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서있던 그 기둥은 왜 무너졌을까···윤형근 회고전

2018.08.14 15:15

윤형근이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듣고 분노에 차 그린  ‘다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형근이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듣고 분노에 차 그린 ‘다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단단히 서있던 작가 윤형근의 ‘천지문’은 1980년에 쓰러졌다. 다행히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양쪽에 있는 큰 기둥들이 단단히 버텨준 덕분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직후 윤형근은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분노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4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윤형근’ 회고전이 개막했다. 윤형근은 한국 단색화의 1세대 작가로, 또 유명 서양화가 김환기의 사위로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세상을 떠난 이후 유족들이 보관해오던 미공개 작품과 자료도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인다.

전시를 준비한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사는 “윤형근의 삶은 곧 한국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1947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적당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학창시절 ‘시위 전력’ 때문에 당시 반공단체인 보도연맹에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1956년에는 전쟁 중 피난을 가지않고 서울에서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6개월간 복역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도 윤형근은 ‘밝은 색채’의 추상화를 주로 그렸다. 1961년부터 1973년까지 숙명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의 영향도 짙게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윤형근은 1966년 첫 개인전을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었다. 당시 출품작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사진자료를 통해 본 작품에는 ‘섬 풍경’ ‘호수’ ‘매화와 달’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제목이 붙여졌다”고 설명했다.

1966년 윤형근 개인전에 출품한 제목 미상의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66년 윤형근 개인전에 출품한 제목 미상의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72년 한지에 유채로 그린 ‘드로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72년 한지에 유채로 그린 ‘드로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72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청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72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청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러나 1973년을 기점으로 윤형근의 그림은 달라진다. 그해 윤형근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다. 숙명여고에 부정입학한 한 학생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았는데,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뒤를 봐주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윤형근의 외아들 윤성렬씨는 “공식적으로는 아버지가 쓰고 다니던 모자가 러시아 레닌과 비슷하다는 것이 이유였다”며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벽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모자를 한번 노려본 뒤 확 채어간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레닌 모자’는 미국 뉴욕에 사는 장인 김환기가 즐겨쓰는 모자를 윤형근이 사진으로 본 뒤 직접 만든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윤형근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요시찰 인물’로 찍혀 수시로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10여년간 작업에만 전념했다. 작품에서는 색채가 사라졌다. 이 시기 작품에 대해 윤형근은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다. 하늘의 색인 ‘블루(Blue)’와 땅의 색인 ‘엄버(Umber)’를 섞어 검정에 가까운 색을 만든 뒤 거기에 오일을 타 면포나 마포에 그어 내렸다. 하늘과 땅이 섞여 만든 검정이 기둥을 이루고, 그 사이에는 ‘문’같은 여백이 생긴다. 김인혜 학예사는 “검정색의 우뚝 선 구조들 사이로 무언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며 “형태도 작업과정도 매우 단순한 이 작품들은 서툰 듯 하면서도 수수하고 듬직한 멋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1978년 마포에 유채로 그린 ‘청다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78년 마포에 유채로 그린 ‘청다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듬직하게 서있던 윤형근의 천지문은 1980년 6월 그린 작품에서는 쓰러지고야 만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윤형근은 서울에서 광주의 소식을 전해 듣자 집 마당으로 뛰어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그린 단색화에는 구조물이 불가항력으로 쓰러지면서도 또 서로에게 기대 버티는 모습이 담겼다. 윤형근의 작품 중 감정 노출이 가장 심한 편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눈길을 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재현된 윤형근의 집 거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재현된 윤형근의 집 거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형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형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인생 전체를 함께 돌아보는 전시회 취지에 맞게 작품 외 드로잉 40여 점, 자료 100여 점이 함께 나왔다. 윤형근이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잡았던 서울 신촌집의 작업실과 거실도 한켠에 재현했다. 윤형근이 갖고 있던 김환기, 최종태, 도널드 저드 등의 작품과 고가구, 토기, 도자기 등 수집품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12월16일까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