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시인 오은

2014.10.24 20:55 입력 2014.10.24 21:19 수정
글 백가흠 | 소설가·사진 백다흠 | 은행나무 편집자

진짜 ‘오은’은 쉽지 않은 오은이다

오은, 그가 문단에 나타났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를 만났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특이한 어떤 경험을 하고 온 사람들처럼 그에 대해 떠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먼저 굉장히 어렸고-데뷔하던 때 나이가 스물을 갓 넘었다- 서울대를 다니는 수재였고 그의 말법이 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 당황함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네가 가흠 형이구나?

그가 건네는 반말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얼굴을 붉혔다. 그렇다고 완전한 반말도 아니어서 기분이 썩 나쁘지도 않았다. ‘네가 가흠이구나?’라고 말했다면 그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그의 말투도 좀 특이했는데 새침하고 여성스러운-다른 표현을 고민해도 달리 딱 맞는 게 없다- 말투가 아니었다면 그의 반말은 공격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위인 누나 형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반말이었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후배는 반말을 하고 선배나 선생들은 존댓말을 하는 기이한 풍경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혹 누군가 그에게 화라도 내면 어쩌나 걱정을 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의 반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다. 어쨌든 반말이라는 것은 서로가 가진 진심과 진위에 확신이 없다면 힘든 것이 아니던가. 그는 처음이었지만 그 반말 때문에 우리는 처음이 아니게 되었다. 그 반말은 어느새 친근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반말 안에 묻어나는 애정도 느끼게 되었다. 데면데면한 그 ‘첫’이 어렵지 않게 되곤 했다.

그 반말 때문에 시인 오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쉬운 일일지 모른다. 보이는 이미지만 보면 그는 그저 건방지고 치기 어린 젊은 시인으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특이하고 개성 넘치는 한 시인을 구경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나 겉으로 보이는 오은은 통념상 오해가 쉬운 오은-이름이 예뻐서 자꾸 부르고 싶다-임을 알아두시라. 진짜 오은은 쉽지 않은 오은이다. 반말 뒤에 숨은 깊고 깊은 문학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읽게 된다면, 그저 겨우 그에 대해 하나를 알게 되는 것뿐이다. 실은 그것 빼곤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 오은을 읽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백(白)형제의 문인보](28) 시인 오은

그는 익숙하지만 언제나 처음 보는 사람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가 그림이나 음악에 대해 얘기할 때, 잘 얘기하려 하지 않는 전공-그는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면 이 오은이 가벼워 보이는 그 오은인가 싶을 때가 많다. 곧잘 기억에 잘 남는 이야기들은 그의 가족, 특히 형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가 시를 쓰게 된 계기가 특별해서 그렇기도 하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등단요? 그게 뭔가요?

그가 무슨 일인가 되물었고 전화를 걸었던 담당자는 당황했을 것이다. 내막은 그의 형이 그에게 말하지 않고 그의 시를 월간 ‘현대시’ 신인상 공모에 투고해서 당선된 것. 그는 그렇게 시인이 됐다. 이후 오은은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나 있지 않았다. 그가 데뷔가 뭔지 모르고 데뷔했다가 사라진 뒤, 다시 문단에 등장한 것은 7년 만이었다. 그리고 등단 9년 만에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나왔다. 그동안 공부를 했다는 것 정도 말고는 뭘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돌아온 그는 진짜 시인이 되어 있었다. 동심에서 출발한 말 놀음 같은 시가 역설적으로 현재 문명의 속물주의를 비판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는 좀 더 여유롭고 유연해진 그를 읽을 수 있다. 오은도 서른이 넘은 것이다. 그의 시를 ‘유희’라고 불러야 옳은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으레 그의 다감하고 다정한 말법이 시로 옮겨와 있었다. 그의 시는 이제껏 우리가 시를 읽고 만났던 익숙한 서정과는 다른 모습이다. 새롭고 즐거우며 또 무겁다. 촉감이 부드럽고 몰랑몰랑한데 속은 무거워서 들 수 없는 것, 오은의 시가 그랬다.

그의 산문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그만큼 말을 잘 다루는 시인을 본 적 드물다. 무엇보다 글이 특이하고 새롭다. 그의 감각은 일반적이지 않으며 서사에 필요한 상상력이 산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장르도 그냥 산문집이나 에세이라고 부르기에 뭐한 <너랑 나랑 노랑>이란 책-책에 ‘오은의 색그림책’이라고 붙어있다. 분명 새로운 장르의 탄생임이 분명하다-을 보면 그가 가진 감각의 천재성-그는 분명 나이가 들면 들수록 깊어질 것이다. 장르를 망라한 역동적인 글쟁이의 모습이 보인다-을 엿볼 수 있다. 색깔을 다룬 책은 많았으나 이 책은 오은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색깔에서 명화로, 또 인문학으로 번져나가며 점점 넓어지는 그의 사유를 들여다보는 일은 놀랍기만 했다.

[백(白)형제의 문인보](28) 시인 오은

그를 떠올리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오은은 죽다 살아났다. 몇 년 전 그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입원을 해서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실은 고백하자면 들리는 말에 그가 혹 죽을 수도 있다 해서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말로만 들었던 형과 어머니를 병원에서 보았다. 어찌 문인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울대 다니는 막내아들이 시 쓴답시고 이상한 사람들하고 어울려 다니다가 큰 사고를 당했으니 가히 그의 부모와 형이 떠안은 걱정과 원망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비통함을 감추려고 애쓰던 그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의 몸은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 다리는 깁스를 해서 철사를 박아 매달아 놓았고 한쪽 팔은 어깨부터 손끝까지 깁스를 했고 머리도 다쳐서 곧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찾았을 때 마침 깨어 있었는데 그는 엄청난 진통제를 맞은 탓인지 조금 몽롱해 보였다.

형 어제 왜 술 마시다가 먼저 갔어. 얼마나 서운했다고.

그와 난 전날 만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은 시간과 공간, 사건이 뒤죽박죽되어 꿈에서 본 것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전 일과 얼마 전의 일을 혼동해서 말했는데, 그의 말에 아무렇게나 대꾸를 해주며 마음이 참 아팠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완쾌해서 시인으로 돌아왔다. 예의 그 친근한 반말과 밉지 않은 비호감으로 말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가 다시 건강하게 돌아와 ‘우리 은’이 된 것이 말이다.

▲ 시인 오은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하루에 한 번씩 국어사전을 펼쳐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았다. 2002년 봄 월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로봇과 서사를 다룬 책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그리고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썼다.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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