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BMW의 상징·전설이 된 크리스 뱅글

2013.04.16 16:29 입력 2013.04.16 16:41 수정

BMW의 총괄 디자이너였던 크리스 뱅글은 자동차 디자인계의 ‘이단아’ 또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파격과 변화를 모티브로 한 그의 남다른 혁신성과 창의성 때문이다. 미국인 최초로 BMW 총괄 디자이너 자리에 오른 사실만으로도 그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엄숙하고 점잖은 BMW의 직선 라인은 그의 손을 거치면서 매혹적인 곡선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BMW의 상징이 됐으나 당시만 해도 너무 파격적이었던 높이 솟은 후면의 트렁크 라인, ‘뱅글 엉덩이’(Bangle Butt)는 적잖은 논란을 만들어냈다. BMW 마니아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고 언론의 혹평이나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1956년생인 크리스 뱅글(Christopher Edward Bangle)은 미국 오하이오주 라베나에서 태어났다. 목재회사를 다닌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적엔 나무나 공예 도구를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한때 감리교 목사를 꿈꾸기도 한 그는 위스콘신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고, 캘리포니아의 명문인 패서디나의 아트센터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크리스 뱅글.〈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출처 : BMW 코리아〉

‘피아트 쿠페’ 디자인…1992년 BMW 입사

졸업 후 독일 오펠(Opel)사 디자인 파트를 거쳐 이탈리아 토리노의 피아트(Fiat) 디자인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이곳에서 FF방식(엔진과 구동축이 모두 앞쪽에 있는 구동방식)의 2인승 2도어 타입 ‘피아트 쿠페’의 디자인 제작을 주도했다.

피아트를 떠난 후 1992년 10월 BMW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BMW의 디자인은 고급스럽기는 했으나 경직되고 고루했다. BMW는 50여년 동안 시리즈 단위로 크기만 변했을 뿐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인문학을 전공한 크리스 뱅글은 근본적인 변화를 꾀했다. 자동차 디자인이 단순히 시각적인 멋스러운 것 외에 소비자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야 했다. 편안한 차를 요구하는 아기 엄마들의 요구에 따라 미니밴이 등장했듯이 고객의 요구에 따라 차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 뱅글.〈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은 여기에 감성을 덧씌웠다. 차의 디자인과 차를 보는 사람의 감성이 일치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 기여도를 높일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가치는 현재 BMW의 근간이 되고 있다. 롱노즈 숏데크 타입의 대형 쿠페인 콘셉트카 ‘Z9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는 이런 면에 충실한 차다. 핸들에 변속 스위치가 달렸고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에 카본 패널을 붙인 차체를 써 무게를 줄이고 강성을 높였다.

크리스 뱅글. BMW 코리아 제공

크리스 뱅글. BMW 코리아 제공

최고 역작 7시리즈…언론 혹평·살해 협박도

크리스 뱅글의 역작은 바로 BMW 플래그십(최상위급) 모델 7시리즈다. 2002년형(4세대) 7시리즈(E65)부터 두각을 보인 그의 디자인은 혁신성과 차별성으로 대변된다. 직선의 단순함을 버리고 ‘파격’을 입혔다. 엄숙했던 직선의 라인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한껏 치솟은 뒷 트렁크 라인은 경쟁 모델 벤츠 S클래스보다 차체를 커 보이게 했다. BMW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7시리즈의 파격적인 변신은 그러나 곧바로 심각한 저항을 불러왔다.

BMW 마니아들은 물론 언론의 혹평이 이어졌다. 일부 매체에서는 7시리즈를 비롯해 5시리즈(E60)를 ‘역대 가장 못생긴 자동차 50선’에 포함시켰다. 그는 일부 BMW 팬들의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2인승 2도어 타입 ‘피아트 쿠페’. (cc) Wikipedia at Rudolf Stricker.

2인승 2도어 타입 ‘피아트 쿠페’. (cc) Wikipedia at Rudolf Stricker.

하지만 크리스 뱅글의 7시리즈는 이내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7시리즈가 대중의 호응을 얻고 브랜드의 가치를 끌어 올리는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타 브랜드의 벤치마킹도 잇따랐다. 영원한 라이벌 벤츠도 2004년 신형 S클래스에서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을 따라갔고, 포드와 아우디 등 수많은 브랜드들도 주요 모델에서 그랬다.

최고출력 445마력과 최대토크 61.2㎏·m의 760i를 필두로 한 4세대 7시리즈는 럭셔리카 부분 글로벌 판매량 1위(2004년)를 차지하는 등 전체 시리즈 모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모았다.

크리스 뱅글의 대표작인 4세대 7시리즈. 전체 7시리즈 모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모았다.〈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의 대표작인 4세대 7시리즈. 전체 7시리즈 모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모았다.〈출처 : BMW 코리아〉

Z4·5시리즈 등 성공작 배출…2009년 BMW 퇴사

2003년 BMW Z3의 후속작으로 나온 스포츠 로드스터 BMW Z4는 날카로운 선이 살아있는 디자인으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Z4는 로드스터의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당시 4기통 로드스터를 대신해 등장했다. 차별화된 성능과 디자인으로 포르쉐 박스터와 벤츠 SLK의 아성을 넘보기도 했다. 보다 고급스러워지고 세련된 Z4는 10년 전쯤 판매된 Z8을 연상케 했다. 크리스 뱅글의 또다른 성공작으로 손꼽히는 5시리즈는 ‘독수리 눈매’를 닮은 헤드라이트로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크리스 뱅글의 또다른 역작인 5시리즈(4세대).〈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의 또다른 역작인 5시리즈(4세대).〈출처 : BMW 코리아〉

특히 “기존의 상식에 대한 도전”이라며 내놓은 콘셉트카 ‘지나’(GINA)는 그의 유별남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지나는 폴리우레탄으로 코팅하고 탄력과 내구성이 강해 방수가 되는 천으로 차체를 만들었다. 신축성이 좋아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차 모양을 바꿀 수도 있으며 실제 주행도 가능했다.

이 외에도 X3와 1시리즈 등 여러 작품의 디자인을 주도한 그는 2009년 17년간 몸담았던 BMW를 나와 디자인 컨설팅업체 ‘크리스 뱅글 어소시에이츠 SRL’을 설립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 등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그는 프리랜서로 현재 삼성전자의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크리스 뱅글의 콘셉트카 지나(GINA).〈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의 콘셉트카 지나(GINA).〈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의 콘셉트카 지나(GINA). 탄력과 내구성이 강한 천으로 차체를 만들었으며 실제 주행이 가능했다.〈출처 :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의 콘셉트카 지나(GINA). 탄력과 내구성이 강한 천으로 차체를 만들었으며 실제 주행이 가능했다.〈출처 : BMW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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