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경험한 적 없어도 그리운 과거…21세기, 폐허에 탐닉하다

2022.02.15 06:00 입력 2022.02.24 14:40 수정
박정현

폐허로 생명 연장하는 20세기

인천 가좌동의 코스모40. 철과 유리로 만든 전면의 신축동이 기존 공장 건물과 연결돼 있다. 위의 작은 사진은 리노베이션 하기 전의 코스모40 공장 건물. 원래 이산화티타늄을 생산하면서 남은 황산철을 재처리하는 공장이었다. ⓒ Kyungsub Shin, Cosmo 40 No.1, 2016, Pigment Print

인천 가좌동의 코스모40. 철과 유리로 만든 전면의 신축동이 기존 공장 건물과 연결돼 있다. 위의 작은 사진은 리노베이션 하기 전의 코스모40 공장 건물. 원래 이산화티타늄을 생산하면서 남은 황산철을 재처리하는 공장이었다. ⓒ Kyungsub Shin, Cosmo 40 No.1, 2016, Pigment Print

효율·기능·진보의 상징에서 잔해·덧없음의 현장이 된
버려진 공장들, 인기 장소로 부상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미국의 공장 건축을 찬양했다. 효율성과 기능만을 고려해 어떠한 장식도 없이 매끈한 외벽을 지닌 거대한 자동차 공장이야말로 현대성 자체라는 것이었다. 현대건축의 도래를 알리는 복음서 <건축을 향하여>에서 그는 유럽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고 질타하며 미국의 공장 건물이 선사하는 순수한 기하학의 즐거움을 높이 평가했다. 100년이 꼬박 지난 지금 디트로이트 자동차산업의 몰락과 함께 이 공장들은 폐허로 변해 있다.

버려진 공장들은 최근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르코르뷔지에와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효율과 기능, 진보의 상징이 아니라 잔해, 폐허, 덧없음의 현장이었다. 요철 없이 미끈했던 유리와 외벽, 쉼 없이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며 자동차를 생산하던 때에 산업시설의 공간에 눈길을 던지는 이들은 없었다. 소음이 잦아들고 외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지고 철골 기둥에 녹이 슬자 하나둘 공장을 찾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산업시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2010년 서울 마포구 합정동 당인리 화력발전소 앞에 있던 오래된 신발 공장이 카페로 바뀌었다. 두꺼운 철물, 거친 시멘트벽과 벽돌벽, 마감 없이 노출된 슬레이트 지붕, 낡고 해진 창문틀 등을 그대로 둔 채였다. 쇠락한 흔적, 잔해 위에 머무는 경험은 완전히 지나가버린 시간 위에 현재를 덧칠하는 감각을 선사했다. 사람들은 흰 벽과 유리 등으로 빈틈없이 마감된 새로 생긴 카페보다 이곳을 더 ‘진정성’ 있는 장소라고 여겼다. 산업유산의 보호와 재활용이라는 명분과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유행에 힘입어 전국의 산업시설들이 속속 바뀌어갔다. 2019년 미국의 커피 전문 체인점 블루보틀이 한국에 출시하면서 1호점을 서울 내 공업시설이 밀집해 있는 성수동에 인더스트리얼풍 인테리어로 꾸미기도 했다.

용도가 다한 시설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다시 사용하는 일이야 흔한 예다. 그러나 버려진 공장이 인기 있는 장소로 부상하면서 폐허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점은 비교적 새로운 양상이다. 2000년대 초반에 계획을 시작해 2010년에 완공된 경성방직 공장 재개발(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은 옛 사무동 한 동을 남겨 둔 채 공장의 흔적을 완전히 없앴다. 20년 전에는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타임스퀘어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고 있는 대선제분 공장이 지금 공장의 자취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복합시설로 계획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2010년대 이후 달라진 시대의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버려진 공장을 애써 찾아 나선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마포석유비축기지(2017), 부산 F1693(2017), 부천아트벙커(2018) 등은 대형 산업시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된 대표적인 사례다. 석유저장소, 철강공장, 쓰레기 소각장, 조선소, 화학공장, 발전소 등은 생산설비 설치를 위한 높고 넓은 공간, 깊은 지하와 육중한 콘크리트벽이 상업시설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공간감을 선사한다. 철골과 설비라인, 전선 등이 뒤엉킨 실내는 힙한 장소의 전형이다. 아날로그 계기반이 벽을 가득 채운 통제실은 ‘안전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관제실 같은 현장감을 더한다.

