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개그맨 남희석

2013.08.23 21:49 입력 2013.08.23 21:58 수정
백영옥 | 소설가

사람 ‘간’ 잘 보는 게 MC… 방송선 짧거나 도발적인 말이 인기

사진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사진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연예인은 잘못하면 법적 제재 외에도 자숙해야 돼요…
정치요? 돈 때문에 생각도 안 해요,
10원 한 장 후원 안 받고 월급만으로 해야 되는데”

27승64패. 승률 0.297. 9개 구단 중 압도적 꼴찌. ‘한화 이글스 팬은 부처님이다’라는 말은 개막 후 13연패를 내달리던 김응용 감독 자신이 2013년 4월24일자 인터뷰에서 직접 꺼낸 말이다. 단체로 부처님 가면을 쓰고 목탁을 두들기며 응원하는 한화 팬들의 사진은 ‘불교TV’의 자료화면으로도 쓰였으니 말을 말자. 개그맨 남희석을 만났을 때, 그는 충청도에서 유독 개그맨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는 내게 “충청도엔 열사도 많아요. 유관순 누나, 윤봉길 의사!”라는 말을 꺼냈다. 어지간해선 자기 속을 내비치지 않는 허허실실한 충청도 사람의 특징이 꾹 참았다 폭탄 던지는 것으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그는 내게 “한화 야구복 입고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자리 양보해준다”는 말도 꺼냈다. 한화 이글스 기사를 검색하다가, 8월20일자 신문에 실린 ‘팬들은 당신의 사퇴를 기다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유심히 바라봤다. 다른 구단 같았다면 ‘감독, 당장 집어 치워라!’라고 광분할 수 있는 말을 그들은 놀랍도록 오래 기다려 ‘당신의 사퇴를 기다립니다’라는 참으로 점잖게 표현하고 있었다. 설상가상, 류현진마저 없는 한화다. ‘한화! 이길 때까지 단식투쟁’이란 플래카드를 걸고 응원했던 여자 팬이 그만 아사하고 말았다는 ‘한화식 개그’가 존재하는 이 야구단 얘길 이렇게 오래하는 건, 내가 남희석에게서 그런 특징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머는 심리적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 마련한 삶의 무기’라는 말을 한 건 프랑스 소설가 마르탱 파주다. 그는 유머를 세상의 단단한 고통을 뚫고 나오는 유연한 아우성이라 정의하면서, 유머는 소외를 상대로 벌인 작가의 내면적인 승리라는 말을 남겼다. 얼핏 웃기는 것과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고통’ ‘소외’ 같은 단어가 유머의 연관 검색어라는 아이러니를 이해한다면, 그는 이미 어른인 건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좋은 친구들> <멋진 만남>에서 이 남자는 이십대에 이미 자신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난 11살 소년이 서울에 상경해 개그맨으로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유재석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남희석이 어느 날부터 공중파에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건, ‘나다운 것을 하겠다’는 어떤 고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성기로 되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한마디로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유재석같이 오랜 인기를 누리려면 유재석처럼 술도, 담배도 없이 일 자체만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은 지금의 자기가 가장 좋단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미녀들의 수다> 등 탈북자, 이주노동자, 한국 거주 외국인처럼 그는 주로 사회의 마이너리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예능과 교양의 경계를 고민했던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중학교 2학년 이후 영어를 포기했다는 이 남자는 얼마 전, 재능기부 형식으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저자인 스튜어드 다이아몬드 교수 강연의 진행을 무료로 맡았다. 그는 트위터에서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소신을 주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2년 대선에선 75.8%라는 투표율을 소수점까지 정확하게 맞히는 신공을 발휘했다. 그는 직접 글도 쓴다.

