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행복한 젖소·행복한 계란의 역설과 딜레마

2018.08.09 21:12 입력 2018.08.09 21:19 수정

동물복지를 보는 담론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최대한 인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와 식품 안전에 대한 현실적 요구에 따라 커진 것이 동물복지적 축산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고기의 맛과 질 향상이라는 점에서 공장식 축산보다 더 동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여름 살충제 달걀 파동이 한창일 때 친생태적 환경을 유지해 ‘청정지대’로 주목받은 국내 한 양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최대한 인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와 식품 안전에 대한 현실적 요구에 따라 커진 것이 동물복지적 축산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고기의 맛과 질 향상이라는 점에서 공장식 축산보다 더 동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여름 살충제 달걀 파동이 한창일 때 친생태적 환경을 유지해 ‘청정지대’로 주목받은 국내 한 양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잘 보살핀 가축이 양질 식품 제공
동물들 복지 향상 증진에도 기여”
동물복지적 축산업은 윈윈전략

“대량축산 비판에 복지 표현 담아
육식자본주의서 ‘억압’을 정당화”
동물 해방론자들은 모순 제기

동물복지의 행복 넥서스는
모두에게 이로운 자본주의론 내포
육식자본주의의 딜레마 보여줘


우유를 마시다가 나온 웃음

몇 년 전 어느 날 우유를 마시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유를 즐겨 마시는 편이기는 하지만 유통기한 말고는 우유팩에 무엇이 써 있는지 그동안 자세히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마시던 우유팩의 뒷면에 대략 다음과 같은 문구가 써 있었다.

“○○우유는 젖소가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정 수의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행복한 젖소는 행복한 우유를 만들어냅니다. 신선한 우유 한 잔으로 고객님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말 그대로 ‘행복하게’ 사육된 젖소는 ‘행복한’ 우유를 생산하고 그 우유는 소비자에게 ‘행복’을 선사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 상황에 누가 딴지를 걸고 싶겠냐만은, 당최 이 ‘모두’와 ‘행복’이 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리는 듯 연결시키는 이 문구의 ‘참을 수 없는 진지함’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은 바로 ‘행복한 우유’라는 문구였다. ‘행복한’이라는 형용사는 어떤 구체적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고 ‘우유’가 감정의 주체가 아님을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어떻게 우유가 행복하다는 말인가. 그에 비하면 ‘행복한 젖소’라는 문구는 그만큼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이 동물도 감정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이전에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미 동물을 의인화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한 젖소’는 ‘행복한 우유’에 비해 그것이 비유이건 사실적 표현이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아니게 된다.

‘행복한 달걀’과 착한 소비

물론 ‘행복한 우유’라는 말은 애초에 ‘행복한 젖소-행복한 우유-행복한 고객’이라는 ‘행복 넥서스’ 안에서 가능해지며, 이 말은 ‘좋은 우유’ 또는 ‘신선한 우유’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쓰인다. 여기서 ‘신선한 우유’를 보증하는 것은 따로 수의사까지 두어 잘 돌본 ‘행복한 젖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잘 보살펴진 가축 또는 축산 동물이 더 양질의 식품을 생산하고, 이는 이를 먹는 소비자의 더 큰 만족과 건강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진다는 인식은 지금 한국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행복한 축산 동물이라는 당위성은 한편으로는 동물도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최대한 인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와, 또 한편으로는 공장식 대량 축산보다는 동물복지적 축산이 동물의 면역력을 높여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등의 문제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식품 안전에 기여한다는 현실적 요구에 의해 커져 왔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복지 축산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2012년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시행하여 왔고, 그 결과 2016년을 기준으로 전국의 114개 농장이 인증 대상이 되었다.

장을 보는 소비자들은 이제 ‘행복한 젖소’ ‘행복한 우유’ 말고도 ‘행복한 닭이 낳은 동물복지 유정란’ ‘시골 목사들의 행복한 달걀’ 등의 문구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되며, 그와 같은 문구가 없는 ‘보통 제품’과 ‘행복한 제품’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즉 개별 소비자로서 우리는 동물복지적 입장에서 행복한 달걀을 구매하여 닭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그럼으로써 이른바 윤리적 소비자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동물복지 담론은 종종 소비자의 역할에 단순히 ‘행복한 닭’이 낳은 ‘행복한 달걀’을 소비하여 ‘행복해지는’ 것 이상의 능동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는 소비자의 윤리적 고려가 결국은 동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서 핵심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통 계란보다 두 배, 세 배나 비싼 계란을 사는 소비자들의 존재는 결국 동물복지 양계장이 버틸 수 있는 힘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살충제 계란이 한창 문제가 되었던 작년 이맘때쯤 나온 어느 기사에 따르면 전국에 존재하는 3200여개의 양계장을 동물복지형으로 바꾼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여기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결국 소비자의 의식을 바꾸는 것임이 강조된다(경향비즈, 2017년 8월22일자 “[‘살충제 계란’ 파문] 행복한 닭, 사람도 ‘득’”). 즉 계란은 무조건 싼 것이라는 생각에서 좋은 계란을 먹기 위해서는 돈을 조금 더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의 의식 전환이 동물복지적 축산업을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닭 한 마리가 일반적인 계사보다는 비교적 넓은 모래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이 동물복지농장의 특징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닭 한 마리가 일반적인 계사보다는 비교적 넓은 모래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이 동물복지농장의 특징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착한 의도의 별로 착하지 않은 효과?

