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덕·전무송·박정자·손숙이 단역으로…‘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연극 ‘햄릿’

2022.07.17 10:23 입력 2022.07.17 20:09 수정

한국 연극 역사와 함께해온 원로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연극 <햄릿>이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에선 원로 배우들이 주역의 자리에서 물러나 단역으로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선다. 신시컴퍼니 제공

한국 연극 역사와 함께해온 원로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연극 <햄릿>이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에선 원로 배우들이 주역의 자리에서 물러나 단역으로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선다. 신시컴퍼니 제공

“아, 춥다! 뼈가 시리게 추워!”

노배우의 첫 대사가 1200석 대극장을 쩌렁쩌렁 울린다. 공연을 여는 인물은 유랑극단의 ‘배우1’. 이름도 없고 대사도 적은 단역이지만 이 연극 <햄릿>을 열고 닫는 인물이다.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은 원로 배우 박정자가 ‘배우1’을 맡았다.

그와 나란히 등장한 ‘배우2’(손숙) ‘배우3’(윤석화) ‘배우4’(손봉숙)도 대사를 주고받으며 죽음의 시간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이제 산 자는 잠에 들고” “죽은 자 눈을 뜨는 때” “깊은 물로부터, 타는 불로부터” “젖은 대지로부터, 탁한 대기 속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온다. 어릿어릿, 희뜩희뜩!” 원작에는 없는, 배삼식 작가가 탄생시킨 언어들이 긴 제의를 시작하듯 극을 열어젖힌다.

짧은 대사에도 존재감은 묵직하다. 유랑극단 배우 네 명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210년. 배우 1·2·3을 맡은 박정자, 손숙, 윤석화는 한국 연극계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려 왔다. 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무대에서 주연을 맡아 왔지만, 이번엔 단역으로 극을 떠받친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햄릿>은 한국 연극역사와 함께해온 원로 배우 9명이 한 자리에 모여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됐다. 81세의 권성덕과 전무송부터 박정자(80), 손숙(78), 정동환(72), 김성녀(72), 유인촌(71), 손봉숙(66), 윤석화(66) 등 연극계 거목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연기 경력 반세기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섰다. 연출가 이해랑(1916~1989)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 공연된 작품으로, 손진책 연출부터 배우들까지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했던 연극인들이 대거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6년 전 공연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원로 배우들이 주역의 자리를 내려놓고 조연 및 앙상블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다.

연극 <햄릿>의 한 장면. 주인공 햄릿은 배우 강필석(오른쪽)이 연기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햄릿>의 한 장면. 주인공 햄릿은 배우 강필석(오른쪽)이 연기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배우의 힘으로 끌어가는 연극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공연은 무대 장치와 소품을 최소화했다. 대극장의 텅 빈 무대를 지탱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적극적으로 사용된 조명이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배우들의 말처럼, 주역에서 앙상블 자리로 향한 배우들은 절제된 연기와 노련한 완급 조절로 극을 탄탄하게 떠받쳤다. 지팡이를 짚고 제작발표회와 연습실을 찾았던 무덤파기 역 권성덕은 짧은 등장에도 묵직한 존재감이 빛났다.

주인공 햄릿은 배우 강필석이 맡아 6년 전 햄릿을 연기했던 클로디어스 역 유인촌과 비정한 숙부와 조카로 호흡을 보여줬다. “이것은 나의 연극, 나의 무대”라는 햄릿의 마지막 대사처럼, 강필석은 삶과 죽음의 혼돈 속에 분투하는 햄릿을 연기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고 극을 주도했다.

공연은 빛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른 듯한 무대 끝에서 배우들이 객석을 말없이 응시하며 막을 내린다. 관객이 바라보는 것은 삶의 건너편에서 점차 어둠 속에 흐릿해지는 배우들의 형상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집요하게 묻는 연극의 시간이 끝나고, 팬데믹의 시간을 통과해 오랜 만에 대극장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연극 <햄릿>에서 ‘무덤파기’로 출연하는 배우 권성덕.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햄릿>에서 ‘무덤파기’로 출연하는 배우 권성덕. 신시컴퍼니 제공

지난 13일 개막한 <햄릿>은 공연팀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16~22일 공연이 취소됐다. 23일 재개해 8월13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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