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기억할 말들을 만날 때 단단해진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다가올수록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내가 몇년째 엇비슷한 말들에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이 앞장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밀어가며 만들어온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조금 낯설고 많이 속상하다.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변곡점 중 하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다. 2017년 8월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과했다. 많은 이들이 촛불 이후 달라진 시대를 보여주는 징표로 읽었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었다. “지난 정부가 선체 침몰을 지켜보면서도 승객 한 명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정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에 대한 질문을 등장시킨 사건이었다. “팽목항에서 우리는 국가의 거짓과 무능함을 마주했어요. 언론의 무책임함과 정치인들의 민낯도 보게 됐어요. 그동안 우리가 철석같이 믿었던 세상이 산산이 다 부서졌어요.” 희생자 웅기 엄마 윤옥희의 말(<520번의 금요일>)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에 대한 질문에 ‘지난 정부의 문제’라고 응답했다. 진상규명은 전혀 다른 과제가 되어버렸다. 생명과 안전을 지킬 줄 모르는 국가를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과제가 아니라, 새 정부를 향해 쏟아지는 해묵은 요구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급할 이유도 없었다. 이미 정부는 바뀌었고 문제는 사라졌으므로. 더디지만 조사와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국가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질문을 숨겨버린 사이에 재난참사 피해자에게 응답조차 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4·16생명안전공원에 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앞선 참사들이 어떻게 잊혔는지 되새기게 되었다. 재난을 기억하려면 공식적인 기록과 장소와 의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청와대로 초청한 유가족을 향해 대통령은 거꾸로 ‘지역 주민을 설득하시라’고 주문했다. 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으로 부르며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 앞에서 유가족은 피켓을 들고 ‘설득’해야 했다. 재난을 기억하는 일이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길임을 확인해온 시간이 무색하게, 피해자와 반대자가 서로 풀어야 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10주기를 앞두고 착공도 못한 현실은 그 결과다. 기억하겠다는 약속도 기억하자는 제안도 이런 멈춤 앞에 망연하다.
“사회적 참사를 수습하는 일은 참사에 대한 너와 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고, 우리가 왜 다 같이 보듬고 극복해야 하는지를 모두에게 설득하는 과정이고, 그게 바로 정치라고 생각해요.” 희생자 영만의 형 이영수의 말(<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을 빌려서 짚어보자면, 세월호 참사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정치화되는 동안 ‘정치’는 오히려 사라져왔다. 기억할 말을 찾는 일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있다면 함께 기억할 ‘우리’가 흩어지고 희미해진 탓은 아닐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야기들이 다시 만나야 할 때라는 점은 알 것 같다.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낸 두 권의 책,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를 읽으면서 큰 위로를 얻었다. 유가족이라도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생존자라는 이름에 갇힐 수 없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함께 걷는 사람들. 우리의 시간은 멈춘 적이 없었다. 기억하려는 우리가 있는 한 기억은 제 말을 찾아낼 것이다. 기억은, 언제나 동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