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진짜 위기’는 따로 있다

2022.11.07 10:26 입력 2022.11.07 11:36 수정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레고랜드발 자산유동화어음(ABCP) 사태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을 중심으로 자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가 영업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레고랜드발 자산유동화어음(ABCP) 사태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을 중심으로 자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가 영업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2022년 9월 레고랜드 ABCP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사태에서 시작된 국내 단기 금융시장의 자금경색은 2007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개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시장의 급격한 충격을 극복한 정책적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시장에서 발생하는 사건일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올바른 정책 처방을 도출하기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개과정과 정책대응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금융시장에서 발생한 레고랜드 ABCP 사태의 전개과정과 정책적 대응을 설명해볼까 한다.

2022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회고하면서 위기를 촉발한 촉매제(trigger)와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내재해 있던 구조적 취약성(vulnerability)을 구분해야만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촉매제 자체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할 경우 우리는 서브프라임모기지만 타깃으로 삼게 된다. 2008년 발생한 사건은 금융사에서 수도 없이 많이 발생한 금융위기 중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isis)로 불릴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

2008년 9월 15일(현지시간)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금융위기의 피날레에 가깝다. 실상은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모기지를 담보로 한 채권을 담고 있는 ABCP(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몇개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투자자들이 유사한 담보를 담고 있는 ABCP의 차환을 거부함으로써 위기가 시작됐다. ABCP 시장은 2007년 하반기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약 30%의 투자자금, 원화로 400조원 이상의 자금이 유출된다. 이러한 과정은 환매조건부채권(RP·Repurchase Agreement)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2008년 3월 16일 단기자금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된, 월가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Bear Stearns)가 JP모건체이스(JP Morgan Chase)에 인수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후 금융기관들 사이의 거래가 실종됐다. 투자자들의 심리가 극도로 악화하면서 다들 무조건 현금을 확보하고자 했다. 현금 확보를 위해 투자상품의 매도가 폭탄세일(fire sale)처럼 이어졌다. 이를 받아줄 만한 구매자가 없어 다시 투자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여기에 몇몇 투자은행은 특히 위험하다는 루머까지 시장에 돌았다. 해당 투자은행의 주가도 동반하락을 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해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는 파산신청을 했다. 메릴린치(Merill Lynch)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된다. 이어서 9월 21일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연방준비제도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도록 신분전환을 했다.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이 모두 사라진 역사적인 날이다.

요약하자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뱅크런(bank run)이 핵심이다. 비은행금융기관이라는 용어가 낯설겠지만 간단히 제1금융권이 아닌 모든 금융중개기관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증권회사, 특수목적법인(SPC·Special Purpose Company), 머니마켓펀드(Money Market Fund) 등을 떠올리면 된다. 버냉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구조적 취약성은 비은행금융기관들의 과도한 레버리지, 단기금융상품에 대한 지나친 의존, 위험요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화 상품의 투자, 규제당국의 모니터링 실패 등이다. 따라서 향후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나온 2010년의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은 비은행금융기관들의 투자행위를 제약하고 모니터링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레고랜드 ABCP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을 길게 할애해 설명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이번 사태를 진짜 ‘위기’로 확산시키지 않고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높은 금리를 주고서라도 돈을 빌릴 수 있다면 진짜 ‘위기’는 아니다. 1조달러밖에 되지 않던 서브프라임 섹터의 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한 건 기관투자자들이 유사한 위험 노출 상황을 극도로 꺼리면서 단기금융시장이 완전히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 사례에 대응해보자. 레고랜드 ABCP 사태는 이번 시장불안정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레고랜드 ABCP 사태 때문에 없었던 위기가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시장은 몇년 전부터 위험성이 계속 지적돼왔다. 즉 부동산 PF의 위험에 과도하게 노출된 국내 증권사들 상황은 우리 금융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었다.

이참에 금융시장의 불안정(financial instability)과 금융위기(financial crisis)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 단계에서 지나치게 위기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더 많은 투자자의 심리를 위축시키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시장불안정을 진짜 ‘위기’로 발전시키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이용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2022년 11월 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는 4번 내리 0.75%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2022년 들어서만 미국의 기준금리는 0.25%에서 4%까지 무려 3.75%포인트나 올랐다. 유례없이 빠른 상승이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경제는 예상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험요소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도시봉쇄와 경기둔화, 시진핑의 3연임, 미국의 중국 반도체 관련 제재 등 1년 전에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정확히 1년 전 2021년 11월 3일에는 카카오페이가 약 25조원의 시가총액(코스피 14위)으로 모두의 축하와 박수를 받으며 상장한 날이다. 상장 당일에는 SK이노베이션이나 KB금융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작년 카카오페이의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29.6 대 1이었다. 카카오페이 공모에 전 국민이 관심을 가졌던 당시와 비교하면 벤처캐피털(VC) 시장과 기업공개(IPO) 시장이 얼마나 급속도로 냉각됐는지 그 온도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부동산 PF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에 주목해야

