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창작을 만드는 작은 동물들
이자벨 심레르 글·그림 | 김희정 옮김 | 킨더랜드 | 72쪽 | 1만7000원
세상 모든 창작자들의 고민은 아마 이렇지 않을까? 뭐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어떻게 하면 지난번과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기막힌 아이디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쓸 만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니 참 큰일이다.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자벨 심레르도 이런 생각들로 밤을 여러 번 지새웠던 것 같다. 그는 <아이디어: 창작을 만드는 작은 동물들>에서 아이디어가 찾아오는 순간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아이디어는 원할 때 나타나지 않는다. 그토록 찾아헤맬 땐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다가,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쯤 “어렴풋이, 살그머니” 다가온다. 처음부터 명확한 아이디어는 없다. 좋은 아이디어일수록 어렴풋하다. 저자가 책 첫 장에 그린 완성되지 못한 사슴 그림처럼.
아이디어를 기다리는 저자의 모습은 텅 빈 의자로 표현된다. 44종의 동물은 작가 내면의 아이디어들이다. 의자 주위를 맴도는 많은 동물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모습이다. 형태를 절반쯤 갖췄거나, 다 갖췄어도 색깔이 없다.
아이디어는 억지로 끌어내려 할수록 더 멀리 달아난다. 잡으려 들면 손가락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는 미끌미끌한 ‘새끼 뱀장어’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도 전개된다. 거대한 ‘코끼리의 코’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볼펜 뚜껑보다도 작은 ‘코끼리 땃쥐의 코’일 수도 있다.
고민의 시간이 길고 초조해질수록 생각은 엉망진창으로 뒤엉키기 마련이다. 얽히고설킨 생각의 타래 끝,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아이디어가 잠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내 사라진다. 그 아이디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선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고독의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아이디어가 당신을 찾아낼 때까지. 뛰어난 창작자들은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 더 기다렸던 이들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당신의 아이디어가 마침내 당신을 다시 찾아냈다. 이번엔 한층 또렷한 모습으로.
글이 거의 없는 그림책인데도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심레르는 이 책으로 2022년 프랑스 일러스트레이션 그랑프리 어린이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