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여곡 예제 악보에 녹음까지…독자를 신비한 관현악 세계로 인도하다

2018.09.14 16:16 입력 2018.09.14 17:00 수정
조은아 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세상 속 연습실]550여곡 예제 악보에 녹음까지…독자를 신비한 관현악 세계로 인도하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에게 달려가 덥석 손이라도 붙잡고 고맙다란 인사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소극적 감탄이 아니라 능동적인 감사의 마음이다. 이제껏 전공 분야의 서적이었던 경우는 다른 책들에 비해 다소 드문 일이었다.

교과서에 감동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러나 <관현악기법 연구(The study of orchestration)>를 저술한 사무엘 아들러(Samuel Adler)는 의외의 경우였다.

악기법은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관·현·타 개별악기들의 음역과 기법, 음색 등과 함께 더 나아가 이들이 서로 어떻게 어울리는지 성부의 짜임새와 음색의 조화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아들러의 저술이 이 영역의 다른 이론서와 차별되는 점은 악기만 주르륵 나열하는 도식적 이론에 그치지 않고 무려 550여곡에 달하는 풍부한 예제 악보를 첨부하며 이를 CD로 녹음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현악 앙상블의 구조적 색채를 설명하면서 브람스 교향곡 3번의 3악장을 예로 든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친숙한 선율인 이 깊고도 우울한 주요주제를 전경으로 드러내는 데 브람스는 굳이 첼로를 선택했다.

아들러는 이 프레이즈를 놀라운 방식으로 설명한다. 중경과 배경의 대선율은 그대로 두되 주인공인 전경의 선율을 각각 다른 악기에 배치하여 들려준다.

첫째, 주요주제를 바이올린에게 맡겨 연주시켜본다. 이 음역의 바이올린은 여리고 호소력이 크지 않다. 두 번째는 제2바이올린의 G현에 맡겨본다. 아까보다 강렬하긴 하지만 첼로의 높은 현에 비해 다소 어두운 색채를 띤다. 세 번째, 주선율을 비올라에 맡긴다. 감미롭긴 하지만 특징 없는 음역. 호소력이 부족하다. 마지막, 가장 낮은 음역 현악기인 더블베이스에 맡긴다. 투박하고 텁텁한 음색은 멜로디의 윤곽만 겨우 그릴 정도다.

이렇게 네 단계로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그는 말로만 풀지 않는다. 각각의 악보를 성실히 재편집했으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관현악적 실험이 고스란히 음반에도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말과 음표로만 접했다면 사진 속 음식을 상상으로만 맛보는 경우와 다르지 않았겠지만, 직접 들어볼 수 있으니 그 체감의 정도는 확연히 다르다.

저자는 웬만한 근성과 사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방대한 악보를 일일이 재편집하는 번잡함을 불사했으며 재직한 학교(이스트만)의 오케스트라를 소집하여 550여곡에 달하는 모든 예제를 끈기 있게 녹음했다.

달려가 그의 손을 덥석 부여잡고 싶은 이유는 이런 그의 노고로 인해 독자가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악보를 사보한 것은 실상 그의 조교들이었으며, 교수의 으름장 때문에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오케스트라에 혹사당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모든 피아니스트 지망생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 피아노가 열 손가락으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악기라는 자긍심은 오케스트라 음색의 실질적인 매력을 제대로 알아야 실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속 연습실]550여곡 예제 악보에 녹음까지…독자를 신비한 관현악 세계로 인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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