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태생적 몽상가, 슈만의 두 얼굴

2018.10.05 16:46 입력 2018.10.05 16:49 수정
조은아 |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세상 속 연습실]‘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태생적 몽상가, 슈만의 두 얼굴

소설가 플로베르는 슈만의 인생을 “자연의 질서를 이탈한 괴물”과 같다고 과감히 정의했다. 그 기괴한 일상을 엿볼 만한 청년 시절의 일화가 있다. 19살의 슈만은 손가락 훈련을 위해 기계장치를 발명했다.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린 고무줄에 손가락을 끼워 에튀드를 연습하면 손가락의 독립성을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으리란 기대였다.

그러나 물리적 장치를 이용한 과도한 연습은 결국 가장 약한 손가락인 약지부터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말았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기꺼이 진로를 포기했던 이 법학도는 손가락의 회복을 위해 갓 사망한 동물의 내장에 손을 집어넣는 섬뜩한 치료방법을 택한다. 동물의 생명력이 환자에게 옮겨온다는 미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던 청년의 열망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넷째 손가락으로 인해 좌절당한다. 정신적 고통을 잊고자 한 달 동안 만취상태에 빠졌는데 슈만은 그때부터 일생을 괴롭힐 단기 기억상실과 환청, 환시를 겪는다.

슈만은 태생적인 몽상가였다. 그가 즐겨 택한 작품의 제목들인 판타지(Phantasie), 동화(Marchen), 로망스(Romanze)는 모두 몽상과 환상, 현실 너머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독일의 전설과 중세기사들의 사랑 혹은 무용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 빠져들면서 슈만은 ‘감정의 충동적인 토로’를 스스로 단련했다. 이는 낭만주의 예술의 정신과도 잇닿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실체와 그림자 사이에 끼어 있다.” 슈만이 일기장에서 토로한 구절이다. 이 분열된 자아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대조되는 성격을 지닌 가상의 동반자를 설정했다.

하나는 자유분방하며 열정적인 성격의 플로레스탄(Florestan)이고, 다른 하나는 내성적이고도 부드러운 심성을 대변할 오이제비우스(Eusebius)였다. ‘다비드 동맹 무곡 Op. 6’에선 각 소곡마다 플로레스탄 혹은 오이제비우스란 서명을 새겼고, ‘환상곡 Op. 17’에는 ‘베토벤을 기념하여 쓴 대규모의 소나타,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로부터’란 부제를 달기도 했다. ‘피아노 협주곡 Op. 54’에서도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이 대조적인 성정이 과감하고도 자연스레 경계를 오간다.

슈만은 평소 존경해 마지않았던 작곡가 훔멜을 찾아가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돌아온 평가는 가혹했다. “독특하지만 어딘지 기괴하다.” 슈만의 영원한 연인이었던 클라라는 이렇게 안타까워했다. “그의 곡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내가 굉장히 즐겨 연주하는 곡이더라도 대중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기괴한 몰이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세상 속 연습실]‘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태생적 몽상가, 슈만의 두 얼굴

슈만의 음악을 찬찬히 뜯어보면 논리나 보편 따위는 보란 듯 비트는 단편적 편린 같은 악상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음악이론가 베버는 이를 “생각의 조각들”이라 명명했고, 작곡가 코스말리는 “스케치처럼 휘갈겨쓴 작품이라 음악의 유기적 연속성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확실히 분위기의 전환이나 짜임새의 변화가 예고되지 않은 채 청자의 허를 찌르며 출현할 때가 많다. 구조는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몰이해는 슈만이 철저히 의도한 것인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청자가 ‘탐정소설보다 비밀스레 꼬인 실타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길 바라지 않았던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