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은 마요르카섬에서 전주곡집을 완성했다. 마요르카섬은 쇼팽에게 ‘행복과 불행이 공존’했던 절묘한 공간이었다. 그는 마요르카섬에 도착하자마자 행복에 들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야. 앞으로 좀 더 나은 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쇼팽과 동행했던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는 마요르카를 떠나며 이렇게 편지에 썼다. “한달 만 더 마요르카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이국 스페인 땅에서 죽게 되었을 것이다.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쇼팽의 작품 목록 중 손꼽히는 걸작으로 칭송받는 전주곡집은 이렇듯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아우르며 태어났다. 이국으로 여행을 떠난 일탈의 행복감은 이방인을 배척하는 냉대에 좌절되었으며, 한겨울의 악천후는 그의 폐병을 악화시켰다. 상드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마요르카에서 쇼팽은 죽도록 아프면서도 천국의 향기를 자아내는 음악을 작곡했다.”

시작은 좋았다. 1838년 11월 쇼팽 일행은 마요르카섬의 팔마에 도착했다. 11월이었지만 프랑스의 6월과 같은 한여름의 날씨였다.

팔마에는 변변한 여관시설이 없어 고메스 공의 별장 하나를 빌렸다. 겨우내 그곳에 머무를 작정이었다. 쇼팽은 떠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산책하거나 상드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피부로 느끼는 자연에 만족했다.

그러나, 마요르카에 지긋지긋한 우기가 닥쳐왔다. 폭우가 쏟아졌고, 비바람이 몰아치자 벽난로 설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집 안에는 습기와 한기가 가득 찼다. 쇼팽은 다시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폐결핵을 페스트에 버금가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쇼팽 일행에게 극도의 미신과 공포에서 비롯된 적대감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의사를 부르기도 곤란했고, 약국에서 약을 구하려 해도 비밀리에 웃돈을 얹어 구해야 했다.

두 사람은 발데모사에 있는 낡은 수도원 건물로 거처를 옮기기로 마음먹는다. 험한 암벽 위에 위치한 수도원 건물엔 햇볕이 잘 들지 않았고,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심한 바람과 짙은 안개에 압도당했다. 발데모사에서의 생활은 쇼팽 일행에게 차츰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었다. 먹을거리도 시내에서 어렵게 운반해 와야 했고, 생활필수품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쇼팽의 병세도 점점 심각해져, 지독히도 끊이지 않던 그의 기침이 초조와 우울의 그늘로 그를 몰아갔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1839년 1월12일 쇼팽은 자신의 전주곡집 Op.28곡을 완성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왕성한 창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파리에서 보낸 플레옐 피아노가 드디어 배편으로 도착한 덕택이었다. 그러나 마요르카 주민들의 냉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들은 교회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쇼팽 일행을 이단자와 같이 대했다. 게다가 바지를 입고 페르시아 담배를 줄곧 피워댔던 상드의 외양은 현지인의 편견을 사기에 충분했다. 상드는 이렇게 회고한다. “마요르카 하늘 밑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이상 머무는 것이 불가능해 어서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반면 쇼팽과 상드의 사랑은 마요르카의 열악한 상황에서 더욱 공고해진 듯 보인다. 그가 모든 악조건을 딛고 훌륭한 걸작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상드의 사랑과 신뢰 덕택이었다.

쇼팽의 프렐류드는 음악학교 입학을 위한 과제곡으로 빈번히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수험생이 입시곡으로 이런 걸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상의 고통을 딛고 예술적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서 이미 서로 닮아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