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와의 공존 모색 ‘어렵네, 어려워’

2023.02.14 17:40 입력 2023.02.14 19:45 수정

환경연합 고양이 생태영향 첫 토론회

생태계에 악영향 동의 패널 구성에

‘캣맘’ 활동 등 동물보호단체는 불참

지난달 29일 서울 정동길 인근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길고양이의 모습. 김기범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정동길 인근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길고양이의 모습. 김기범 기자.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길고양이는 생태계의 구성원이자 야생동물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길고양이가 포식자로서 도시생태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곤 한다.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한 중성화(TNR)와 먹이주기가 길고양이 대책의 거의 전부였다.

길고양이의 생태계 영향이 최근 주목받은 것은 조류 전문 유튜버 ‘새덕후(김어진씨)’가 지난달 28일 ‘고양이만 소중한 전국의 캣맘 대디 동물보호단체분들에게’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면서부터다. 13분 길이 영상의 핵심내용은 마라도에 서식하는 길고양이의 사냥으로 천연기념물 등 조류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과 서울시 등의 중성화 수술은 개체 수 감소에 효과가 없으며 길고양이 수를 줄이려면 먹이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 주장대로 최근 마라도에서는 길고양이들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조류인 뿔쇠오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길고양이들을 섬 밖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길고양이가 천연기념물 원앙을 공격하는 모습. KBS 유튜브 갈무리.

길고양이가 천연기념물 원앙을 공격하는 모습. KBS 유튜브 갈무리.

14일 서울환경연합이 주최한 ‘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을 위한 긴급토론’에 참석한 전문가와 환경단체 활동가들도 대체로 김씨의 문제 제기에 동의하면서 길고양이의 생태계 영향이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미국, 영국, 호주 등 해외의 길고양이의 생태계 영향 연구를 소개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고양이의 포식으로 연간 14억~37억마리의 새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에서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조류의 유리창 충돌로 인한 사망보다 더 많은 수치다.

그는 또 영국에서는 전체 고양이 수가 1200만마리에 달하며 이들이 매년 1억6000만~2억700만마리 동물을 죽인다는 연구결과도 소개했다. 김 대표는 길고양이는 “인간이 제공한 음식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야생적 존재가 아니다”라며 “고양이의 생태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인도적인 방식으로 길고양이의 밀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4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된 ‘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을 위한 긴급토론’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최태영 국립생태원 연구원,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정숙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 대표, 유튜버 새덕후 운영자 김어진씨.

14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된 ‘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을 위한 긴급토론’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최태영 국립생태원 연구원,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정숙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 대표, 유튜버 새덕후 운영자 김어진씨.

토론자로 참석한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길고양이의 생태계 영향에 대한 논란이 길고양이에 대한 혐오, 나아가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최 팀장은 “고양이가 도시에서 포식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도 인간의 개발행위가 도시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태영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국내의 길고양이는 인간 주거지 주변에서 서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외국처럼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생태적으로 우수한 지역이나 작은 섬의 길고양이는 제거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작은 섬들은 장거리 비행 중 체력이 고갈된 철새, 안전한 잠자리를 찾으려는 새들이 몰려드는 곳이라 고양이를 기르면 천적을 풀어놓는 셈이 된다”고 설명했다.

논란을 촉발한 김씨는 토론자로 참석해 발언하다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뒤 고양이 애호인 등으로부터 ‘댓글 테러’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가 울먹이자 토론회 실시간 댓글창은 “힘내세요”라는 댓글로 뒤덮였다.

이날 토론회에 ‘캣맘’들의 활동을 옹호하고, 중성화 수술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할 이들은 불참했다. 발제자와 토론자, 주최 측이 모두 길고양이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는 이들로만 구성됐다. 중성화의 효과나 먹이 공급을 통해 개체 수 조절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토론회에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애초에 토론자로 이름을 올렸던 동물권행동 카라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토론회 참석자 구성이 어느 한쪽으로만 치중돼 있다는 판단에서 불참하게 됐다”며 “다른 경로를 통해 동물보호단체의 입장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료 공급을 중단하면 오히려 고양이로 인한 영향이 더 커질 수도 있고, 정해진 사료 급여소를 통해 길고양이를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역시 토론자로 이름을 올렸던 서울시 자연생태과 관계자는 “생태계 보호지역 관련 토론회라고 들어서 참석을 승낙했으나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동물보호과가 설명할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길고양이의 생태경관보호지역 등 영향에 대해 자연생태과에서 올해부터 용역을 시작하고, 관리방안을 수립하려 한다”며 “앞으로 용역 결과가 나오면 길고양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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