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 강만길과 백낙청

2013.11.24 21:56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한반도의 미래 ‘분단시대 이론화’와 ‘인문학적 통일론’으로 꿰뚫다

사상가는 기본적으로 지식인이다. 하지만 지식인 모두가 사상가는 아니다. 지식인들 가운데 독창적 지식의 방법과 내용을 일궈낸 이들이 사상가다. 이 점에서 사상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유의 독창성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탐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인식의 방법 및 내용을 제시하는 게 사상가의 역할이다.

역사학자 강만길(왼쪽 사진)과 영문학자 백낙청은 분단과 통일에 대한 사상적 프레임을 제시한 실천적 지식인들이다. 강만길이 분단시대 극복을 위한 사론을 정립했다면 백낙청은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이라는 방법론을 구축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역사학자 강만길(왼쪽 사진)과 영문학자 백낙청은 분단과 통일에 대한 사상적 프레임을 제시한 실천적 지식인들이다. 강만길이 분단시대 극복을 위한 사론을 정립했다면 백낙청은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이라는 방법론을 구축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남북 현실 객관화한 강만길, 분단 극복 위한 사론 수립
분단체제론 기반한 백낙청, 특수성 고려한 한국적 해법

■ 분단과 통일, 왜 중요한가

우리 사회 사상의 풍경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이슈는 경제적 발전, 정치·사회적 민주주의, 문화적 다양성, 자연과 양성평등에 대한 성찰, 그리고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가운데 우리 사회만의 고유한 문제는 분단과 통일이다. 해방 이후 70년에 가까운 남북분단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른바 분단모순이 계급모순보다 상위에 놓인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선 우리 사회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분단은 외생변수라기보다 내생변수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북풍 논란, 분단으로부터 영향받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남북갈등에 짝하여 발생하는 남남갈등 등은 분단이 계급·지역·세대와 함께 우리 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수임을 증거한다. 당장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궈온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통합진보당 사건은 분단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은가.

분단과 이를 극복하는 통일은 학문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다.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최인훈의 <광장>,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물론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 박광현의 <웰컴 투 동막골> 가운데 하나 이상을 읽거나 관람했을 것이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가장 뛰어난 사상적 통찰을 제공한 이들로 나는 두 사람을 주목하고 싶다. 분단시대를 이론화한 역사학자 강만길과 통일시대를 모색한 영문학자 백낙청이 그들이다.

■ 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학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과 백낙청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과 백낙청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지식인이 전문적 독자와 시민적 독자를 동시에 아우르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학술적 저작을 쓰는 것은 외로운 작업이며, 대중적 저작을 쓰는 것은 학계 평가가 인색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적 독자와 시민적 독자를 동시에 거느린 최고의 지식인은 강만길이다.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등이 주목할 학술적 업적이라면, <고쳐 쓴 한국현대사> 등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대중적 저작이다. 프랑스에 <봉건사회>와 <역사를 위한 변명>을 쓴 마르크 블로크가 있다면, 우리에겐 강만길이 있다.

강만길은 1933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 1999년 정년퇴임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이론과 실천의 역사학자다.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이 조선후기 내재적 발전을 다룬 한국사학의 고전이라면, 초판만 27쇄를 기록한 <20세기 우리 역사>는 시민적 계몽을 위한 대중 역사서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 등을 맡아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수많은 그의 저작들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78년에 발표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다. 이 책은 우리 인문·사회과학의 이정표적 저작이다. 요즘에는 분단시대라는 말이 일반화됐지만, 그가 1970년대에 분단시대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이 용어는 상당히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분단시대를 맞았는데, 이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만 통일을 지향할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주목하려 했던 것은 역사학의 현재성이다.

강만길은 분단시대가 민족사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한다. 역사학이 분단시대의 극복에 이바지하는 길에는 세 가지가 존재한다. 먼저, 분단시대를 외면할 게 아니라 현실로 직시하고 대결해야 한다. 또한, 분단시대를 철저히 객관화하고 비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분단시대 극복을 위한 사론을 수립해야 한다.

분단시대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는 인문·사회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누구나 흔히 쓰는 냉전분단체제라는 말도 강만길이 분단시대를 선구적으로 이론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분단시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거시적 관점에서 그는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사에서 좌·우익 통일전선운동이 주류였고, 이는 해방공간에서 통일 민족국가 건설운동으로 연결됐으며, 4·19 혁명 이후에는 평화통일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이 연장선상에서 그는 ‘흡수통일이 아닌 남북대등통일과 타협통일’이라는 평화통일론을 제시했다.

