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아버지와 오랜 갈등 이후…자전적 소설로 ‘화해’ 이끌어내다

2019.11.12 21:27 입력 2019.11.12 23:16 수정
장영은

제이디 스미스

교육받지 못한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제이디 스미스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고 작가로 성공한다.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 멀어지지만, <온 뷰티>를 쓰면서 가족들을 이해하고 작품 속에 끌어안는다.

교육받지 못한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제이디 스미스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고 작가로 성공한다.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 멀어지지만, <온 뷰티>를 쓰면서 가족들을 이해하고 작품 속에 끌어안는다.

“아버지는 큰 좌절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열두 살에 학교를 그만둔 다음에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버지는 똑똑했고 교육을 더 받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우리 사이는 좀 멀어졌습니다. 아버지는 70대 후반의 남자로 백인이고, 영국인이고, 교육을 받지 못했고, 흑인 딸이 있었지요. 우리가 같이 거리를 걸어가면 재미있는 한 쌍으로 비춰졌습니다.”

제이디 스미스는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교에 진학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다녔지만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작가의 아버지는 교복 살 돈이 없어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다. “2.6파운드 때문에 인생을 놓친” 소년은 학교 대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열일곱 살에 포탄을 맞고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세월이 흘러 쉰을 앞둔 나이에 30세 연하의 자메이카 출신 여성과 결혼을 했다. 어머니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흑인 여성이 나타나는 순간 유럽 대도시의 빈 방은 사라졌다. 예외가 없었다. “다들 항상 방이 없다”고만 말했다. 1970년대 초반 영국 런던 외곽 지역에는 “아일랜드인, 흑인, 개 출입금지” 같은 포스터가 창문에 버젓이 붙어 있었다. 풍문이 아니었다. 신혼 여행지인 파리에서 호텔 방을 잡을 수 없었고, 런던에서 살 집을 구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백인 문화에서 흑인 여성으로” 겪어야 하는 차별과 모욕을 가슴에 새겼다.

흑인 어머니의 피부색을 물려받은 제이디 스미스는 50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고전을 접하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가족들과는 다른 세계로 옮겨간다.

흑인 어머니의 피부색을 물려받은 제이디 스미스는 50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고전을 접하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가족들과는 다른 세계로 옮겨간다.

제이디 스미스와 남동생들은 어머니의 피부색을 물려받았다. 집안에서 유일한 백인 남성이었던 아버지는 50세 차이가 나는 딸을 무척 사랑했다. 딸은 10대 초반부터 “책장에 꽂힌 책을 다 읽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영국에서 출간된 펭귄북스의 ‘양질의 책’은 모조리 읽었다. 자녀들의 양육과 가사 노동을 전담하면서도 억척스럽게 사회복지사가 된 어머니는 항상 고전과 페미니즘 소설들을 찾아 읽었고, 특히 조라 닐 허스턴, 토니 모리슨, 앨리스 워커 등 흑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10대 초반의 딸에게 필독서로 추천했다. 제이디 스미스는 단숨에 어머니를 능가했다.

제이디 스미스는 15세 때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고 전율했다. 19세기 후반 영국 중부의 상업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사랑과 결혼, 정치와 종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회를 변혁시키고 자유를 쟁취하려는 주인공 도로시아는 바로 조지 엘리엇이었다. 제이디 스미스는 조지 엘리엇의 전기들을 탐독했다. 조지 엘리엇은 “자유나 시간, 정신적 평화가 절대 없었을 것”이 분명한 곡절 많은 삶을 견디면서도 평생 글을 썼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다니거나 남성 작가들처럼 교육을 받지도 않았지만 엘리엇은 모든 것을 혼자서, 도움이 되는 친구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배웠다. 조지 엘리엇은 스펜서와 교유했고,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를 영어로 번역했다. 제이디 스미스는 조지 엘리엇을 사표(師表)로 삼았다.

