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댓글 = 여론, 환상 깨야” “포털 저널리즘, 사회가 고민할 때”

2018.05.02 22:06 입력 2018.05.03 11:42 수정
정리 | 임아영·주영재 기자

전문가 대담

오세욱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왼쪽부터)가 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포털 저널리즘의 문제점과 건강한 여론 형성의 장 조성에 대한 해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오세욱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왼쪽부터)가 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포털 저널리즘의 문제점과 건강한 여론 형성의 장 조성에 대한 해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은 포털이 독점한 한국 사회의 저널리즘 소비가 한계상황에 도달했음을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댓글 규제를 비롯한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진정한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다면 기사 선정과 편집을 하면서 사실상 언론 기능을 하는 포털에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한 여론의 장을 만들 것인가. 경향신문은 포털·언론 분야 전문가인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오세욱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를 초청해 현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댓글을 ‘악의 근원’처럼 보고 있다. 댓글을 없애는 게 해결책일까.

‘댓글 영향력’ 과대평가돼
정치인들이 찾아서 읽는 탓도

아웃링크, 궁극적 방안 확실
언론사 간 기술차에 시기상조
플랫폼 갖춘 뒤 한번에 나가야

오세욱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

오세욱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

원용진(원) = ‘드루킹’ 사건은 네이버 댓글을 조작하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인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네이버는 별 문제의식이 없고, 언론도 지적만 할 뿐 큰 대안은 없는 듯하다. 댓글사건으로 제기된 이번 문제는 사회가 여론을 어떻게 형성하고 관리할 것이냐의 큰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손지원(손) = 댓글이 여론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공론장의 형식은 굉장히 다양하다. 댓글만이 아니라 ‘일간베스트’ 같은 사이트에도 여론이 있다. 여론 조작의 욕망이 있는 이상 어디를 가든 조작을 할 수 있다. 댓글을 없애 유력한 공론장을 없앨 것이 아니라 댓글이 여론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오세욱(오) = 댓글의 영향력이 상당히 확대·과장돼 있다고 본다. 댓글을 다는 사람은 읽는 사람의 5% 미만이다. 정치 기사에 단 댓글을 보고 자신의 지지성향을 바꾸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댓글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는 아직 없으나, 댓글의 영향력이 투표까지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권력 있는 사람들이 유심히 보고 문제를 제기하기에 실제보다 이슈가 더 커졌을 뿐이다. 네이버 댓글 인구통계 조사를 보면 정치 분야의 경우 50대 남성이 댓글을 많이 단다. 주류 남성들이 자신들이 주도해 여론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댓글의 순기능도 있다. 네이버 스포츠의 해외축구 사이트를 가서 댓글을 보면 웬만한 기자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준다.

원 = 자유한국당이 네이버 본사를 항의 방문한 모습을 보고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정쟁·정치의 문제로 보고 있다. 모두가 관여할 중요한 사회문제라고 넓게 볼 필요가 있다.

- 댓글 실명제 이야기까지 나온다.

손 = 공론장의 룰을 정하거나 내용과 형식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규제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포털 규제가 아니라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표현의 자유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표현만 보호하는 게 아니다. 이용자들이 정말 완벽하게 정치한 의견만 제시할 의무는 없다.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보호하는 게 표현의 자유 정신이다. 여기에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이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선 안된다는 법 원칙이 있다. 위헌판결이 난 실명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사실 여론조작은 실명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실명제 때문에 발생한다. 네이버도 완벽한 실명제가 아니고 준실명제이다.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아이디를 3개로 제한하고 누를 수 있는 공감 수도 제한해 사람들이 한 개의 아이디를 거의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여러 아이디를 여러 사람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생각이 나온다. 무한대로 아이디를 만들어 글을 쓸 수 있다면 공감 수가 많다고 해도 이걸 쉽게 여론이라고 보지 않게 된다. 실명제에서 자유로울수록 여론조작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입법이 남발되고 있다.