지난 9월 강원 양양 하조대에 머무르며 사색과 집필에 전념하는 강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그날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말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세력과 타개하려는 세력 간 대립이 우리 현대사를 이뤄왔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강만길의 민족주의가 20세기에 갇혀 있고, 학자로서 그의 실천이 다소 지나쳤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 안에 갇혀 있던 창백한 지식인이 아니라 역사 밖으로 걸어 나와 그 역사와 대결했던,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블로크와도 같은 진정 용기 있는 사상가였다.

■ 백낙청, 통일시대의 인문학

사회학을 30년 가까이 공부하면서 많은 지식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한때 열광했지만 이내 잊힌 이들도 있고, 오랫동안 꾸준히 영향을 준 이들도 있다. 그동안 변함없이 내게 중요했던 사상가들은 미셸 푸코, 위르겐 하버마스, 피에르 부르디외, 앤서니 기든스, 그리고 리처드 세넷이다. 이들 못지않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이들은 영문학자 백낙청과 정치학자 최장집이다. 백낙청을 알게 된 것은 학부 시절부터였다. 민중문학론에서 이중 과제의 근대성 담론으로, 다시 분단체제론으로 나아간 그의 지적 모험은 늘 경이로운 대상이었다. 내게 그는 영문학자라기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른 ‘르네상스적 사상가’였다.

백낙청은 193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 공부했고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다 2003년 정년퇴임했다. 1966년 ‘창작과 비평’ 창간을 주도한 그는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때로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지식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최근까지 그는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등과 함께 ‘원탁회의’를 주도해 진보정치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백낙청이 펼친 담론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분단체제론이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3부작인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1994), <흔들리는 분단체제>(1998), 그리고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2006)에 집약돼 있다.

분단체제란 세계체제와 한국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체제를 말한다. 분단체제는 세계 사회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일종의 영향력의 프리즘이자, 거꾸로 우리 사회가 세계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경우에도 작용하는 프리즘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이 벌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 경쟁과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이룬 통일운동이 분단체제와 긴밀히 연관돼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분단체제론에 기반을 둔 백낙청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서 독자적인 통일론을 체계화했다. 그가 제시한 것은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첫째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분단 극복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하면서, 둘째 쌍방 정권이 결코 합의할 수 없고 민중으로서는 지금 저들끼리 합의하는 게 달가울 바도 없는 통일국가의 최종 형태나 주도층의 문제를 열어둔 채, 셋째 통일국가 형성의 잠정적이고 가장 초보적 형태에 동의하는 수순을 제안한다.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은 분단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적 해법이다. 우리에게 통일은 흡수통일의 독일, 무력통일의 베트남, 담합통일의 예멘 사례와 달라야 한다는 백낙청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어떤 이들은 그의 분단체제론과 통일론이 인문학적 상상력은 뛰어나지만 사회과학적 엄밀성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분단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역사를 넓게, 그리고 길게 볼 수 있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현실적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 통일로 가는 길

지난여름 정전협정 60년을 맞아 이화여대 박인휘 교수와 함께 경향신문이 주관한 ‘비무장지대(DMZ) 평화기행’을 했다.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고성 금강산전망대를 거쳐 파주 판문점 JSA를 돌아봤다. 휴전선 철망 앞에 서서 정적만이 흐르는 DMZ를 지켜보고, 그 너머 펼쳐 있는 북녘 산하를 바라봤다. 폭이 채 2㎞가 되지 않는 저 DMZ가 이 지상에서 가장 먼 거리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기도 했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그때 나는 끊어진 저 거리를 잇는 것, 갈라진 나라가 다시 하나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일로 가기 위해선 대화를 나눠야 하고 평화를 일궈야 한다. 대화와 평화와 통일은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규범적으로 중요하지만, 동시에 분단으로 인해 치르는 대가들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도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다. 한반도가 둘로 나뉘어 있고 우리 내부 의식마저 둘로 나뉘어 있는 ‘이중적 분단사회’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런 이중적 분단을 넘어서기 위해선 보수적 ‘신뢰 프로세스’든 진보적 ‘포용정책’이든 상대방에 대한 승인과 소통이 요구된다. 통일은 민주주의, 복지국가와 함께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다. 그 길로 가는 문을 여는 데 강만길과 백낙청의 선구적인 기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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