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속에 환경호르몬 얼마나 있을까?”···바이오모니터링이 말해주는 것

2024.04.18 17:02 입력 2024.04.18 17:37 수정

전남 여수청소년수련관에서 지난해 12월7일 바이오모니터링 시민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전남 여수청소년수련관에서 지난해 12월7일 바이오모니터링 시민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아토피를 앓는 네 살배기와 열 살 자녀를 둔 장원정씨(41)는 아이들의 거친 피부를 볼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아토피 전문병원에도 가봤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장씨는 주변 환경의 영향 탓이라고 생각했다. 환경오염과 환경호르몬 물질이 원인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6개월간 목감기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장씨는 18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와 자녀의 몸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데이터로 확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올해 바이오모니터링 사업에 참가했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바이오모니터링과 같은 분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이오모니터링은 체액(피·소변) 검사를 통해 내 몸 안에 있는 환경호르몬 등 유해인자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구를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시민과 함께하는 바이오모니터링 사업’을 하고 있다. 시민단체를 통해 참가 신청을 받았다. 참가비는 무료다. 참여 가구는 지난해 28가구(성인 42명, 어린이 41명)에서 올해 48가구(성인 78명, 어린이 83명)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프탈레이트 대사체 11종, 과불화화합물 17종 등 환경호르몬 52종이 주요 분석 대상이다. 알레르기와 우울증 등을 일으키는 환경호르몬으로, 심하면 암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박은정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팀장은 “주로 중금속 노출 등 환경 이슈에 민감한 분들이나 아토피, 비염을 앓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1차 검사는 지난 2일부터 나흘간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조사 기간 매일 소변을 채취했다. 채혈은 한 차례 했다. 집안 내 먼지도 포집해 시료로 제출했다. 모니터링 후에는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침에 따라 생활습관 개선에 나서고 8월에 한 차례 추가 검사를 한다.

모니터링을 마친 장씨는 프탈레이트 성분이 들어간 헤어스프레이 사용을 중단했다. 락스·세정제·로션 등도 성분표를 확인해서 사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장씨는 “매일 먹는 음식이 체내 환경호르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말을 듣고 인스턴트 음식도 줄이고 있다”며 “당장 변화를 체감한다기보다는 꾸준히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참가자인 김태정씨(45)는 “10년간 교외 지역에 살아서 환경호르몬 수치가 좋게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높게 나와 놀랐다”며 “비닐 대신 종이봉투, 플라스틱 대신 유리 제품을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아이들이 ‘플라스틱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바이오모니터링 참가자들이 지난해 12월 4일  망우마중마을활력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결과발표회에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바이오모니터링 참가자들이 지난해 12월 4일 망우마중마을활력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결과발표회에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중년에 접어들면서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껴 참가한 이들도 있다. 지난해 참가자 나영윤씨(47)는 불규칙한 생활을 해도 금세 회복되던 과거와는 달리 몸이 무거워진 걸 느꼈다. 고혈압 등 성인병 지표도 나빠졌다. 나씨는 “환경호르몬 수치를 눈으로 확인하니 생활을 개선해야겠다는 게 실감났다”고 말했다. 그는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 등도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는 요인이라는 걸 알고 사용을 최소로 줄였다”며 “식당에서 포장음식을 주문할 때도 직접 냄비를 가져가서 담아 온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자들에게 연구과제도 생겼다. 지난해 28가구를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과 관리 결과를 보면 산화성 손상지표와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환경성 페놀류는 수치가 감소했지만, 프탈레이트 대사체 수치는 오히려 증가했다. 최인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센터장은 “아직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며 “올해는 좀 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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