한국에서 동물복지와 윤리적 소비라는 문제는 여타 사회 이슈들과 마찬가지로 그 문제가 우리보다 먼저 가시화 된 이른바 ‘선진국’들의 상황을 하나의 모범 사례로 전제하고 공론화 된다. 동물복지 제도가 가장 발달했다고 회자되는 영국의 ‘행복한 고기’ 담론이 그 예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넘어 동물해방 또는 동물권의 관점에서 영국의 ‘행복한 고기’ 담론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들은 동물의 쾌고감수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동물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동물복지적 축산이 결국은 ‘고기의 맛과 질 향상’이라는 목표 안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도살장에서 닭이 공포에 떨지 않게 하는 것은 닭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닭이 고기가 되었을 때 맛을 배로 향상시키기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윈윈 전략’은 감정적 고려라는 질적 차원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양적 차원을 끊임없이 연결시키는 ‘행복한 고기’ 담론의 핵심을 구성한다.

하지만 최근 영국에서 진행되어 온 동물복지 담론은 동물권자들이 제기하는 이와 같은 모순에 응대하는 대신 대상 동물의 ‘긍정적 감정’을 촉진하는 기술의 개발에 몰두해왔다. 이는 동물복지 과학이라 불릴 정도의 섬세한 지식과 테크닉들을 포함하며, 여기서 축산 동물은 어떤 환경이 그들 자신에 더 이로운지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의사 결정자’이자 ‘행위자’로서 인식된다. 다른 환경에 놓인 동물들이 보이는 행동은 각각 ‘차분한’ ‘공격적인’ ‘친근한’ 또는 ‘무관심한’ 등의 표현으로 기술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정보는 다시 동물복지 과학의 중요한 데이터로 추가된다(M. Cole. “From ‘Animal Machines’ to ‘Happy Meat’?” Animals 2011, 1, 83-101).

동물해방론자들에게 이와 같이 계속 진화하는 동물복지는 축산업, 더 나아가 ‘육식 자본주의’하에서 벌어지는 동물의 착취 및 억압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도살장에서 동물들이 느끼는 공포감과 스트레스를 최대한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각종 기술의 발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고통의 현실에 눈을 감게 한다. 즉 결국은 도살할 동물들로부터 ‘긍정적 감정’과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식용 동물의 행복’이라는 모순적 상황을 정상화하며, 이 과정은 소비자의 실천이 개입되었을 때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한 동물이 더 맛있다’ 또는 (조금 더 완곡한 표현인) ‘행복한 삶을 영위한 동물이 더 좋은 고기를 만든다’라는 논리에 의해 지탱되는 동물복지적 축산업은 동물의 본연적 가치가 도살되고 또 먹히는 데 있음을 당연시하고, 그 속에서 폭력과 착취를 비가시화하는 것이 된다.

행복한 고기의 역설

하지만 나는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만은 없음을 느낀다. 물론 동물복지가 정말로 동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있음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동물해방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동물복지라는 담론과 실천이 육식 자본주의하에서 벌어지는 ‘동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비가시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시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것도 역설적으로, 공장식 축산보다 더한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장식 축산과 육식 자본주의가 사실상 ‘동물’과 ‘고기’의 철저한 분리, 그 분리에 의해 지탱되는 환상, 또는 ‘고기(상품) 물신화’에 의해 작동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트에서 고기를 구매할 때 또는 집과 음식점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 무엇이 더 신선한지 또는 더 맛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지, 그 고기들이 부분을 이루는 동물 전체를 떠올리거나 심지어 그 동물이 얼마나 행복했을지에 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상상과 관심은 오히려 문화적 터부로 존재해왔으며, 이것이 사실상 육식 문화와 그 산업을 지탱하는 도덕의 구조다. 하지만 동물복지적 담론은 연결되지 말아야 할 그 둘(즉 동물과 고기)을 다시 연결시키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2014)의 한 장면은 이와 같은 모순적 순간을 잘 포착한다.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원래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던 감독 자신이 동물복지 농장에서 만난 돼지들의 새로운 모습에 눈뜨게 되고, 결국 육식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 영화는 가족과 같은 돼지들이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 진짜 ‘반전’은 그 이후에 등장한다. 자신의 농장에서 영화를 찍고 떠나는 감독에게 농장 주인은 감사의 표시로 농장에서 자란 돼지로 만든 ‘선물 세트’를 증정하고, 이 장면에서 돼지들과 직접 생활한 감독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시선을 따라 돼지들에게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을 하게 된 많은 관객들이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가족과 같았던 돼지가 살 조각이 되어 스티로폼 팩 안에 가지런히 담겨지고 예쁘게 포장된 모습은 의식적 망각을 요구한다.

정성껏 돌본 축산 동물은 그 고기도 맛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동물복지적 상상은 윤리적 딜레마를 봉합하는 대신 열어둔다. 각각에게 이로운 것이 전체에 이로운 것이라 여기는 동물복지 담론은 어쩌면 자본주의를 단지 착취 또는 소외로 보고 이를 도덕적으로 만들면 그 폐해가 해결될 것이라 주장하는 윤리적 자본주의 담론의 자매품일지도 모른다.

윤리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체제가 특정한 도덕의 법칙들 및 환상의 기술들을 통해 작동하여 왔음을 망각할 뿐만 아니라 이른바 ‘모두에게 이로운 자본주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조한다. 동물복지의 행복 넥서스는 비슷한 문제를 내포한다. 하지만 여기서 대반전은 아마도 그것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윤리적 육식 자본주의의 딜레마들을 보여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필자 전의령

[전문가의 세계 - 전의령의 동물이야기] (7) 행복한 젖소·행복한 계란의 역설과 딜레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채플힐) 인류학과에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주와 다문화에 대해 담론화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신)자유주의 통치성, 반다문화와 우익 포퓰리즘, 동물과 생정치에 관한 논문들을 써왔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인류학적 믿음 하나로 다양한 연구 주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병행 중이며, 전주와 파주를 오가며 세 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