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의 ‘가라앉은 대성당’…심해에 온몸 빨려 들어가는 듯한 매혹적인 곡

2018.11.30 16:33 입력 2018.11.30 16:39 수정
조은아 |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물은 어떤 틀에도 구속되지 않는 무정형(無定形)의 특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장점을 지니고 있지요. 시대를 망라하고 다양한 작곡가들이 특히 이 물성에 탐닉해 물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연습을 하다 보면, 선율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정형의 장면’과 빈번히 마주칩니다. 이럴 땐 마치 그냥 물방울 정도가 아니라, 물 분자(H2O)를 수소와 산소로까지 해체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장면을 ‘H2O 프레이즈’라 이름 붙였습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52~1918).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52~1918).

드뷔시의 ‘가라앉은 대성당’은 깊은 물 속에 수몰된 성당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연습을 하다 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매혹적인 곡이지요. 이 곡에는 ‘소스테누토 페달’을 활용할 수 있는 악절이 등장합니다. 피아노의 페달 중 가운데 위치한 ‘소스테누토 페달’은 오른쪽 댐퍼 페달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 한층 고도화된 기능을 발휘하지요. 댐퍼 페달이 모든 댐퍼를 일제히 들어올려 아무 음이나 뭉뚱그려 섞는다면, 소스테누토 페달은 건반을 누른 ‘특정음’의 댐퍼만 들어 올려 그 음만 지속시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낮은 음역의 ‘도’음이 네마디 동안이나 유지됩니다. 윗성부는 빽빽하게 꽉 찬 8성 화음이 묵직한 물결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 두터운 음색을 댐퍼 페달로 조절한다면, 베이스에 깔린 ‘도’음의 수명을 단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소스테누토 페달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가운데 페달로 도음의 댐퍼를 먼저 올려놓아 울리게 한 다음, 두터운 화음의 움직임을 오른쪽 페달로 조절하는 것이지요. 깊고 어두운 이 ‘도’음을 연습할 때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 닻을 내리는 느낌이 듭니다. 닻은 바다 밑바닥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뱃사람이 성 프란시스에게 빈정대며 묻습니다. “당신이 진짜 성인이라면, 물 위를 걸어 이 해협을 건널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성 프란시스는 낡은 겉옷을 벗어 물결 위에 펼쳐 놓습니다. 그의 지팡이는 돛단배의 돛처럼 해협 저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곤 한 걸음 한 걸음 물 위를 내딛습니다. 하나 물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세상 속 연습실]드뷔시의 ‘가라앉은 대성당’…심해에 온몸 빨려 들어가는 듯한 매혹적인 곡

리스트 피아노곡 ‘물 위를 걷는 성 프란시스’를 관통하는 주선율은 프란시스의 당당한 걸음걸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수면을 내디딘 첫 음표는 그 하중을 주체하지 못해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습니다. 하나 마디를 바꾸었을 땐 다시 부력을 이용해 수면 위를 박차 오릅니다.

그의 걸음걸이는 여러 양상의 물결을 만납니다. 잔잔한 옥타브 트레몰로가 그의 발밑을 친절히 지탱해주는가 하면, 다급한 상하행 스케일은 노여운 파도를 일으켜 그의 행진을 심각히 위협합니다. 이 걸음걸이 모티브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길 멈추지 않습니다. 성 프란시스의 결연한 의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떠오를 부력을 애써 일으키는 것, 인생도 연주도 더욱더 과감한 용기를 갖추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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