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도 없던 시절…빛을 담아낸 ‘청사진’

2019.07.03 21:25 입력 2019.07.03 21:30 수정

참그물바탕말(Dictyota dichotoma) | 애나 앳킨스

참그물바탕말(Dictyota dichotoma) | 애나 앳킨스

밤하늘에 뿌려놓은 은빛 후춧가루 같은 작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아득함에 대한 상념에 젖어든다. 저기 저 별빛은 몇 광년을 지나 나의 망막에 도착한 것일까? 빛의 속도를 측정할 수 없었던 옛날 사람들의 별에 대한 상념은 신화로 연결됐다. 유난히 밝은 별들을 선으로 그어 별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 애틋한 사연들을 버무렸다.

처녀 신 아르테미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사냥꾼이 있었다. 거인족 오리온이다. 여신의 오빠 아폴론은 계략을 꾸몄다. 처녀의 맹세를 저버리려는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고 있던 오리온은 아폴론이 보낸 전갈에게 물려 죽고 만다. 아폴론은 죽은 오리온과 전갈을 별자리로 만들었다. 겨울철 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오리온성좌는 여름이면 전갈자리로 바뀐다.

빛의 속도를 측정할 수 없던 시절
밝은 별들을 선으로 그어 별자리 만들고
그 자리에 애틋한 사연을 버무렸다
겨울 오리온성좌는 여름엔 전갈자리

사진술의 청사진을 제시한 존 허셜
빛을 쏘이면 청색, 닿지 않으면 하얀색
빛으로 그린 그림이 ‘포토그래피’
사진역사의 선두에 기록할 만하다

칼을 치켜들고 있는 오리온의 오른쪽 겨드랑이 부근에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 아라비아어로 ‘겨드랑이 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베텔게우스(Betelgeuse)’ 별이다. 크기가 태양의 900배에 달하는 초거성이며,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다. 천왕성을 처음 발견한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아들 존 허셜(John Herschel·1792~1871)이 베텔게우스의 밝기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1836년 처음 알아차렸다. 그의 발견은 엄밀히 따져보자면 그보다 먼 과거에 속한 일이다. 지구와 베텔게우스의 거리가 무려 640광년이기 때문이다. 베텔게우스에서 출발한 빛의 알갱이들은 조선시대 기간보다 더 긴 시간 여행을 마치고 지구에 도착했던 것이다.

천상에서 쏟아진 빛줄기는 부서지는 파도처럼 사라진다. 존 허셜은 사라지는 빛 알갱이들을 포착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루이 다게르가 사진술의 완성을 공표하기 20년 전인 1819년, 그는 빛을 정착시킬 수 있는 물질 티오황산나트륨을 발견했다. 만약 사진술의 핵심을 카메라 렌즈가 아닌 화상을 고정시키는 정착술, 즉 화학 분야에서 찾는다면 존 허셜의 이름을 사진사(史)의 선두에 기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물을 정확히 관찰할 수 있는 광학장치인 카메라 옵스큐라나 카메라 루시다는 화가들이 이미 그림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558년 <자연의 마술(Magic Naturals)>을 쓴 이탈리아 과학자 잠바스타 델라 포르타는 셔터, 구멍, 스크린에 대해 설명했고, 화가들에게 상하좌우가 바뀌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할 것을 추천했다.

부챗말(Padina Pavonia) | 모자반(Sargassumplumosum)

부챗말(Padina Pavonia) | 모자반(Sargassumplumosum)