■ 길게 말하거나 착한 척하는 사람은 몽땅 편집 당해

- 일간스포츠에 ‘남희석의 아무거나’를 3년째 연재 중입니다. 최근에 쓴 기사를 보니 ‘남성연대’의 성재기씨 기사였고요.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해서 칼럼 제목도 ‘아무거나’가 된 거예요. 맞춤법도 헷갈려서 친분이 있는 김탁환 작가에게 물어볼 정도였는데, 지금은 담당기자가 다섯 개 중 한 개 정도는 읽을 만하다고 하더군요. 성재기씨와는 프로그램을 같이해서 세 번 술자리를 함께했어요. 뛰어내리기 열흘 전쯤 우리 집 앞에 찾아왔어요.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님이랑 셋이 만나서 마셨죠. 그때 우리가 했던 얘기가, 당신에게 좋은 의도로 들을 얘기가 있는데, 방송만 하면 적이 생기는 게 안타깝다, 주적이 여자가 아니잖느냐, 오히려 남자들이랑 싸워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죠. 사실 이분 얘기 중에 여성전용도서관을 없애자는 얘긴 일리가 있어요. 위험성이 있는 주차장도 아니고 도서관은 좀 뜬금없잖아요. 또 왜 혼자 사는 여성만을 위해서 집을 분양하냐,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한테 따지기도 하고. 7시에 불고기 파티하자고 예약까지 하고, 수영하기 좋게 바지를 양말로 감쌌던 분이 죽으려고 그랬겠어요? 너무 안타깝죠.”

- 함께 프로그램을 하는 그 많은 게스트들과 친분이 유지되나요.

“전 방송 끝나면 꼭 뒤풀이를 해요. 그래야 친해지고 좋은 방송을 할 수 있으니까요.”

- 요즘은 <부부상담전문가> <문화전문가> <국민엄마 종결자>처럼 전문가 표방 토크쇼도 많이 진행하시던데.

“입맛에 맞는 걸 골라 하다보니까 종편만 하게 됐어요. 이주여성이 와서 상견례를 해봤냐 그래서 안 해봤다고 하면 아이디어를 모아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여기 어머니랑 상견례를 해주는 거라든지, 외국인들 데리고 토크쇼를 해보자 해서 미녀들의 수다도 하게 됐고요. 탈북자들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미녀들의 수다 형식으로 풀었던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같은 프로그램도 있고요.”

- 떼토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건가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어요. 만들기도 쉽고, 스튜디오 대여 비용도 싸니까. 회당 4시간 반 정도를 하루에 두 번 찍으니까 점심 먹고 14시간 정도를 녹화하면 2주 방송이 나오거든요. 전문가 시대가 된 건 멘토 영향도 있을 거예요. 기업들이 옛날에는 행사를 했었는데 이제는 그 비용을 멘토들의 강연회에 써요. 갈 길 잃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요즘 사람들은 멘토들을 찾거든요.”

- 남희석씨와 저는 <야외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12시간 녹화하고 몽땅 편집당한 경험자로서 질문합니다. 대체 편집되지 않는 비결은 뭔가요.

“길게 말하는 사람, 착해 보이려는 사람, 몽땅 편집이에요. 하하. 말은 세 마디로 끝내는 게 좋아요. 아니면 궁금증 유발하는 말. 예를 들어 누구는 변태다, 이런 걸 먼저 쳐버려요. 그럼 CG를 넣기가 좋거든요. 갈등의 도화선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방송에선 인기가 많아요. 그래서 변희재라든가 진중권 같은 논객들이 방송에선 인기가 있죠.”

-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처음에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판 미수다로 프로그램이 진화했어요.

“<무한도전>도 첨엔 ‘무모한 도전’이었고 지금의 <무한도전>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바뀌어 가는 거예요. 좋은 프로도 시청률이 안 나오면 없어지거든요. 요즘에는 사람들이 너무 예쁜 여자들만 나오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편집 때문에 생기는 착시 현상이에요. 앞줄에 딱 3명 정도만 예쁘고, 나머지는 평범한 이웃이거든요.”

- 그래서 청문회에선 목말라도 물을 마시지 말란 소리가 있어요. 사진기자들이 귀신같이 찍고 ‘타들어가는 속’이란 헤드라인을 붙일 게 빤하니까요.

