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임스 본드의 애마, 볼보 P1800

스웨덴의 볼보(VOLVO)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예나 지금이나 ‘안전’이다. 이는 기후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비포장도로가 많은 데다 추운 날씨와 눈이 자주 내려 도로가 얼어붙는 악조건 탓에 튼튼하고 안전한 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튼튼하고 강한 차를 만들기 위한 집념으로 아사르 가브리엘손(Assar Gabrielsson)과 구스타프 라르손(Gustaf Larson)이 1927년 설립한 볼보는 뜻하지 않게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다른 브랜드들이 전쟁의 여파로 휘청거리는 사이 볼보는 중립국으로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비교적 거리를 두며 군용차량을 제작, 나름의 기술력을 쌓아간다. 그러다 1944년 독자모델인 ‘PV 444’를 내놓게 된다.

볼보 PV444는 당시엔 첨단장비라 할 수 있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라미네이트 안전유리(Laminated glass)를 사용했다. 전면에 특수강화유리를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차체의 강성을 높혀 안전 지향적인 브랜드, 볼보를 차츰 알리기 시작했다.

볼보의 첫 독자모델 PV 444 <볼보코리아 제공>

볼보의 첫 독자모델 PV 444 <볼보코리아 제공>

특수강화유리·3점식 안전벨트 등 안전 추구 = ‘PV 444’의 성공 이후인 1956년 볼보는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전 세계에 수출된 ‘121/ 122S’는 10년을 넘게 타도 고장이 없는 차로 인기를 얻으며 ‘아마존’이란 애칭을 얻었다. 특히 1959년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를 도입, 업계 최초로 안전벨트를 기본사양으로 하며 볼보가 추구하는 안전철학을 강조했다. ‘PV 444’는 묵직하고 딱딱한 이미지의 볼보를 독특하고 세련된 개념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시작점이 된 ‘121/122S’는 볼보를 안전지향적 브랜드로 각인시킨 모델들이었다.

‘PV 444’와 ‘아마존’의 성공을 바탕으로 볼보는 첫 스포츠카를 내놓게 된다. 바로 스포츠 쿠페 P1800이다. P1800은 볼보 사장이던 거너 엔겔라우(Gunnar Engellau)가 높은 완성도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모델을 제작할 것을 지시한 이후 4년간의 연구 끝에 1961년 5월 출시됐다.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디자인업체 카로체리아 기아(Carrozzeria Ghia)가 맡았다.

볼보 최초의 스포츠카 P1800 <볼보코리아 제공>

볼보 최초의 스포츠카 P1800 <볼보코리아 제공>

2인승 좌석과 길고 큰 곡선 후드가 특징으로, 고풍적이면서 스포티한 디자인은 출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지금도 스웨덴을 대표하는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P1800은 당시 협소한 작업 공간으로 제작 공정을 분담하는 특이한 방식을 택했다. 디자인은 카로체리아 기아가, 바디 제작은 스코틀랜드 프레스드 스틸(Pressed Steel)사가, 섀시 부품은 스웨덴에서, 최종 조립은 잉글랜드 젠슨(Jensen)사가 맡았다.

볼보 최초의 스포츠카 P1800 <볼보코리아 제공>

볼보 최초의 스포츠카 P1800 <볼보코리아 제공>

1,778㏄, 4기통 엔진에 트윈 카뷰레터(Twin carburetor)를 장착한 P1800은 날렵하고 섬세함을 강조한 독특한 디자인과 힘이 부각됐다. 그리고 타코미터 유압 온도계가 일렬로 놓여져 비행기 조종실을 연상케 한 인스트루먼트 패널이나 실내의 접이식 뒷좌석 등 공간 활용성과 적재능력이 우수해 실용성까지 갖춘 차로 평가받았다.

볼보 P1800 주행 모습 <볼보코리아 제공>

볼보 P1800 주행 모습 <볼보코리아 제공>

로저 무어 애마·최장 주행기록 등 화제 = 볼보 P1800에서 빠질 수 없는 유명스타가 있다. 영화 ‘007’ 시리즈 중 7개 편에 등장한 배우 로저 무어의 차로 알려지며 높은 판매고와 함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와 볼보 P1800 <볼보코리아 제공>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와 볼보 P1800 <볼보코리아 제공>

영국TV 시리즈 ‘The Saint’에 등장한 P1800은 지금의 PPL(Product Placement) 개념을 도입한 모델이기도 하다. P1800의 매력에 흠뻑 빠진 로저 무어가 스웨덴 여성과 결혼하고 볼보 박물관을 방문해 친필 사인을 남긴 일화도 또한 유명하다. 영국의 케즈윅(Keswick)에는 영화·TV드라마에 나온 유명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전시한 박물관 ‘Cars of the Stars Motor Museum’이 있는데 이 곳에 P1800이 ‘The Saint’의 공식 차량으로 전시돼 있다.

최장 주행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아이브 고든과 그의 애마 P1800. TV시리즈 ‘The Saint’ 홈페이지 캡처.

최장 주행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아이브 고든과 그의 애마 P1800. TV시리즈 ‘The Saint’ 홈페이지 캡처.

또 하나 유명한 일화는 최장거리 주행으로 기네스에 오른 사례다. 고등학교 교사 출신의 미국인 아이브 고든(Irv Gordon)은 자신의 애마 P1800을 타고 지난 해 450만㎞(280만mile)라는 주행거리 기록을 세웠다. 1966년 빨간색 볼보 P1800S를 구입해 미국 48개주와 캐나다, 유럽의 다섯 나라를 여행하기도 한 아이브 고든은 4번이나 스프레이 칠을 다시 할 만큼 차를 손보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P1800 이후 성능이 향상된 P1800S와 연료분사방식의 P1800E, GT 왜건 P1800ES 등이 있다.

<디지털뉴스팀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볼보 P1800 제원

엔진 형식 : 1.8ℓ l4 / 배기량 : 1778㏄ / 최고속도 : 160-170㎞/h 차체 형식 : 2인승 스포츠 쿠페
최대출력 : 100hp·5500rpm / 최대토크 : 14.3㎏·m·3800rpm / 전장 X 폭 X 전고 : 4400㎜ X 1700㎜ X 1285㎜
총 중량 : 1070㎏ / 제로백(0-100㎞/h) : 11.9초 / 트랜스미션 : 4단 수동
디자이너 : 카로체리아 기아(Carrozzeria Ghia)사 Pelle Petterson. / 생산년도 : 1961~1972년 / 총 생산대수 : 3만94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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