사진술의 청사진을 제시한 존 허셜은 1842년 사진술로서의 청사진 기법을 발명했다. 감청색빛 복제물이라 시아노타입(cyanotype) 혹은 청사진(blueprint) 기법이라 말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을 말할 때 쓰는 청사진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비롯됐다. 구연산 철 암모늄과 적혈염을 바른 종이에 빛을 쏘이면 청색으로 변하고,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하얀색으로 남게 되는 네거티브 현상이다. 지금도 쓰이고 있는 필름 현상의 ‘음화(negative)’와 ‘양화(positive)’라는 단어는 존 허셜이 사용했던 용어다. 사진술이라는 단어 역시 그의 것이다. 헬리오그래피, 다게레오타입, 칼로타입…. 사진술을 완성했다는 프랑스의 니엡스, 루이 다게르, 그리고 영국의 폭스 탤벗은 그들의 기술이 사진의 원조라며 그럴듯한 이름들을 붙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사진술의 이름은 존 허셜이 작명한 것이다. 포토그래피. ‘빛’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photo’와 그림을 뜻하는 ‘graphy’가 합쳐졌다. ‘빛으로 그린 그림이 사진’인 것이다.

허셜 친구 딸 애나 앳킨스의 ‘해조류 사진’
감광지 위 화학작용으로 태어난 파란 색깔
푸른 바다에 대한 상념에 젖게 만들고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불릴 만하다

밤하늘이 검은색이 아니라 청색이라면
하늘은 별자리로 가득한 청사진이다
별들이 간직한 사연이 귓가에 들린다면
빛의 연금술이 일으킨 마음속 화학작용

오랜 기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청사진집이 있다. 제목은 다소 밋밋하다. <영국 해조류 사진(Photographs of British Algae)>. 파란색의 책표지를 넘기면 작가의 서문이 하얀색 펜글씨로 적혀 있다. 하단에 쓰인 작가의 이름은 알파벳 머리글자 ‘A. A.’뿐이다. 목차를 한 장 더 넘기면, 고사리 비슷한 양치식물들의 하얀 실루엣이 나오는가 싶더니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기생충이나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외계생명체들이 희끄무레하게 들러붙어 있는 신비한 이미지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미 읽었던 책의 제목에서 해조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두뇌는 피사체들이 바닷속 식물들의 도감이라고 인식하지만, 뇌의 또 다른 부분은 과학적 개념과 무관한 시각적인 이미지가 전해주는 심미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작가 ‘A. A.’는 알고 있었을까? 그가 선택한 사진 복제술의 색깔이 푸른 바다에 대한 상념에 젖어들게 만든다는 것을.

심미안이 부족했던 것이 분명하다. 도서 수집가 윌리엄 랭은 사진집에 표기된 ‘A. A.’라는 알파벳을 ‘익명의 아마추어(Anonymous Amateur)’라고 오독했다. 알파벳 퍼즐을 제대로 맞춘 것은 140여년이 흐른 뒤였다. 1985년 영국의 고미술학자 래리 샤프는 알파벳 ‘A. A.’가 ‘애나 앳킨스(Anna Atkins·1799~1871)’의 머리글자라는 것을 알아냈다. 빅토리아 시대에 보기 드물었던 여성 식물학자의 이름이었다. 화학자이자 동물과 광물을 연구했던 아버지 존 조지 칠드런의 딸 애나 앳킨스는 아버지처럼 학자의 길을 걸었다. 한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해 아버지와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성장환경은 오히려 학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 과학자 아버지의 조수 역할을 도맡았던 앳킨스는 1823년 아버지가 번역한 프랑스 책 <조개 편람>에 조개껍질 삽화를 그려 넣었다. 청사진 기법을 접한 것도 아버지 덕분이다. 청사진법을 개발한 존 허셜이 존 조지 칠드런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바닷말(Ulvalatissima) |  창자파래(Rhodomenia laciniata)

바닷말(Ulvalatissima) | 창자파래(Rhodomenia laciniata)

앳킨스가 1842년부터 제작한 <영국 해조류 사진> 서문에는 그림으로 해조류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이 적혀 있다. 당시 식물도감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삽화를 그리거나 건조시킨 식물을 압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삽화는 작업 시간이 많이 걸렸고, 건조시킨 식물의 표본은 유효기간이 짧았다. 앳킨스는 화학물질이 발린 감광지 위에 말린 식물을 올려놓고 햇빛에 노광했다. 식물도감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애나 앳킨스의 청사진 식물도감 작업은 10년 동안 지속됐다. 389종의 식물들이 3부작으로 제작됐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손수 적어놓은 수려한 펜글씨들은 저마다의 캘리그라피들이다. 글씨체의 아름다움이 식물 이름을 알리는 문자 본연의 기능을 압도한다는 뜻이다. 제작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애나 앳킨스는 사진집을 최초로 제작한 사진가로 기록할 수 있다. 그녀에게 사진술을 전해준 헨리 폭스 탤벗의 사진집 <자연의 연필(The Pencil of Nature)>은 애나 앳킨스의 것보다 1년 늦은 1844년에 출판됐다. 짐작했겠지만,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도 분류할 수 있다.

