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공예의 본향으로 다시 빛을 발하다

2015.06.30 21:28 입력 2015.06.30 22:36 수정 통영 | 임아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과 통영시립박물관 상생 ‘기획전’ 시너지 효과

▲ 민속박물관은 유물 대여해주고
통영박물관은 흩어진 유물 모아
통영 공예의 역사 한눈에 보게

2013년 9월 개관한 경남 통영시립박물관은 통영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통해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개관 이후 ‘통영의 정체성을 잃은 개인 소장품 전시장으로 전락했다’, ‘혈세를 낭비한다’ 등의 비판을 받았다. 600여개의 전국 공·사립박물관은 상설 전시만 열면서 겨우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산, 일할 사람 모두 부족하다. 학예사 1명이 전시 기획부터 유물 관리, 박물관 운영 및 행정 업무 등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다 보니 하루하루 전시관을 운영하는 데 급급해서 전시 기획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29일 찾은 통영시립박물관은 전통 공예품을 통해 통영이 왜 공예의 본향이었는지 보여주는 전시실로 탈바꿈해 있었다. 1층 전시실 입구에서 처음 만난 영상은 19세기 통영을 재현한 통영성도를 보여줬다. 통영성 내 세병관과 12공방이 묘사된 통영성도에는 작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당시 공예 문화의 뿌리인 공방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했다. 민속실이었던 상설전시실은 전면 개편했다. 독립형 진열장을 이용해 공간을 재구획했고 영상 등을 활용해 중앙 공간을 연출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국의 소장자들을 인터뷰해 통영 공예품의 역사와 현주소를 드러냈다.

‘통영, 명품으로 빛나다’전이 열리고 있는 통영시 국립박물관 전시장 모습. |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통영시립박물관은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의 지역순회전 사업인 ‘K-museums’에 응모했다. 이 사업은 지역 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협업을 통해 침체된 지역 박물관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2년 시작됐다. 두 박물관은 2012년 민속박물관에서 기획했던 ‘선의 미감, 목가구’전을 응용하기로 했고 통영의 역사와 문화에 어울리게 기획을 발전시켰다. 민속박물관은 소장 유물을 대여해줬고 통영시립박물관 강선욱 학예연구사는 통영시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장인들을 찾아 유물을 기증 또는 대여받는 데 앞장섰다.

이번 기획전은 학예사들의 협업이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를 보여준다. 두 박물관 학예사들이 머리를 맞댄 ‘통영, 명품으로 빛나다’전은 통영이 왜 공예의 고장인지 그 역사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기획하면서 지역화에 성공했다. 강선욱 학예사는 “혼자 일하다 보니 생각에 한계가 있고 박물관에 대한 고정관념도 생기는데 그것을 깨고 좋은 방향으로 논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통영 공예는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영이 세워지고 군수품을 만드는 공방이 많아지면서 발전했다. 전쟁 이후에는 군수품 대신 다양한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여러 분야의 생산 공방이 대규모로 생겨났고 상호 분업, 협력을 이루는 12공방 체제를 갖추게 됐다. 강선욱 학예연구사는 “공장이 있으면 협력업체가 생기듯이 18~19세기 공방마다 분업체계가 확립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조선 후기 ‘나전함’.

이순자씨가 소장한 20세기 초 ‘통영이층농’.

통제영 공방에서는 부채, 장석, 그림, 가죽, 철물, 고리짝, 목가구, 나전칠기용품 등의 생활용품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유명 산지가 공예품 1~2개로 이름난 것과 다르게 통영은 다양한 생활용품의 산지였다. 1895년 통제영이 없어지면서 관영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계속 공예품을 만들었고 1970~1980년대 이전까지는 나전칠기를 만드는 사람이 1000명에 이르렀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통영으로 사람을 보내 갓을 맞춰 썼다고 할 만큼 통영갓은 인기였고, 통영자개도 지역 특산물인 참전복 껍데기를 얇게 가공한 진상품이었다. 통영 소반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런 명품들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통영 공예품은 전국에 팔려나가면서 막상 통영에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번 전시의 효과는 전국에 흩어진 통영 공예품을 찾고 모으는 데까지 이어졌다. 강선욱 학예연구사는 전국의 소장자를 찾아내 물건을 기증받거나 대여했다. 알려지지 않은 소장품을 발굴하는 성과도 올렸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좋다. 민속박물관 최순권 학예연구관은 “지역 박물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예산 지원과 함께 협업을 통해 좋은 기획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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