코스모40 내부 모습. 기존 공장 왼편에 유리와 철골로 만든 신축동이 끼워져 있다. ⓒ Kyungsub Shin

코스모40 내부 모습. 기존 공장 왼편에 유리와 철골로 만든 신축동이 끼워져 있다. ⓒ Kyungsub Shin

인천 가좌동 ‘코스모40’, 1970년대 공장 건물 옆에
새 건물 세워 끼워 넣어 서로 얽힌 구조로 재탄생

인천 서구 가좌동에 위치한 코스모40도 이 흐름 속에 있다. 1970년대 초 백색 안료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이산화티타늄 생산 공장이 인천 가좌동 일대에 들어섰다. 45개 동의 공장이 있던 화학공장 단지는 2016년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철거되기 시작한다. 이산화티타늄을 생산하면서 남은 황산철을 재처리하는 40동 공장은 단지 외곽 주택가와 인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철거가 진행되는 동안 가림막 역할을 하기 위해 이 재처리 공장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우연히 이곳을 찾은 인근에서 활동하던 젊은 기업가들은 버려진 공장이 뿜어내는 공간감에 매료되었고, 공장을 보존하고 재생하기로 결정한다. 공공기관이나 공장 소유주인 대기업이 진행하는 다른 대형 공장 재생 사업과 달리 코스모40은 동네 주민들에 의해 새롭게 변신하게 된다. 건축가 양수인은 기존 건물을 고치기보다는 새로운 건물을 끼워넣기로 결정했다. 공장을 리노베이션하면 새로운 용도에 맞는 현행 법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단열재를 외벽에 부착하고 내부의 철골 구조에 내화페인트를 다시 칠해야 했다. 이럴 경우 얇은 골강판과 철골, 가늘거나 굵은 배관이 풍기는 분위기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공장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특징이 없어지는 것이다. 오래된 공장만이 선사할 수 있는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필요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 기존 공장과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신축동이면서 동시에 따로 놀지 않는 것이 과제였다.

공장 한쪽에 같은 높이로 지어진 신축동은 3층에서 팔을 뻗어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 끼워진 공간은 외부 계단으로 연결되어 1층에서 다시 신관과 만난다. 독립된 신관이 고리를 만들어 공장을 꿰고 있는 형국이다. 끼워진 부분을 지탱하기 위한 철골 기둥이 공장 1~2층을 가로지르며 서 있다. 건축가는 이 기둥에 조명을 붙여 기둥의 무게를 덜어내고, 새롭게 배치되었음을 드러냈다. 신관이 삽입된 공장 3층의 외부 골강판을 잘라내 외부와 면하는 오픈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정원으로 꾸며진 이곳에서 나무와 풀은 녹슨 철골과 깨끗한 새 철골이 만드는 수직·수평의 프레임을 배경으로 낯선 대조를 이룬다. 신축동은 법적으로 구조적으로 완전히 별개의 건물이다. 건축가의 표현을 빌리면, 한 동이 무너져도 다른 동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시각적 장치도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철과 유리로 가볍고 투명하게 만든 신축동은 공장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구조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별개인 두 건물을 하나로 잇는 것은 건축적 장치가 아니라 사용자들이다. 공장과 신축동은 사람들의 움직임, 커피를 마시고 전시를 보고 콘서트에 참여하는 서로의 배경이 되어 얽혀 들어간다.

21세기가 ‘향수’를 안고 과거를 파헤치는 동안
20세기는 허물어지기는커녕 계속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런 방향은 이후 내부 공간 기획에도 이어졌다. 남겨진 공장의 흔적을 고수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계속 바꿔나가고 있다. 개관한 지 2년이 지난 2021년에는 이벤트, 휴식, 장식 등을 목적으로 하는 폴리(용도를 지닌 건축적인 오브제)가 내부에 설치되었다. 과거를 박제화하기보다는 현재를 위한 무대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낡고 쓰러져가는 듯한 인테리어가 목적인 듯 폐허의 분위기에 집착하는 프로젝트들과 코스모40이 차이나는 지점이다. 고쳤으나 고치지 않은 듯, 또는 새로 지으면서 오래된 형태와 재료를 모방하는 태도와는 구분된다. 코스모40의 건축가와 기획자들은 낡음과 폐허 자체를 탐닉하지 않는다.

그러나 폐허 탐닉과 폐허 활용을 날카롭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폐허 취향이 우리 시대의 기본 정조인 향수에 의해 촉발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 문학평론가 스베틀라나 보임은 20세기가 미래주의적 유토피아와 함께 시작해 향수와 함께 끝났다고 진단했다. 이는 현대 건축의 운명을 설명하는 말로도 손색이 없다. 100년 전 건축은 유토피아가 현실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그려보이는 데 복무했다. 그러나 이제 보존과 재생 주위를 맴도는 건축은 상상 속 향수를 실제 장소로 만들어 제시하느라 바쁘다. 전위에 서 있음을 뽐내던 건축은 요즘 가장 뒤로 물러나 있다. 많은 논자들이 이야기하듯 가상현실과 디지털화의 속도에 비례해 집단 기억과 연결된 향수도 커진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더라도 무방하다. 1970년대 산업시설에서 폐허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이들 가운데 70년대 산업시설을 직접 경험한 비율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바이닐 음반의 부활을 주도하는 계층 역시 아날로그로 음악을 들은 적 없는 디지털 세대이다. 향수는 이제 경험하지 않은 것, 소유한 적이 없기에 상실한 적도 없는 대상이 불러일으킨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카먼은 “근본적으로 향수는 죄의식 없는 역사”라고 말했다. 산업시설에서 폐허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 스며 있는 피와 땀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 미적 경험은 미적 대상 이외의 것을 망각할 때 가능한 법이다.

2022년 현재 우리는 과거를 파헤치며 지낸다. 영광이든 실패든 기념비든 폐허든 20세기의 유산 없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듯 보인다. 20세기는 허물어지기는커녕 계속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르코르뷔지에는 공장을 눈앞에서 보고도 그 현대성을 보지 못한다고 답답해했다. 우리는 폐허가 된 공장에서 버려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시대의 현대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박정현

[콘크리트와 글로 빚은 20세기 한국 건축](11)경험한 적 없어도 그리운 과거…21세기, 폐허에 탐닉하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을 비롯해 <김정철과 정림건축>(편저),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공저) 등을 쓰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등의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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