“예능은 중간에 어떤 컷을 넣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 보여요. <개그 콘서트>도 실시간으로 웃는 웃음은 없어요. 다 따로 떠놓고, 개그할 때마다 적당한 걸 끼워넣는 식이죠.”

■ 트위터는 남 안 다치게 해요. 전두환 정도는…

- 방송하면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탈북자 중에 하나원 교육을 받고 임대아파트를 얻은 어떤 분이 심심하니까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게 된 사연을 들은 게 있어요. 재미있어서 여기저기 클릭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컴퓨터가 고장난 거예요. 그래서 컴퓨터를 통째로 뽑아서 들고 밖에 나왔는데 컴퓨터 고친다고 써 있길래 가서 고쳐달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지금 날 무시하나 싶어 화를 냈는데, 여긴 컴퓨터 고치는 데가 아니라며 자꾸만 다른 데를 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분이 본 건 ‘컴퓨터 클리닝’이란 글자였죠. 거긴 세탁소였고요. 하하. 진옥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집에 외제차가 일곱 대 있을 정도로 부자인 친구였어요. 아버지가 무역을 해서 돈 벌었대요. 근데 북한은 한 10~12년 정도마다 정권 유지를 위해 한 번씩 물갈이를 하는데, 그 사이 집이 쫄딱 망해서 탈북을 한 거예요. 근데 이 친구가 이미 북에서부터 너무 많은 한국 드라마를 본 거죠. 나오자마자 진옥이가 옷을 사러 동대문 두타 근처에 갔는데, 거기에 디제이 아저씨가 멘트 치면서 타는 월미도의 유명한 ‘디스코팡팡’ 같은 게 있었나봐요. 근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더래요. 그래서 그걸 타고선 죽어도 안 떨어지려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는데 디제이가 그런 거예요. “어우, 공산당이야? 저 여자 왜 이렇게 안 떨어져!” 그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는 거예요. “헉! 티 나나? 날 어떻게 알았지?”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가 항상 얘기하는 게 2만5000명 정도 되는 탈북자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봤으면 하는 거예요. 이 땅에 함께 살면서도 그 누구도 ‘나는 탈북잡니다’를 못하거든요. 식당이건 어디건 다 조선족이나 강원도 출신이라고 해요.”

- 보람도 있겠지만 연예인이란 직업은 ‘한 방에 훅 간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기복이 심해요.

“연예인은 법적인 제재 외에 자숙의 시간을 가져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떤 직업도 그런 직업이 없잖아요. 정치인, 경제인들도 몇 백억원의 세금을 탈세해도 80% 정도 형기를 채우고 가석방으로 나오면 당장 일해도 되거든요. 근데 연예인은 그게 안되거든요. 자숙의 시간은 형량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건 내가 가진 이미지, 시청자와의 약속, 사고 친 이후의 말 한마디와 태도 이런 것들에 따라 달라져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직업은 진짜 조심해야 돼요.”

- 부업으로 식당을 차린다거나, 책을 쓴다거나 할 생각도 하세요.

“차인표씨가 소설 썼잖아요. 저녁밥으로 ‘진지’ 드셔야 할 만큼 진지한 양반인데, 소설이 참 좋더라고요. 그거 보고 포기했죠. 사실 전 남을 자꾸 의식해요. 저 같은 놈이 <안네의 일기>를 썼으면 분명 남을 의식해서 썼을 거라고요. 예를 들어, 독일군이 잠깐 왔다갔는데, 남들 눈 의식해서 더 극적으로 쓰는 거죠. 근데 독일군이 봐도 기분 안 나쁘게 또 써야 하니까 머리 굴려야 하고.”

- 아니, 이런 심약한 분이 어떻게 트위터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세요.

“제 트위터 보면 웬만하면 누구 안 다치게 해요. 물론 전두환 정도는 씹어주죠. 욕 많이 먹어서 장수하시겠어요, 뭐 이런 거.”

- 대선 때는 75.8%라는 투표율까지 정확하게 맞히는 신공을 발휘했고요. 정치에 의향 있으세요.