오 = 실명제를 적용해도 기술적으로 우회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댓글조작도 매크로보다는 사람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어를 하는 중국 동포들이 점조직처럼 퍼져서 사망자나 신용불량자 등의 아이디를 사서 댓글을 단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낳을 것이다. 네이버는 2006년부터 자회사를 두고 정규 인력을 고용해 댓글을 관리하고 있다. 단순 욕설은 물론 민감한 댓글들도 골라내 삭제 처리한다. 일부 이용자들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반발할 정도의 관리 수준이지만 그런 내용들은 알려지지 않았다. 신고만 하면 30일 동안 보지 못하도록 하는 포털의 ‘임시조치’ 제도 같은 것만 해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기계 필터링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사에 적용하는 것처럼 수천개 달리는 댓글을 유사도에 따라 묶는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나은 대안을 찾아야지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손 = 시장의 압박으로 네이버가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유력한 공론장의 주인이니까 이용자들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해야지 규제론으로 이어져 공론장의 형식을 일원화하려는 것은 반민주적 방식이다.

- 포털이 언론이냐의 논쟁이 있다. 아웃링크도 대안이 될지 궁금하다.

포털의 ‘여론 독점률’ 높아
국민 소통 정책으로 고민해야
정부의 대언론 기술 지원 필요

언론, 이익 도모보다 반성 먼저
새로운 미디어 정책 논의해야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원 = ‘포털 저널리즘’은 한국적 사건이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보니 포털의 여론 독점률이 세계적으로 드물 정도로 높다. 결과적으로 언론이 포털에 종속되는 현상이 벌어졌고, 포털을 조작하거나 점령해야겠다는 ‘정복의 상상’까지 생겨났다. 포털 자신들이 여론 형성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적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은 결과다. ‘포털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회가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오 = 언론사가 아웃링크로 가면 몇이나 살아남을까. 언론사 자체 기술력 수준은 천차만별인데 평균적으로 네이버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급상품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상품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곳에 만족할까. 전반적으로 언론에 대한 신뢰가 더 낮아질 수 있다. 다만 아웃링크 논의는 소중하다. 각자 투자한 만큼 보상받아야 하는데 투자해도 네이버로 표준화되니 보상을 못 받는다. 관련 기사 링크를 걸고 영상을 만들어 붙이고 인포그래픽과 슬라이드를 넣어도 네이버에 가면 다 안 보인다. 노력하는 언론이 정당한 대가를 못 받고 노력하지 않은 곳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 저널리즘 발전을 위해서는 아웃링크가 궁극적으로 맞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 1~2년 기간을 정한 후 광장으로 한번에 나가야 한다. “전재료 받지 말고 광장에 나와 떳떳히 승부하자”는 어느 언론사 간부의 말처럼 플랫폼에 의존하지 말고 각자 자기 플랫폼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

손 = 순수하게 검색 플랫폼의 역할만 할 수도 있고, 언론사마다 다양한 형식의 계약이 존재할 수 있다. 사이트 내에서 큐레이션을 하는 방식에 따라 대가도 달라질 것이다. 계약의 자유 영역이라고 본다. 계약에서 지위를 높이려면 언론사들이 사전적 의미에서의 담합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런 방향에서 아웃링크를 지향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본다. 다만 그걸 규제로 해선 안된다. 다양한 뉴스 서비스가 존재해야 하고, 그래야 네이버에 대항하는 신생 플랫폼이 생기면서 언론사와 이용자의 선택권이 다양해진다. 독점적 사업자가 나타나 저널리즘과 국민에게 해가 된다면 1차적으로 언론사 간 계약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 후에도 뉴스 유통에서 독점적 지위가 발생해 전재료나 광고비 책정에서 불공정행위를 한다면 정부가 반독점법으로 사후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원 = 아웃링크를 시켜줘도 기술적으로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장기적으로 지향하되 정부나 언론재단 차원에서 지원책이 필요하다. 이건 단순히 언론사와 포털의 관계가 아닌 ‘사회 여론’이자 ‘사회적 소통’에 관한 문제이다. 공적 기금이 필요한 부분이 때론 분명 있다. 장기적 개입의 차원에서, 국가에서 세워야 하는 국민 소통 정책의 일환으로 고민할 부분이다. 포털도 만약 우리가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의 일원이고 저널리즘 생태계에 한발 걸친 중요한 영역이라면, 포털을 손쉽게 통제하고 규제하겠다는 생각은 거둬들이는 게 좋다. 더디겠지만 당장 할 일은 미디어로서, 언론으로서 포털의 지위를 더 많이 인식시키고 공적 책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 네이버가 매출 규모에 비해 한국 사회에 갖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독점이 생긴 이유는 뭘까. 이런 기업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부족하다.

