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암세포도 글 쓰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2012.10.31 21:47
김재희 작·김정란 그림

어느덧 상섭의 나이 63세가 되었다. 왼쪽 이마의 혹은 점점 커져 자두만 해졌다. 가족들이 수술을 권하였지만, 그럴 때마다 병원 갈 필요 없다며 그냥 넘겼다. 화창한 봄날 돌로로사 수녀가 부활절 달걀을 들고 찾아와서 상섭에게 권하였다.

“선생님 쉬시면서 이것 좀 드세요.”

상섭이 모른 척하고 방문을 닫았다. 미안해하던 아내가 수녀와 함께 마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화사한 철쭉꽃을 보고 있었다. 상섭이 슬그머니 나와 웃으며 말하였다.

“수녀님, 저 열 여덟에 침례교 세례 받았어요. 이렇게 찾아오셔도 성당 안 나갑니다.”

돌로로사가 환하게 웃으며 답하였다.

“호호호, 걱정마세요. 억지로 나오란 소리 절대로 안할게요.”

[소설 횡보 염상섭](19) 암세포도 글 쓰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집세가 많이 올라 어렵사리 상도동으로 이사하여 짐을 풀고 후배 문인 방인근, 오상순을 불러 조촐한 주안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거참 이기붕이 걱정되는 거라. 내가 보성 다닐 때 선배였는데 그렇게 공부 잘하고 얌전하던 이가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되었는지, 원.”

당시 이기붕은 제4대 민의원 의장이었고, 차기 부통령 자리를 예약한 권세가였다.

“허어, 상섭이 자네나 걱정하게나. 신문연재는 그렇게나 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단칸방 신세일세. 언제나 손 가득히 돈다발 쥐어보겠나.”

방인근이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이사람, 자고로 돈을 만지면 손을 씻어야 한다네. 더러운 것을 만졌으니, 손을 씻는 것은 당연지사지. 내가 자신할 수 있는 일은 내 삶이 돈 따라 다니는 인생은 아니었다는 것이네.”

방인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상관에게 돈만 조금 더 쓰면 승진하는 것도 쉬운 세상이었다. 하지만 상섭은 평생 뇌물과는 거리가 멀었고, 신문사 내부 사정이 정당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싶으면 사표를 쓰고 나왔다.

“정국이 이렇게까지 부패하게 돌아간다면,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1960년 상섭의 예언이 적중하였다. 3월15일 이승만과 이기붕이 대통령, 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곧바로 부정선거 규탄 데모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연달아 4·19 혁명이 일어나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하고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이기붕 일가는 경무대관사에 피신하고 있다가 4월28일 맏아들 이강석의 총격에 의한 집단자살로 막을 내렸다.

상섭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이기붕의 비극에 가슴아파하였다.

“참으로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이듬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 등 육사 출신 장교들이 제2공화국의 사회적 혼란을 명분으로 청와대를 장악하는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시국이 또다시 혼란으로 치닫는 가운데 상섭은 글 쓰는 데만 전념하였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기운이 없고 나른하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원고 10여 장만 써도 잠시 방바닥에 누워야 했다. 글 쓰다 휴식을 취하면서 아주 오래 전 일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삼십대의 일이던가. 오상순 이관구 변영로 등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로 했다. 변영로가 술값이 없으니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원고료를 당겨 보내달라는 편지를 쓰고 기다렸다. 곧이어 50원이 도착하자 일꾼을 부르고 성균관대 뒷산으로 올라갔다.

“어이, 고기 안주에 술을 사다 주려무나.”

상섭들은 심부름꾼이 장만한 술과 안주를 마시며 흠뻑 주흥에 취했다. 그런데 때마침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도 잠시.

“옷이란 게 본시 우리와 자연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니 모두 옷을 버리고 대자연을 흠뻑 느껴보자.”

오상순의 즉석 제의로 옷을 훌러덩 벗었다. 소나무 아래 매여 있던 소가 음메 하는 것을 보다가 누군가 제의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소등이나 타고 산을 내려가 볼까?”

대낮에 소등에 벌거벗은 문인들이 올라타 산을 내려와 시내로 진군하려는데 순사가 제지를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일이었고 아직도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기억이 또렷하였다.

허허, 내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

갈수록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병세가 완연하였다. 아내와 같이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았다.

“암이 염려됩니다.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보아야 합니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하였지만 상섭은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이마의 혹을 수술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오?”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증세로는 직장 쪽에 암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누가 죽었어요? 왜 울어요. 나 괜찮아.”

집으로 돌아온 상섭은 집필실에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이제 살 만한데 글도 더 써야 되는데 이렇게 되었구나. 그날부터 글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장편소설은 엄두를 못 내고 단편 몇 개, 수필, 신문 칼럼 몇 개 고작 써낼 뿐이었다. 몸도 아픈데다 마음도 칼날로 저미듯이 아렸다. 집필실을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날도 많았다.

“재용이 아버지, 좀 나와 보세요. 수녀님이 오셨어요.”

상섭은 팽하니 반대편으로 드러누웠다.

“햇빛 좀 쐬셔야죠. 염 선생님.”

돌로로사 수녀가 집필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상섭은 마지못해 일어나기는 하였지만 마음은 무너져 갈 것처럼 무거웠다. 수녀가 손을 잡고 어루만져주었다.

“주님께 고통을 드리십시오. 모든 두려움과 고난을 주님께 맡기세요. 속으로 끙끙 앓고 계시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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