때문에, 곧 더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이번에는 ㅅ대학 학생이 비슷한 인터뷰로 ‘유명’을 벌어들였다. ‘어그로를 끄는’ 수법으로 ‘유명’을 벌어 ‘청년 인재’로 어딘가에 스카우트되는 일이 21세기 사회의 등용문이 되어가는 걸까. 베냐민이 꿈꾼 민주주의 세상이 이런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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