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겼던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호러 영화는 우리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는 ‘가장 진보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께 공포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이어도
감독 김기영
출연 이화시, 김정철, 박정자, 박암, 권미혜
상영시간 110분
김기영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기이한 감독이고, <이어도>(1977)는 김기영의 가장 기이한 영화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달 역대 최고의 한국영화 100편을 선정하며 김기영의 <하녀>(1960)를 1위로 꼽았다. 하지만 김기영의 미학이 총체적으로 담긴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은 단연 <이어도>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골이 띵한 충격과 마력적인 매혹감이 뒤섞여 그야말로 기이한 기분이었다.
관광회사 기획부장 선우현(김정철)은 제주도에 ‘이어도’라는 관광호텔을 짓기 위해 전설의 섬 이어도를 찾는 관광선을 띄우는 홍보행사를 벌인다. 신문기자 천남석(최윤석)이 배에 올라 행사를 중단하라고 항의하지만 무시한다. 그날 밤 천남석은 선우현과 뱃전에서 술을 마시다 실종된다. 선우현은 천남석 살해 의심을 벗으려 신문사 편집장(박암)과 함께 천남석의 고향인 제주도 인근의 작은 섬 파랑도를 찾아간다. 남자들은 사라지거나 떠나고 여자들만이 남은 섬이다. 선우현은 신비로운 술집 작부(이화시), 천남석과 동거했던 박 여인(권미혜), 매서운 눈매의 무당(박정자)을 만나며 천남석의 행적을 추적한다.
김기영은 남자의 시각으로 여자라는 불가사의한 타자(他子)를 탐구한다. 김기영 영화의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주체적이고 강하다. <이어도>의 외형상 주인공은 선우현이지만 사실상 파랑도의 여자들이 이야기를 주도한다. 선우현의 눈을 통해 보는 파랑도의 여자들은 컴컴한 비밀을 품은 심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낙도를 닮았다. 김기영의 영화는 여성을 타자화한다는 측면에선 여성혐오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상을 해체한다는 측면에선 진보적으로 보인다.
박정자는 김기영의 <충녀>(1972), 이화시는 김기영의 <파계>(1974)로 데뷔한 배우다. 김기영은 이들에게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를 감지해 발탁했다. 박정자는 한바탕 굿판을 벌여 익사한 천남석의 시신을 이어도로부터 데려온다.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펄펄 날뛰는 박정자에게선 활화산 같은 주술적 아우라가 용솟음친다. 이화시의 서늘한 눈빛은 물고기를 잡는 작살처럼 관객의 몸을 콱 꿰뚫는다. 선우현과 편집장은 굿을 구경하다 기가 질려 도망간다. 생명을 향한 여자들의 악착같은 의지와 정념이 붉은 이미지로 뇌리에 새겨지는 장면이다.
박정자는 장재현 감독의 <파묘>(2024)에선 파묘를 의뢰한 집안의 고모로 출연한다. 세월이 50년 가까이 흘렀지만 오금이 저리는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이어도>를 경험한 관객이라면 <파묘>에서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의 대살굿을 지켜보는 박정자가 마치 선배 무당처럼 보였을 것이다.
김기영은 <이어도>에서 실제 제주도 지역의 이어도 설화를 변주해 현대 문명의 성장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천남석은 파랑도에서 모든 재산을 쏟아부어 대규모 전복 양식을 추진했지만 오염수 때문에 처참하게 실패한다. 한창 산업화에 몰두하던 1970년대 한국 상황을 고려하면 김기영의 환경오염 경고는 도발적이다. 파랑도는 여자들이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는 땅이다. 문명 세계인 육지의 환경오염은 비문명 세계인 파랑도의 불임과 한 줄기로 이어진다.
<이어도>의 원시적 에너지는 영화 내내 맹렬하게 폭발하다 결말부의 시간(屍姦)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여자는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는 제사장에 오르고, 남자는 죽음으로서 생명의 씨를 제공하는 제물로 전락한다. 김기영은 <충녀>에서 ‘알사탕 정사’ 장면을 연출하는 등 기괴한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했지만 <이어도>는 가히 기절초풍이다. 한국 영화사상 이만큼 충격적인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체를 드러낸 민자의 대사 “천남석의 자손은 길이 이어질 거예요”는 처연하면서도 섬뜩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 이청준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김기영은 원작에서 멀리 벗어나 독창적인 걸작을 만들었다. 김기영이 <이어도>를 촬영한 1970년대는 박정희 정부의 검열과 외화수입쿼터제가 강고하던 시절이었다. 영화사는 ‘우수 한국영화’ 제작 실적에 따라 정부로부터 외화 수입 편수를 제한받았다. 주로 외화에서 수익을 올렸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흥행은 중요하지 않았다. 덕분에 김기영도 흥행 부담 없이 영화를 만들며 독보적인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 김기영의 다른 영화가 그렇듯이 <이어도>도 검열을 피하지 못했다. 개봉 당시 정부의 난도질로 너덜너덜한 영화였지만 현재는 잘려나간 필름을 복원해 무삭제판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