10대 시절, 50살 차이 아빠에게 극진한 사랑 받아
중독 수준 독서 ‘책은 무해했다’…영화·재즈도 관심
대학 졸업 3년 후 이민자 삶 다룬 ‘하얀 이빨’로 인기
성공할수록 부녀간엔 묘한 균열…점차 대화 줄어
공통의 가치 ‘사랑’ 깨닫고 아버지를 작품에 초대

독서 목록은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제이디 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문학을 섭렵했고, E M 포스터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도 놓치지 않았다. “매일 책을 읽지 않으면 정말 불행”하다고 느꼈다. 제이디 스미스의 독서는 중독 수준이었지만, 책은 무해(無害)했다. 고전 영화와 재즈 음악에도 관심이 생겼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영화에 집중했고, “아주 매력적이고 대담하며 지적”인 캐서린 헵번을 자신의 본보기로 삼았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도 자주 들었다. 재즈 가수가 될까 잠시 고민했다. 입시운도 따랐다. 이민자들과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런던 북서부 웰레스덴 그린의 공영 주택 단지에서 자랐고 줄곧 공립학교를 다닌 제이디 스미스는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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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디 스미스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영국 사회에 희망적인 소식들이 연이어 전해졌다. 제이디 스미스는 케임브리지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함과 동시에 25만파운드의 계약금을 받고 출판 계약을 마쳤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0년에 <하얀 이빨>이 출간되었다. 1975년 런던 웰레스덴 그린에 터전을 잡은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자메이카인, 중국인, 인도인 이민자들의 소외와 분노, 혼돈과 좌절을 천연덕스럽게 다루면서도 다문화 사회를 친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밝게 전망하는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의 요소를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 <하얀 이빨>은 2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단숨에 100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영국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75년생인 제이디 스미스는 20대의 나이에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2002년에는 하버드대에 특별 연구원으로 머물면서 미국 사회와 엘리트 지식인들의 삶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한다.

딸이 성공하자 아버지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하지만 서로의 삶이 너무나 달라져 버렸다. 조금씩 균열이 생겼지만 봉합할 방법은 없었다.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불편해졌다. 제이디 스미스는 한때, “아버지가 친구 아버지들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마치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굴기”도 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쉰 살이었고, 그래서 항상 늙은 아버지”가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게다가 “노동자 계급의 억양”을 사용하는 아버지와 점차 대화가 줄어들었다.

제이디 스미스에게 언어는 중요했다. 그리고 동생들과도 점차 다른 ‘말’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아마 셋 다 계급이 다르다고 할 겁니다.” 막내 동생은 “길거리 아이들”처럼 말했다. 두 동생은 각각 코미디언과 래퍼가 되었다. 제이디 스미스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가족들과 멀어지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곤 했다. 명문가 출신들이 가득한 케임브리지대가 문제였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제이디 스미스는 자신이 이미 10대 초반부터 조지 엘리엇을 읽었기 때문에 동생들과는 “옷도 다르게 입고, 생각도 다르고, 정치관도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2005년 제이디 스미스는 세 번째 장편 소설 <온 뷰티>를 발표했다. “책을 좋아하고 저녁 식탁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 말입니다. 저는 그런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었어요. <온 뷰티>는 제가 그런 가족의 일원이 되는 환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진보 성향의 렘브란트 연구자인 하워드 교수는 아들 제롬이 자신의 경쟁자이자 보수주의자인 킵스 교수의 딸 빅토리아와 결혼을 선언하면서부터 깊은 고민에 빠진다. 두 가족은 종교, 계급, 문화, 인종, 젠더 등 온갖 종류의 갈등을 겪게 된다. 오랜 싸움 끝에 두 주인공은 궁극적으로 서로가 사랑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음을 깨닫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제이디 스미스는 중산층 지식인 가족에게도 “나름대로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을 쓰고 난 후에야 아버지를 자신의 작품에 정식으로 초대한다.

2007년 제이디 스미스는 단편 소설 ‘핸월 시니어’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와 이상한 관계”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않았다. 자녀들이 본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이미 끝난 사람”처럼 느꼈던 딸은 “말년의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다가(…)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사람과 평생 살았지만(…) (자신이) 너무 멍청해서 알아차리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래퍼와 코미디언인 동생들과는 “어떤 식으로든 항상 재치 있는 이야기가 오갔고” 뒤돌아보니 가족들 모두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제이디 스미스는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가족들과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2012년 출간한 장편소설 <NW>에서 제이디 스미스는 고향인 런던 북서부로 돌아왔다. 빈곤이 일상이었던 공영 주택에서 자란 네 사람의 주인공은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간다.

제이디 스미스가 지향하는 문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의 믿음은 확고하다. 시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 작가는 오직 그 질문만을 던진다. “구원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지금 쓰고 읽는 것에 존재한다.” 글 쓰는 여자는 오늘에 집중한다.

■ 필자 장영은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17)아버지와 오랜 갈등 이후…자전적 소설로 ‘화해’ 이끌어내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빙교수다. 이태영, 천경자, 박완서 등 20세기 초 한국 여성 지식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과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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