“그것 때문에 SBS 아나운서실이 발칵 뒤집혔죠. 그때 제 공약이 투표율 맞히면 8시 뉴스 5년간 무료 진행이었거든요. 하하. 근데 전 욕 먹는 거 싫어서 정치 못해요. 정치인들은 욕도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욕하면 그걸 등에 화살처럼 몽땅 박고 살지만 전 엄마가 욕을 해도 싫거든요. 정치할 생각이 없는 건 돈 때문이에요. 10원 한 장 후원 안 받고 월급만으로 정치하는 게 불가능하다던데, 전 오지랖이 넓어서 한 달이면 보내야 될 화환만 수십개예요. 예를 들어, 백 작가가 소리 없이 책을 냈으면 좋겠지만, 시끌벅적하게 책 내면 그래도 찾아는 봐야 하지 않나 하는 거죠.”

- 개인적으로 개그맨 김미화씨의 노선을 걸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CBS 방송 대타로 진행도 하셨고.

“김미화 누나 못 만난 지 7년 됐어요. 땜빵도 누나가 부탁한 게 아니라, 정혜윤이라는 라디오 PD가 워낙 특이해서 한 거예요. 제가 호기심이 좀 많아요.”

- 책을 많이 읽게 된 게 전유성씨 때문이라는 얘길 들었어요.

“그 소문 때문에 제가 책 많이 읽는 놈인 줄 알고 출판사에서 자꾸 책 보내고 그래요. 저 무식한데. 근데 재밌는 건, SBS에 <아이러브인>이라고 세계 석학들이 나와서 하는 강연이 있는데 세계 최고 협상 전문가의 강연 진행을 제가 맡았어요. 제가 의외로 겁이 없고, 무식을 안 부끄러워해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플루토늄이 뭐예요? 이렇게 물어야 해요. 석학을 만났는데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보단 죽으면 땡 아니에요? 라고 물어야 하고요. 만약 죽어서 영혼이란 게 있으면 지금 몇 백억이 돌아다녀야 되는 거예요? 이런 걸 물어봐야 되는 거죠. 그분이 여간해선 잘 안 웃는 사람이라는데 제가 여섯 번 웃겼어요.”

- 개그맨이기 때문에 힘 빼고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많다는 건가요.

“정소녀씨가 흑인 대통령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있었잖아요? 전 그걸 직접 물어봤어요. 강부자씨도 소문이 많았잖아요? 그걸 물어볼 수가 있었던 거죠.”

- 충청도 남자가 개그에 강한 건 땅기운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어요. 딸 이름이 고향인 충남 보령과 같은 이름이에요.

“제가 만약 신씨였으면 창원이란 이름은 못 지었겠죠. 아내는 동사무소 가는 순간까지도 농담인 줄 알더라고요. 제가 이상한 곳으로 안 빠지고 버틴 건 고향 때문이에요. 사고 쳐도 날 받아줄 곳이 있다는 건 굉장한 안도감을 주거든요. 사실 둘째는 남태령으로 지으려 했거든요. 제가 남태령역에 있었어요, 근데 아내한테 혼났어요. 아이 이름 가지고 두 번 장난하지 말라고.”

- 치과 의사 부인은 방송에서 봤어요. 가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진짜 벗는 노출은 아니니까 그나마. 크하하. 우리 가족들은 단타로 빠지잖아요. 가족이 나와도 1년에 한 번, 아내는 워낙 방송을 싫어해서 3년에 한 번.”

- ‘남희석 부부 각방 써’라는 기사를 보고, 결혼관이 다를 것 같단 생각도 했어요. 전국 석차 47등과 반 석차 43등이 결혼하는 것만큼.

