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주도하는 해외 기관투자자, 기준도 마련 못한 국내기관

2022.01.25 14:56 입력 2022.01.25 19:29 수정

인도네시아 수랄라야 찔레곤 시에 있는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부지 전경.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수랄라야 찔레곤 시에 있는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부지 전경. 그린피스

미국 최대의 석유·가스업체 엑손모빌은 최근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중립)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거대 석유기업의 변신은 지난해 5월 ‘친환경 행동주의’를 표방한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이 이사로 추천한 3명이 선임되면서 예고됐다. 엔진넘버원의 지분은 0.02%에 불과했지만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 기관투자자들과 ISS 등 의결권 자문사들은 “엑슨모빌은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했으므로 경영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엔진넘버원의 손을 들어줬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이제 기후 변화를 투자의 주요 고려사항으로 인식하고 있다. 수익률에 민감한 헤지펀드마저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관련 논의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뉴스분석]탈석탄 주도하는 해외 기관투자자, 기준도 마련 못한 국내기관

25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해외 기관투자자의 석탄 기업에 대한 투자배제 사례’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세계 최대규모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석탄이 매출이나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거나 석탄 생산량이 연간 2000만t인 기업은 투자배제 및 감시대상으로 분류한다. 지난해 9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투자배제 및 감시 대상으로 분류한 총 172개 기업 중 ‘석탄’을 기준으로 이 목록에 오른 기업은 절반 가까운 85개사였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도 발전용 석탄을 통해 전력의 30%를 조달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이 기준이 25%로 상향된다. 더 나아가 5GW 이상의 발전용 석탄 용량을 갖추고 있거나 연간 1000만t 이상 발전용 석탄을 생산하는 곳도 투자대상에서 제외된다. 한지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은 “투자배제 전략을 도입하고 있는 해외 기관투자자는 석탄으로부터 매출의 5∼30% 이상을 창출하는 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의결권 행사 등을 통해 석탄 관련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블랙록은 2020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약 1년 동안 기후위기 이슈에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우려로 이사 255명과 경영진 319명에 대해 반대투표를 했다. 이같은 해외 기관투자자의 방침에 한국 기업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1월 네덜란드 연기금 APG는 한국전력공사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신규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승인을 문제 삼아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반면, 국내 금융기관 중 탈석탄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한 기관은 소수다. 기후·에너지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이 이달 발표한 ‘국내 100대 금융기관 기후변화 정책 평가’를 보면 100개 기관 중 탈석탄을 선언한 곳은 70개에 달했지만 67개는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방향만 제시했을 뿐 어떤 기업을 ‘석탄 기업’으로 볼지에 대한 기준도 마련하지 못했다. SC제일은행과 미래에셋증권, 삼성화재이 석탄 사업의 범위만 수립한 상태다.

정책금융기관과 연기금 등 공적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정책은 민간 영역보다 더 소극적이다. 14개 공적 금융기관 중 10곳은 탈석탄 선언을 했지만 투자제한 대상은 신규 석탄발전 사업 뿐이다. 국내 최대 ‘큰 손’인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5월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는 방침만 정하고 이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수연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석탄 기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사업과 석탄 사업을 병행하는 등의 사례는 막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관성 있는 책임투자를 위해 구체적인 투자배제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 선임연구원은 “석탄 관련 투자배제에 대한 절차, 모니터링 주기, 투자배제 정보공개 여부 등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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