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마음의 문, 사회의 창 : 사상의 시민적 상상력을 향하여

2014.03.30 21:34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한국사회, 개인·구조·관계 모두 위기… 사상에 ‘시민적 상상력’ 더해야

지난해 9월부터 7개월에 걸쳐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을 다뤘다. 사상은 인간과 사회, 역사와 현실,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는 인식의 틀이다. 우리 사상의 흐름을 살펴보는 데 ‘풍경’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그 사상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는 데 있다. 나무와 숲 또는 거리와 건물 등 어느 하나가 풍경을 독점할 수 없듯이, 사상 역시 다양한 인식틀들이 경쟁하고 공존하는 풍경을 이뤄 왔다.

[김호기의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13) 마음의 문, 사회의 창 : 사상의 시민적 상상력을 향하여

[김호기의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13) 마음의 문, 사회의 창 : 사상의 시민적 상상력을 향하여

▲ 주변 사람들 지속가능한 행복 느끼는 이 갈수록 줄어들고
사회는 경제 양극화·정치 엘리트화 등으로 낯선 풍경 만들어
연대도 더불어 사는 의식 약화… 마음·사회의 창 여는 소통 필요

■ 사상의 풍경과 현실의 풍경

이 기획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우리 사회 열두 가지의 사상과 스물네 명의 지식인이다. 자유주의(최인훈과 김수영), 민족주의(이기백과 리영희), 발전주의(박세일과 김종인), 민주주의(최장집과 김근태), 인문주의(이어령과 김우창), 분단과 통일(강만길과 백낙청), 종교사상(김수환과 법정), 생태학(김종철과 최재천), 페미니즘(이효재와 조한혜정), 보수주의(이상돈과 박효종), 진보주의(조희연과 김상조), 해외의 사상(장하준과 신기욱)이 그것들이다.

돌아보면 이 사상들은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 왔다. 발전주의가 산업화 시대를, 민주주의가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면, 민족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은 두 시대를 관통해 큰 영향을 미쳤다.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생태주의·페미니즘·자유주의와 연관된 개인주의가 개화했다. 더불어, 산업화가 고도화되면서 인간을 중시하는 인문주의와 종교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해외로부터의 연구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우리 사상은 이제 막스 베버가 일찍이 말한 올림포스 신전의 신들이 경쟁하고 투쟁하는 것처럼 풍요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사상의 풍경과 현실의 풍경 사이에 놓인 거리다. 사상의 풍경은 이렇게 풍요로운데 현실의 풍경은 갈수록 외려 척박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상의 다채로움을 탓하거나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한편으론 물질적·정신적 삶의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다른 한편으론 세계적 경향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동시에 성찰해온 우리 시대 지식인들의 사상적 고투(苦鬪)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로 명명된 모더니티의 한 순환이 마감하는 현재 우리 사상에 부여된 새로운 과제다.

■ 개인·구조·관계의 위기

사상의 출발점은 역사와 현실이다.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 시민들이 처한 ‘역사적 현실’이다. 2014년 현재 ‘개인’ ‘구조’ 그리고 그 둘을 잇는 ‘관계’의 세 측면에서 우리 시민들 다수는 모두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 먼저 개인의 위기는 삶이 가져야 할 의미의 위기다. 의미는 개인의 삶에 지속가능한 행복을 안겨준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지속가능한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편 구조의 위기는 내가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점차 낯설어지고 나와 무관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증대해온 경제의 양극화, 정치의 엘리트화, 문화의 상품화는 우리 사회 구조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과 구조 사이의 관계를 헐겁게 만듦으로써 이른바 연대를 약화시켜 왔다. 인간과 사회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연대의 자각에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연대의 원천은 상당히 고갈돼 있다. 그 결과, 뭔가 허전하고 답답한 느낌이 주위를 배회하고, 그 어떤 무력감과 불안이 우리를 지배하고, 부지불식간에 개인과 구조와 관계 모두 고장 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게 현재 한국사회의 풍경이다.

최근 한 모바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시 태어난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57%)라는 응답이 ‘태어나고 싶다’(43%)라는 응답을 추월했다(두잇서베이 조사). 이것이 바로 2014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60%에 가까운 사람들이 태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를 온전한 공동체라고 볼 수 있을까? 지난 50여년 동안 모범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정작 우리 시민들 앞에는 아주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 연이어 펼쳐지고 있다.

■ 마음의 문과 사회의 창

개인과 구조와 관계가 모두 위기에 처했을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특징지어지는 ‘정글의 사회’에 철저히 동화되거나, 아니면 그 정글로부터 과감히 탈퇴해 ‘자아의 성채’ 안으로 침잠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이 두 전략 모두 결코 소망스러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자가 자아실현으로 나가는 ‘마음의 문(門)’을 닫아 두게 한다면, 후자는 현실 변화를 모색하는 ‘사회의 창(窓)’을 닫아 두게 한다.

마음의 문과 사회의 창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상이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그 어떤 사회보다 격렬한 변동을 겪어온 이 땅에서 어느 날 태어난 우리는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반복되지 않는 삶의 과정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는 데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의미’다. 이 의미를 갖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고 사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 마음의 문은 존재 이유의 해명으로 가는 열쇠를 제공하고, 사회의 창은 우리 삶을 강제하는 사회 작동원리의 이해로 가는 통로를 제시한다.

사상이 삶과 사회를 보는 인식틀이라면, 이 사상에 부여된 일차적 과제는 마음과 사회로 향하는 창과 문을 열게 하는 데 있다. 시민적 관점에서 보면 사상은 새로운 인식의 하늘과 땅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하늘과 땅이 자기의 것이 아닐 때 우리 시민은 사상으로부터 낯섦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상이라 해도 그것은 천상의 메아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과 좋은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지상의 목소리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 사상의 시민적 상상력

요컨대 현재 우리 시대 사상은 ‘시민적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상이 시민들 삶에 의미를 선물하기 위해선, 다시 말해 시민들 마음의 문과 사회의 창을 여는 데 기여하기 위해선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사상은 시민들과의 소통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사상의 궁극적 목표는 세계의 해명이자 인간의 계몽이다. 이 해명과 계몽의 주체는 동시대 시민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사상은 분업화·전문화라는 아카데미즘의 울타리를 넘어서 시민적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사상의 세속화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사상은 거시적 비전이든 미시적 이슈든 시민들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그들의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야 한다. 지식인들의 개인지성과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생산적으로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지식사회가 가야 할 길이다.

둘째, 사상은 인간과 사회의 복합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상의 대상인 인간과 사회에는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게 공존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에서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도전에 대한 탐색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사상은 새로운 모험 앞에 놓여 있다. 인간과 현실의 복합성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사상은 망원경적 포괄성과 현미경적 정밀함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그리하여 개인과 구조,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보수와 진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생산적으로 공존하는,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일궈나가기 위한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과제를 담당하기 위해 사상을 탐구하는 지식인은 존재구속성과 자유부동성 간의 긴장을 견뎌내야 한다. 지식인은 시대로부터 구속받는 존재이자 그 구속을 넘어서 자기 사회를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나아갈 방향을 자유롭게 사유하는 존재다. 모름지기 사상가라면 시대가 강제하는 한계 안에 놓여 있더라도 옳고 그름의 신념윤리에 기반을 둔 진리 탐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필가는 얼마쯤 떨어져서 쳐다보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않는 플랑드르의 벽걸이와 같다’는 모더니티의 선구적 사상가인 에라스뮈스의 말로 이 기획을 마무리한다.

<시리즈 끝>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