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피 직종 1순위 ‘개호’···‘외국인’으로 메운다

2024.06.16 09:48 입력 2024.06.16 18:19 수정 오사카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개호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는 외국인 인력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외무성 홍보 영상 캡쳐

“Grow, Glow, Together in Japan” “Go beyond yourself in Japan”(일본에서 함께 성장하고 빛나라, 자신을 넘어서라)

일본 정부가 자국 내 성장을 강조하며 내건 외국 인력 모집 구호다. 2019년 일본 정부는 일손이 부족한 12개 업종을 ‘특정기능’으로 지정해 해당 분야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대 5년간 체류를 허용하는 특정기능 제도를 도입했다. 특정기능의 핵심 업종은 개호(介護)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자가 목욕, 배설, 식사 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를 뜻한다. 일본에선 병든 사람을 돌보는 간병과 개호(돌봄)를 구분해서 쓴다.

일본인 기피 업종 ‘개호’···외국 인력으로 대체

극심한 개호 인력난을 겪는 일본 정부는 외국인 개호 노동자 모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정기능 업종 가운데 개호 자격 시험 빈도는 월 평균 10회 이상으로 타 업종(월 2회)에 비해 높다. 일본 외무성의 특정기능 제도 홈페이지에는 개호가 최상단에 올라있다.

베트남 출신 멍씨(30·가명)도 지난 2021년 특정기능(개호) 제도를 통해 일본에 정착했다. 자국에서 간호 보조 업무를 한 경험이 있었다.

일본어 자격 시험과 개호 영역 일본어 시험, 기능 시험을 거쳐 오사카 소재 요양시설에서 일을 시작했다. 허가 받은 체류 기간은 5년이지만 향후 일본 개호 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기간 제한 없이 일본에서 일할 수 있다. 멍씨는 “베트남은 일본보다 노인이 적어 돌봄 시장도 작다”며 “일단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입 장벽은 낮지만 노동 강도는 높다. 특히 몸이 왜소한 멍씨에게 개호는 버거운 일이다. 노인을 안아 옮길 때가 가장 힘에 부친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는 없다. 멍씨는 일본 유학 중인 남편을 대신해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적은데 몸이 정말 힘들다”며 “그래도 편의점이나 식당과 달리 대하는 사람이 늘 같아 적응하기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차별·갑질 없지만 노동강도 세고 처우는 낮아

멍씨는 주 40시간 가량 일하고 월 25만엔(약 220만원)을 받는다. 개호 업종 지원을 위한 처우개선 수당을 포함한 금액으로, 베트남 현지 급여 수준을 감안하면 낮지 않지만 일본 내 다른 업종과 비교하면 최저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멍씨의 고된 노동을 지지하는 버팀목은 차별 없는 직장문화다. 한국과 일본,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일하는데, 처우나 수당 역시 정해진 기준에 따라 균등하게 지급된다. 승진·진급도 국적과 무관하다. 근속 연수와 업무 성과에 따라 이뤄진다. 일손이 귀하다보니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도 찾아보기 어렵다.

멍씨는 “일이 힘들 뿐이지 정서적인 부분은 문제 없다”며 “오히려 노인들이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 일본인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다”고 했다.

개호복지사가 일본 요양시설에서 돌봄 서비스 업무를 하고 있다. 박진혁씨(가명) 제공

이달부터 오사카 요양시설에서 개호 일을 시작한 한국인 이현아씨(36·가명)도 직장에서 차별은 느껴본 적 없다고 했다. 이씨는 “몸이 힘들고 배변도 갈아야 하기 때문에 비위 약한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은 맞다”면서도 “차별이나 괴롭힘이 없는 직장이어서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일본 정부는 개호를 비롯한 향후 5년간 특정기능 수용 전망 인원을 종전 34만5000명에서 최대 82만명으로 2.4배 늘려 잡았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입국 문턱을 낮춰 부족한 일손을 외국 인력으로 채우겠다는 계산이다. 일본 내 개호 인력은 2025년 약 32만명, 2040년에는 약 69만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정기능 개호 인력 1년 만에 1만명 증가

특정기능 제도 도입 후 외국인 개호 인력은 늘고 있다. 2022년 7019명에서 지난해 1월 기준 1만7066명으로 늘었다. 기존 특정활동 EPA(경제연계협정)를 통한 체류 인력(3257명), 재류자격(5339명), 기능실습(1만5011명) 인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하지만 특정기능으로 유입된 외국인 개호 노동자가 일본의 만성적인 개호 인력난의 근본 대책이 될 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외국인 개호 노동자의 일본 정착률은 높지 않다. 5년의 체류 기간 동안 돈을 벌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에 남는다해도 개호 업무는 선호하지 않는다. 멍씨는 “일본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개호 일을 계속할 지는 모르겠다”며 “언젠가 베트남에 돌아가면 일본에서 번 돈으로 장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업무 문화에서 오는 갈등도 외국인 개호 노동자의 장기 근속을 막는다. 외국인 개호 전문가인 니몬지야 오사무 AHP네트웍스 이사는 “외국인 노동자는 10일 정도 휴가를 내 고국에 다녀오고 싶어하지만, 일본 직장 문화는 장기 휴가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고향에 다녀오지 못하는 타이트한 환경 역시 외국인 노동자의 불만 사항 중 하나”라고 했다.

특정기능 업종을 소개하는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개호를 첫번째 업종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캡쳐

일본 정부는 개호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개호 업종의 처우 개선을 꾀하고 있다. 처우 개선 수당을 마련하는 한편 지난해에는 전국 개호 인력 급여를 일괄적으로 월 1만엔(약 9만원)가량 인상했다. 전국 개호 업종 종사자를 대상으로 2만엔(약 18만원) 상품권을 지급하는 등 보너스도 지급했다.

처우 개선 나섰지만···기피 현상 막기엔 역부족

하지만 일본의 물가 인상 폭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니몬지야 오사무 이사는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식비 등 개호 시설 운영비도 올랐다”며 “그렇다고 노인들에게 개호 서비스 이용료를 더 받을 수도 없어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쉽지 않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일본인의 개호 업종에 대한 기피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실직과 폐업이 늘자 개호 업종에 대한 관심이 반짝 증가했지만 실제 인력 공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현장 업무의 진입 장벽이 예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10년차 일본 개호복지사(요양보호사) 박진혁씨(37·가명)는 “일본 인력 공급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외국 인력을 급하게 들여오고 있는데, 개호 인력 이탈을 막으려면 현실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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