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세계 시민이나 국가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국제사회가 연대해 그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11분간의 연설에서 ‘자유’를 21차례 언급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제시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는 백신·치료제 공동 이니셔티브에 3억달러, 세계은행 금융중개기금(FIF)에 3000만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글로벌 감염병 대응을 위한 글로벌 펀드에 대한 기여도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가치 외교를 추구하며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와 연대를 내세운 외교 방침은 구체성이 떨어지고 한가하게 들렸다. 특히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또다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국내에서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킨 중국, 핵 선제 공격 등을 법제화한 북한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가치 외교에 집착할수록 중국·러시아 등과의 관계는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 미국도 자국 우선주의를 철저히 실행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한국산 전기차가 차별받게 된 데 이어 바이오 산업까지 타격을 받을 판이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미국 편을 들어도 미국은 우리에 대한 배려가 없다. 실익이 없는 외교 노선을 걷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이날 대북 정책에 대한 언급은 쏙 뺐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곽만 내놓은 ‘담대한 구상’에 대해 내용을 추가로 보태지 않았다. 한국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 부족을 반영하는 듯해 유감스럽다. 하지만 북측이 거부할수록 남측 정부는 더욱 일관성을 보여주어야 남북대화가 성사된다. 국제적으로 주목되는 연설에서조차 북한을 언급하지 않으면, 담대한 구상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진심까지 의심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한국이 중견국가로서 외교 정책을 새로 다져야 할 때인 것은 맞지만, 구체성이 떨어지는 공허한 외침을 남발할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외교 행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일변도의 방향성은 물론 의전 하나까지 챙기는 정밀한 외교가 시급하다. 윤 대통령은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외교 전열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