10년 전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현장사무소 간판 / 연합뉴스

10년 전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현장사무소 간판 / 연합뉴스

금융시스템 붕괴 초기에 방지해야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 금융시스템에 내재한 부동산 PF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급격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는 점이다. 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 비용은 높아지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해 부동산 PF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이 프로젝트 자체의 비용을 상승시키고 있다. 부동산 PF 시장의 조달금리는 레고랜드 ABCP 사태가 아니었어도 상승했을 터이지만, 투자자들의 심리를 급격히 위축시킨 건 분명히 지난 9월 28일 강원도 강원중도개발공사의 법원회생신청이다.

정부의 개입이 늦었느냐, 빨랐느냐를 놓고선 시장참여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그간 정부의 개입을 정리해보면 10월 20일 채안펀드의 여유재원 1조6000억원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 매입을 재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후 23일에는 50조원 플러스알파의 유동성 공급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채권안정펀드 20조원, 회사채와 기업어음 매입프로그램을 16조원으로 대폭 확대하고 추가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 3조원을 지원하는 정책이 담겨 있다. 이후 10월 27일에는 한국은행이 금융권에 자금을 공급할 때 담보로 받는 적격담보 대상에 공공기관채, 은행채와 한전채를 포함했다. 증권사, 증권금융 등 한국은행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기관에 대해 6조원 규모의 RP 매입을 한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다음날(10월 28일)에는 9개 대형증권사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중소형증권사의 부동산 PF ABCP를 업계 차원에서 일부 소화하기로 발표했다. 그 규모와 실행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11월 1일에는 5대 금융지주가 95조원 규모의 시장유동성 공급방안을 발표했다. 시장유동성 공급 확대 73조원, 채안펀드·증안펀드 참여 12조원, 지주 그룹 내 계열사 자금 공급 10조원을 담았다. 특히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고 한국전력 등 공기업과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늘리고 특수은행채와 여신전문금융사채권·회사채·기업어음, ABCP, RP 매입에 나서는 점이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일련의 대응은 위축된 단기금융시장과 회사채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교과서적인 대응이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더 큰 외부충격이 오지 않는 한 이러한 정책적 대응으로 시장을 안심시키고 돈이 돌게 해서 시장불안정을 극복해나갈 수 있다. 지금은 금융불안정이 더 큰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시점이다. 모럴해저드(moral hazard) 문제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 초가삼간이 불타고 있다. 누가 불을 냈는지 책임을 추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모든 수단을 강구해 먼저 불을 꺼야 한다. 불을 낸 사람을 찾아 지금 물을 길어 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초가삼간이 무너지는 일부터 막고 보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시장의 신뢰 조속한 회복 중요

물론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11월 2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최종금리가 예상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나스닥이 3% 급락했다. 시장금리는 당분간 계속 상승할 것이다. 사업성이나 건전성이 좋지 않았던 중소형건설사나 중소형증권회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정부의 최우선과제는 이러한 시장불안정이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시스템 리스크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가 붕괴되고 이로 인해 미국경제가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불리는 경기침체를 경험했던 것처럼 한 금융회사의 파산이나 사건이 전체 경제금융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위험으로 나아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2022년 노벨경제학상은 처음으로 은행과 금융중개기관을 연구한 학자들에게 수여됐다. 이들 연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은행은 단기자금을 모아 경제에 필수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장기대출을 중개한다. 은행은 항시 자산과 부채의 만기불일치 위험을 갖고 있다. 만약 은행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루머가 돌면 뱅크런이 발생한다. 안전하던 은행도 파산할 수 있다. 따라서 예금자보호제도 등으로 예금의 신뢰를 보장하고 은행권을 지켜야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꾀할 수 있다. 수상자들의 연구는 금융시스템의 붕괴는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초기에 방지해야 더 큰 실물경제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학술적 근거로 활용돼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이후의 정책대응에 크게 기여했다고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평가했다. 지금 우리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도 거의 비슷한 서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교훈을 찾을 대목이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자금 조달하는 시장에서 뱅크런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 주도와 대형 금융회사들 중심으로 시장의 신뢰를 조속하게 회복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태풍이 몰려온다. 국내 시장에서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벌여서는 안 될 일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