오 = 기술 기업 연구가 어려운 것은 사람에 의한 직접 조치보다 기계적 조치가 많기 때문이다.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개발자들도 모른다. 이용자 데이터를 받아서 최적의 결과를 만드는 것인데 플랫폼 기업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이용자가 떠나는 것이다. 야후가 대표적이다. 네이버도 이용자가 떠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럽연합이 일반개인정보보호규칙(GDPR) 법안을 내놓은 것은 구글·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린 네이버가 있으니 사정이 다르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만든 플랫폼은 이용자가 늘면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아 더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IT 분야에서는 1등 독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댓글이 곧 여론’ 전제가 환상
조작 욕망 있는 한 어디든 가능
실명제, 오히려 조작 쉽게 해

아웃링크 지향…규제는 안돼
전재료 등 불공정행위 땐 개입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손 = 공정거래법상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려면 먼저 시장을 획정해야 하는데 포털은 검색·콘텐츠·뉴스 등 워낙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어서 시장 획정이 어렵다. 뉴스도 포털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하나이기 때문에 포털이 언론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주체성을 인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 저널리즘과 포털의 상업성이 배치되지 않나.

오 = 저널리즘의 가치는 기계가 파악할 수 없다. 1인 언론사가 특종을 썼더라도 기계가 이를 찾기는 힘들다. 100% 알고리즘은 굉장히 위험하다. 네이버가 정치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신화가 있다. (맞춤형 기사 추천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부딪치지 않게 돼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된다.

원 = 이용자들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원칙을 세우면 방송·신문의 비평은 필요없어진다. 포털이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게 최고의 방식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자기들을 시장에서 유통만 담당하는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실제 그런 존재가 아니다. 여론 형성과 소통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준유사언론기관’의 정체성을 가져야만 한다. 포털은 한편으로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다. 프랑스는 자국 포털의 힘이 없으니 국고를 들여 포털을 키우려 했지만 실패했다. 네이버도 중요한 자원이니 이런 쓴소리를 하는 것이다. 신뢰를 더 쌓고 자신들이 정보를 제공한다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책임을 지는 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하다.

- 기존 언론의 문제도 크다.

원 = 언론사들은 이번 국면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국면으로 볼 게 아니다. 네이버 사건은 언론사의 자숙의 시간, 반성의 시간, 미래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언론사의 구상들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을 논의할 시점이다. 포털에 대항해 언론사들이 의견을 모을 때 여전히 독점적 지위에서 큰 이익을 보는 연합뉴스 같은 통신사는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행보를 보였다. 연합뉴스는 정부가 지배주주인 공적 기구이니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점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포괄적인 언론·미디어 정책이 필요하다.

오 = 언론사가 제일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뷰징’이다. 어느 기사에서는 광고 링크가 60개 넘는 걸 발견했다. 한국 언론사는 아웃링크로 사람을 모았을 때 그걸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사람 모은다고 돈이 벌리지는 않는다. 네이버나 포털이 사회적 책임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공격이 지나친 측면이 있다. 네이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선한 마음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몰아세울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줘야 하는데 정치·경제적 목적으로 공격만 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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