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말과 사물 | 미셸 푸코

2017.08.18 21:15 입력 2017.08.18 21:19 수정
정성일 영화평론가·감독

원본 읽고 싶게 만든 명문장

[정성일의 내 인생의 책] ⑤ 말과 사물 | 미셸 푸코

어떤 번역 문장을 읽을 때 갑자기 도대체 원래의 문장은 무엇인지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건 번역을 잘했느냐, 못했느냐, 라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말 그대로 그 대목이 너무 굉장해서 원래의 저자가 그 문장을 썼을 때 도대체 어떻게 쓴 것일까, 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원래의 단어. 원래의 구문. 원래의 기분. 누구라도 책을 읽다 보면 아무도 중간에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래의 저자가 쓴 문장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책의 제1장 ‘시녀들’이 내게 그러했다.

먼저 이 말을 해야겠다. 나는 구조주의로 분류되는 푸코의 책으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말과 사물>은 내게 너무 장황했고 중반을 넘어섰을 때 내 호기심에서 너무 멀리 있어서 내 질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설명한 아주 짧은 첫 번째 장을 읽었을 때만큼은 정말 아름답고 우아한 전개에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너무 유명한 이 그림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푸코는 마술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그림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만 같은 문장들. 나는 원래의 문장이 너무 읽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제 일로 파리에 갔을 때 어쩌자고 그만 홀린 듯이 이 책의 불어 판본을 사버리고 말았다. 그런 다음 돌아와 왼쪽에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과 사전을 펼쳐놓고 오른쪽에는 노트를 놓은 다음 한 문장씩 번역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내 책상머리에 ‘시녀들’ 그림이 인쇄된 엽서가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도 당신께 알려야 할 것 같다.

아마 그날도 오늘처럼 더웠던 것 같다. 때로 어떤 책은 번역을 통해서 독서할 때가 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렇게 책을 읽는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