“아내는 알람시계처럼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피겨든, 일본어든 결혼하고 13년 동안 한 번도 뭔가를 배우지 않은 적이 없어요. 심지어 일본어학원에서 1등 하면 10만원 준다는 대회에서도 1등을 했는데 일본어를 한마디도 안 해요. 문법 틀릴까봐. 토익 점수가 그렇게 높은데 영어도 안 해요. 역시 틀릴까봐. 아내는 차를 사줘도 일주일에 한 번만 타요. 지하철에서 애니팡 170만점을 찍어야 하거든. 각방을 쓰는 이유도 저녁 10시30분이면 반드시 자야 하는 아내와 제 사이클이 너무 달라서 그래요. 우린 참 달라요. 그런데도 와이프가 고마운 건 주기적으로 나를 여행 보내줘요. 여보, 나 일본 가고 싶어, 하면 호텔이랑 비행기 다 잡아줘요. 다르다는 거 인정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감 유지하면서 존중하는 거죠. 어차피 싸울 것 같으면 10분 안에 끝내버리자 하면서 빨리 끝내고요. 단둘이 여행도 잘 안 가요. 결혼생활하면서 깨달은 건, 알면서 모르는 척해주는 게 좋다는 것이죠.”

■ 관계가 경색됐을 때, 일본 관련된 프로 하고 싶어

- 공황장애로 비행기 타기가 힘들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제가 가까운 일본만 가요. 근데 김탁환 작가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여행은 시간의 탕진이다. 어우, 그때부터 제 여행 개념이 좀 바뀌었어요. 그래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쉴 수 있어야 해요. 제가 떡진 머리로 짬뽕 먹고 문을 열었는데, 들어오던 사람이 아악! 하고 놀란다고요. 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연예인들 식당 가면 벽 보고 밥 먹어요. 그나마 전 말도 하고, 좀 나은 편이죠. 공황장애는 고치는 게 아니라, 누르는 기술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찬물 먹고, 심호흡을 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거죠.”

- 일종의 직업병이겠군요.

“제가 사람들 간을 아주 잘 봐요. 사람들의 입장에서부터가 다 이유거든요.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제가 이런 얘길 했어요. 무당, 점쟁이, MC, 술집 아가씨, 건달, 다 같은 사람들이다. 다 사람 간 보는 직업들이다. 머리 모양, 자세, 나를 맞이할 때의 태도, 옷, 안경, 자리한 위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걸 몇 초에 간파하고 해체하면서 재구성하는 게 MC예요. 개그맨 출신들이 눈치가 빠른 건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웃길까 끊임없이 관찰하기 때문이에요. 처음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라고 할지, 악수를 할지, 그걸 판단하는 타이밍이 중요해요. 여자 잘 꼬시는 사람들이 방송도 잘해요.”

- 만약 프로그램을 한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가장 경색됐을 때, 오히려 일본과 관계된 프로를 하고 싶어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엉켜 있지만 오히려 삼국이 만나서 얘기를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어려울 것 같지만 재밌게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사실 SNL은 참 좋아하는 프로였는데, 정치가 빠지면서 좀 밋밋해졌어요. 코미디는 균형감각이 필요하잖아요. 김형곤 같은 기술자가 없으니까 그게 안되는 것 같기도 해요. 김형곤은 노태우 때 정치인들을 많이 씹었는데, 노태우 대통령도 그걸 보고 웃었거든요. 센 놈이 맞아야 재밌겠죠. 거기엔 불편함도 있겠지만.”

그와 인터뷰를 끝내고 며칠 후, 길을 걷다가 ‘개판 오분 전’이라는 애견숍 이름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인터뷰 말끝마다 자신을 ‘무식하다’고 말했던 이 남자에게 겸손은 인성이며 오랜 연예인 생활 끝에 장착된 스타일일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위트란 결국 지능을 드러내는 일이다. 1992년 <봉숭아 학당>에 출연했던 남희석은 ‘하회탈’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니까 하회탈은 21년이나 된 꽤 유서 깊은 별명인 셈이다. 인터넷에서 한화를 치면 나오는 연관 검색어는 ‘눈물, 보살, 부처, 해탈’ 등이 있다. 해탈과 하회탈의 발음과 모양이 어찌나 비슷한지 그걸 보고도 한참을 웃었다. 아마도 웃기는 이 남자 때문에 내 얼굴에 주름살 몇 개 더 늘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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