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아들이 발가락만 닮았다고?

2012.10.22 21:58
김재희 작·김정란 그림

가을로 접어들면서 <삼대>는 대단원을 앞두고 절정으로 치달았다.

의문의 비소 중독으로 조의관이 사망하자 금고 열쇠는 손자 덕기에게 건네진다. 홍경애는 김병화와 가게를 차리고 숨어 살지만, 독립운동가 장훈 일파가 기밀비를 빼돌린다는 의심을 하고 테러를 한다. 한편 경성에 대대적인 검거 바람이 불고 장훈 일파, 경애, 병화가 검거된다. 덕기도 독립자금을 대었다는 명목으로 조사를 받고, 상훈은 덕기가 경찰조사를 받는 사이 유서를 위조하고 금고를 털어서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다. 장훈의 자살로 인해 증거불충분으로 덕기, 병화, 경애가 풀려나오게 된다. 풀려난 덕기는 앞으로 조 씨 가문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망연해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돈이 최우선의 가치가 된 경성에 삼대가 이어져 내려오면서 반목, 암투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서 역경을 헤쳐나가게 된다는 큰 주제를 만들었다. 상섭은 문학적 고비를 넘기고 쓰게 된 <삼대>로 인하여 새 인생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11월에 매일신보에 <삼대>의 정신을 계승하는 소설 <무화과>를 연재하게 되었다.

[소설 횡보 염상섭](12) 내 아들이 발가락만 닮았다고?

1932년 1월, 신문사에 신춘문예 응모 작품에 대한 감상 원고를 넘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치는 종로 일정목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양주동을 만났다.

“염형, 대체 어디를 돌아당기는 거야? 집에까지 갔다 허탕 쳤잖아. ‘동광’지에 실린 소설 봤어요?”

“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문단에 소문이 파다해. 김동인이 쓴 ‘발가락이 닮았다’ 소설이 형 얘기라고.”

상섭은 휘몰아치는 걸음으로 서점으로 달려갔다.

32살의 노총각 M이 몰래 혼인을 하였다. M은 총각 시절에 방탕하게 산 탓에 성병을 앓아 고생을 많이 하였다는 것을 의사인 ‘나’는 알고 있다. M은 결혼 후 자신이 생식능력이 있는지 검사를 받고 싶어하였지만 그냥 돌아간다. 그 후로 M은 아들을 얻었다고 하였다. 어느 날 아기가 아파서 데리고 왔다는 M은 묻지도 않았는데 아기가 증조부를 닮았다느니, 가운뎃발가락이 닮았다느니 흰소리를 하였고 ‘나’는 눈물겨워 얼굴도 닮았다고 말하며 시선을 피한다.

대략 이런 줄거리였다. 상섭의 뇌리에 강하게 꽂히는 것이 있었다. ‘출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김동인이 읽고 자신에게 복수한 것이다. 상섭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세게 문지르고 잡지책을 패대기친 채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바가지를 들고 마당으로 나오던 아내와 딱 마주쳤다.

“오셨어요?”

“재용이는?”

“자요.”

상섭은 아내의 눈치를 살폈으나,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하긴 아내가 그 글을 벌써 읽었을 리 없지만,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헛소문이 돌아 집안에 망신살이 뻗칠 터였다. 상섭은 책상을 끼고 앉아서 밤새도록 글을 썼다. 옆방에서 아들의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울분이 터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섭은 ‘모델보복전’이라는 긴 글을 써서 ‘동광’지의 주요한 주간을 찾아갔다.

“주요한 주간, 당장 내 반박문을 잡지에 실어. 그렇지 않으면 나 정말 가만있지 않을 거야.”

격분한 상섭을 왜소한 체격의 주요한이 두 손을 들어 달래서 자리에 앉혔다.

“문단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고 집안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 김동인이 당장 내 앞에 불러와!”

“지금 동인이가 좀 아파요. 돈 번다고 무리하게 글 쓰다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다고요.”

“웃기고 있네. 다 들어엎을 테니까 그리 알아.”

“염 선생님, 좀 참으십시오. 선생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순히 소설입니다.”

“반박문이나 당장 실으라고!”

주요한 주간은 하는 수 없이 교정을 보아 인쇄소에 넘겼다. 며칠 후, ‘동광’지를 인쇄하는 장소에 상섭이 나타나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주요한이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염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그거 뺍시다. 해도 될 말, 안 해도 될 말 마구 주저리주저리 써댔는데 암만 생각해도 그냥 빼자. 접자고.”

앙버티어봤자 꼴만 우습게 되었다. 병상에 드러누운 동인을 상대로 거친 반박문 내봤자 돌아올 이득도 없었다. 2월의 세찬 바람을 한참이나 맞으며 종로 거리를 쏘다니다 한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인사하는 것도 보는 둥 마는 둥 집필하는 방으로 들어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위 모델문제’라는 제목부터 뽑아보았다.

‘나의 결혼은 김군의 소설 주인공처럼 33세였다. 조선 풍습으로는 아무리 빈궁하다 하여도 이러한 만혼은 예외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 인물과 같이 특수한 부랑생활자라거나 생리적 결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애정의 역사가 있다. 23세에 유녀에게 동정을 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녀에게 미쳐 돌아다닌 일은 없다. 술을 좋아하는지라 간혹 탈선하는 때가 없지 않았지만 결코 상식에서 벗어난 일은 없다. 3·1운동 전에 일본에서 음주하는 버릇을 얻고 실연의 반동으로 생활이 잠깐 난잡하였지만 이미 오사카 구치소에서 4, 5개월 들어앉았던 전후로 정리되었고 머리도 안정되었다.’

상섭은 몇 날 며칠이고 밤새도록 글을 써나가면서 처음에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하지만 차근차근히 써나가다 보니 점차 휘지던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 갔다. 그간 목 뒤에 발찌 부스럼이 나서 고생하였고, 현기증도 종종 일어났다. 동인만 드러눕는 게 아니라 자신도 그 옆에 병상을 펴야 될 형편이었다. 2월 조선일보에 ‘소위 모델문제’라는 자기 성찰의 글을 일주일간이나 연재하였다.

4월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한 일본 주요 인사들이 다치는 의거가 일어났다. 특고형사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삼엄한 종로 거리 한가운데에서 상섭과 동인이 우연히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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