170여년 전에 찍힌 애나 앳킨스의 청사진집은 17개의 사본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미술 수집가들의 비싼 수집 목록에 올라 있다는 뜻이다. 뉴욕공립도서관은 앳킨스의 청사진들을 디지털로 복제해 온라인 관람의 장을 제공한다. 비록 픽셀로 구성된 입자들의 모임이지만 나는 그 차가운 디지털 입자에서 앳킨스의 손길을 거쳐 포착된 빛점들의 촉감을 상상하게 된다. 그토록 푸른빛의 알갱이들은 170여년의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살아나 내 눈의 망막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돌가사리(Gigartina confervoides)

돌가사리(Gigartina confervoides)

초현실주의 운동이 일어났던 20세기 초반, 사라지는 빛의 움직임에서 사진의 본질적인 속성을 찾은 작가가 있었다. 파리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사진작가 이매뉴얼 라드니츠키(Emmanuel Radnitzky)였다. 그는 자신을 ‘빛의 사람’이라는 뜻의 ‘만 레이(Man Ray)’로 개명했다. 당시 카메라의 가능성을 믿었던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폴 스트랜드 등 미국 사진가들은 사진술의 기계적 메커니즘의 완벽한 정복을 통해 대상의 즉물적 속성을 포착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만 레이는 미국 사진가들의 열정이 사진의 기계적 재현 기능에만 매몰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빛의 현상 그 자체에 집중했다. 피사체와 작가의 정신세계를 중개하는 카메라를 걷어냈다. 그리고 감광지 위에 올려놓은 진주 목걸이, 숟가락 따위의 피사체에 반응하는 빛의 운동과 율동을 사진으로 남겼다.

만 레이는 카메라 없는 그의 사진을 자신의 이름을 본떠 ‘레이오그램(Rayogram)’이라 소개했다. 하지만 감광지 위에 직접 피사체를 올려놓고 사진을 만드는 포토그램(photogram)은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라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 Nagy)도 주목했던 사진 기법이다. 1925년에 출판된 바우하우스 총서 <회화 사진 영화>에서 모홀리 나기 역시 사진기가 아닌 감광판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홀리 나기와 만 레이는 애나 앳킨스가 찍은 아름다운 식물 청사진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앳킨스의 푸른 식물도감을 보았다면, 빛의 리듬과 현상에만 주목하지 않고 색깔에도 관심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이토록 푸른 청사진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최초의 여성 사진가의 존재를 몰랐던 만 레이는 그의 연인 ‘키키’의 진주빛 얼굴과 아프리카 가면을 흑백으로 담은 ‘누에르 에 블랑슈(흑과 백)’ 사진을 그의 대표작으로 남겨놓았을 뿐이다. 모홀리 나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시각 이미지의 형성 과정을 ‘묘사’와 ‘색채’의 영역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사진과 회화는 각각 묘사와 색채의 영역에 적합한 재현 수단이라 정리했다. 사진의 색채에는 전혀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여름 밤 남쪽 하늘에 총총히 뜬 전갈자리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전갈의 형상을 이루는 별들의 무리만을 네모 모양으로 가위로 오려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절취된 이 이미지가 만약 사진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포토그램일 것이다. 밤하늘이 검은색이 아니라 청색이라면 청사진일 것이다. 별들이 간직한 아득히 먼 사연들이 귓가에 들린다면 아마도 그것은 연금술일 것이다. 보는 이의 마음속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빛의 연금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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