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독·고립 부르는 AI 디자인, 디자이너가 고민해야할 ‘딜레마’”

2024.05.05 17:39 입력 2024.05.05 19:49 수정

윤재영 교수는 ‘디자인 딜레마’에서 가상현실 속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만드는 UX 디자인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사용자의 경험을 좋게 만들고 몰입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지금 내가 가상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것이 디자이너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사진·서성일 선임기자

윤재영 교수는 ‘디자인 딜레마’에서 가상현실 속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만드는 UX 디자인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사용자의 경험을 좋게 만들고 몰입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지금 내가 가상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것이 디자이너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사진·서성일 선임기자

사진촬영 애플리케이션의 ‘뷰티 필터’ 기능은 얼굴의 주름살을 펴주고 턱선이 갸름해 보이도록 만들어준다. 화장을 하지 않고도 정돈된 느낌의 사진을 SNS에 올릴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기능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뷰티필터에 너무 의존하는 바람에 자신이 가진 원래 외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심한 경우 외모의 미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집착하게 되는 신체이형장애, 성형중독,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한다.

사용자에게 편리함, 효율, 즐거움, 위로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디자인의 부작용을 어떻게 다뤄야할까. 홍익대 디자인학부 윤재영 교수는 최근 출간된 <디자인 딜레마>에서 질문을 던진다. <디자인 딜레마>에서는 뷰티 필터 외에도 인공지능을 의인화해 몰입감을 높인 대화형 AI, 온라인 서비스 결제와 구매를 유도하는 다크패턴 디자인, 끊임없이 짧은 영상을 보게 하는 SNS 디자인 등을 사례로 소개한다. 편리하고 기발해보이는 UX 디자인 이면에 있는 윤리적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 딜레마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윤 교수는 “UX 디자인이 사용자와 생산자를 모두 만족시킨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고민해야하는 윤리적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UX디자인은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제품 디자인의 주요소로 고려하는 디자인의 한 분야다. 단순한 애플리케이션 기능부터 정교한 AI 서비스 설계까지 모두 UX 디자인의 영역에 속한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관련된 UX디자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AI 챗봇 서비스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레플리카’라는 AI 챗봇 서비스는 사용자가 대화 상대인 챗봇의 외모를 자신의 취향대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해 몰입도를 높였다. 챗봇의 성별, 나이, 머리모양, 생활공간은 물론 성격과 취향까지도 직접 설정가능하다. 그만큼 챗봇을 향한 사용자의 애착은 강력해진다. 지난 6월에는 뉴욕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던 한 여성이 AI 챗봇과 결혼을 했다는 기사가 나와 화제가 됐다.

윤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점점 더 고립됐고, AI 활용 서비스에 더욱 빠져들었다”며 “외로움을 달래려고 시작했던 것들이 아이러니하게 그 사용자를 더 고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교한 기술은 사람들이 옆집 사람보다는 채팅창에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한다. 마치 연예인과 일대일로 소통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대화형 팬 서비스 앱은 수백만 구독자가 이용 중이다. 해외에서는 경전을 학습해 신과 직접 소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종교 AI 서비스까지도 출시됐다.

윤 교수는 중독을 막기 위해선 “내가 대화하고 있는 대상이 인공지능이라는 걸 중간에 깨닫게 해줘야한다”며 ‘디자인 프릭션’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디자인적으로 ‘마찰’(Friction)을 줘서 사용자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VR 기술 중에 ‘패스 스루’(Pass-through)라는 기술이 있는데, VR 헤드셋을 쓰고도 밖(현실)을 볼 수 있게 해서 가상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방지한다. ‘3시간째 게임을 계속 하고 있으니 좀 쉬어보는 것이 어떨까요’라는 메시지, 게임 속에서 낮과 밤의 시간이 현실세계와 똑같이 흐르도록 보여주는 배경도 디자인 프릭션의 예다.

“사용자의 경험을 좋게 만들고 몰입을 크게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지금 내가 가상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것은 어려워요. 하지만 그것이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죠.”

디자인 딜레마. 김영사 제공

디자인 딜레마. 김영사 제공

<디자인 딜레마>에서는 한때 화제가 됐던 놀이동산의 익스프레스 티켓 논쟁을 통해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한다. 돈을 더 낸 사람이 줄을 서지 않고 빠르게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서비스는 공정성 측면에서 논란이 됐다. 윤 교수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와 별개로 어떤 디자인으로 인해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불편해한다면 그 마음까지도 디자이너들이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책에서는 긴 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이벤트 등을 소개하면서 디자인적으로 문제를 풀 방법을 고민한다. 윤 교수는 “상황을 완벽하게 개선할 순 없겠지만, 소외되는 사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 내 갈등이 조금이나마 풀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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