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스리랑카 공동체 운동 이끄는 아리야라트네 박사

2014.06.30 21:28 입력 2014.06.30 21:34 수정
글·사진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권력과 돈이 종교가 된 사회적 순위를 새롭게 교체해야”

“The Last, The First(가장 마지막에 놓여있는 사람이 최우선이다) … 박 대통령, 이 말을 꼭 기억해주세요”

지난 1월1일부터 시작한 세계 지성과의 대화가 오늘로 끝을 맺는다.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첫 인터뷰 대상자가 정해지기 이전부터 마지막 인터뷰이는 스리랑카의 아리야라트네 박사라고 마음에 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목련이 흐드러지던 봄날,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의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현대를 진단하는 콘퍼런스에서였다. 그곳에서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모든 사람의 깨달음) 운동이 50여년 동안 그 나라 마을 3분의 1이 참여하는 공동체 운동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서구에서 20여년 전부터 주목받은 이 운동의 실천 덕목은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라고 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그 고전적인 방식이 21세기 자본주의 대안운동으로 버티고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 내로라하는 아시아·유럽·미주 지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발표를 마친 아리 박사를 쫓아갔다. 정말 팔정도로 초국가 자본들에 대항하며 소농의 경제 자립과 질적 성장을 이뤄냈느냐고,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고 있냐고 물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재차 물었다. “그쪽 공동체는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더 갖고 싶은 그 질긴 욕구를 다스리느냐”고 말이다. 아리 박사는 “가능하다”며 알고 싶으면 스리랑카에 와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마을 운동, 협동조합, 대안 공동체 실험들에 반가움을 느끼면서도 끝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대목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덫이다. 어떤 매뉴얼과 구조적 장치를 해 놓아야 협력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인간의 유전자에 기억되어 있다는 협력의 본능이 과연 지난 세기의 지독한 경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남아 있는지 미심쩍었다. 그리고 이 연재를 통해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를 시작으로 열 명의 지성에게 우리 문명의 현재, 전체 시스템을 끌고 가는 힘의 실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가 갖고 있는 공감능력에 대해 물어왔다. 여섯번째 인터뷰이였던 지그문트 바우만을 만난 뒤 스리랑카의 아리 박사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바우만 선생은 젊었을 때는 역사의 진보가 직선으로 나아간다고 생각되었는데 지금 보니 진보는 추의 운동(Pendulum)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역사가 한 쪽이 당긴 만큼 다시 반대의 힘으로 당겨져 제 자리로 가는 거라면, 결국 힘의 반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지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간디가 주장했던 비폭력 저항이 억압을 억압으로 해소하는 대신, 억압의 관성을 차단하는 결단이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만약 인간이 탐욕을 다스린다면, 정당함을 주장하는 말과 생각대로 개인이 삶까지 완전히 바꿔낸다면, 그 속에서는 진자의 추가 보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궤도를 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리 박사에게 연락을 넣었고 5월24일 스리랑카에 도착해 그와 함께 사흘을 보냈다.

지난 5월 말 스리랑카에서 인터뷰에 응한 아리야라트네 박사가 마을을 안내하며 사르보다야 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5월 말 스리랑카에서 인터뷰에 응한 아리야라트네 박사가 마을을 안내하며 사르보다야 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 초국가적 기업은 가난을 만들어… 성장지수만 높여결국 빈곤만 남아
이윤 아닌 정의가 우선 순위 돼야… 개인 정신적 안정도 나라서 챙겨야

▲ 50여년 지속된 사르보다야 운동비결은 정치 중립 지켰기 때문
비슷한 한국의 새마을운동은정 부로부터 지원 받아 쇠락

안희경 = 조각 나고 해져가던 공공망이 결국 돈의 논리로 주저앉고 마는 모습을 세월호 참사에서 보았습니다. 부패와 부정과 무책임을 보며 돈의 위력에 질리게 됐죠. 많은 이들이 국가란 무엇인지 그 역할을 묻습니다.

아리야라트네 = 한국의 국가적 전망이 무엇인가요? 경제성장입니까? 만약에 그 전망이 자본 수입을 바탕으로, 혹은 국민총생산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는 반쪽입니다. 최근 300년 동안 기승을 부려온 서구의 개념이죠. 우리 삶은 물질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개발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둘의 균형이 맞아야 사회 문제가 적고 국민의 생활을 살필 수 있어요. 자본주의적인 접근으로 오로지 돈 돈 권력 권력을 부르짖는, 돈과 권력이 종교가 된 사회적 순위를 새롭게 교체해야 합니다.

안 = 새로운 사회적 순위는 어떠해야 하나요?

아리 = 길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 길을 지나갈 사람까지 고려하는 거지요. 잘 닦인 새 도로가 개통됐어요. 그런데 그 길목을 이용해 사람을 통제하고 죽인다면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길을 놓으면서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고 자비심을 길러내는 일까지 해야 하는 겁니다. 당장 돈 흐름을 살리겠다고 외자를 유치하고 땅을 주고 권리도 팝니다. 하지만 초국가적 기업들은 성장이 아닌 가난을 만들어요.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성장지수만 높이죠. 결국엔 빈곤이 남습니다. 정부는 그들의 로비에 넘어가 정부가 기업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정부를 휘두릅니다. 한국의 언론은 어떤가요? 영국은 98%의 언론이 단지 두세개 거대 자본 기업의 이익에 따라 보도합니다. 세상은 부처님과 예수님, 또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가르쳤던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윤이 아닌 정의가 사회적 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해요.

안 = 정의가 번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벌기보다 쓰기에 집중하면 작은 집안 경제도 위태롭습니다. 경제 지도자들이 경고하는 바도 성장하지 못하면 실질적으로 이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이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아리 = 무얼 지속가능하게 하려고요? 지속가능한 부자? 지속가능한 가난? 부자가 더 부자가 될 때, 더 부자가 더 더 부자가 될 때,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그 권력을 누립니다. 당신이 있는 지역은 고도로 자본화된 지역입니다. 매우 부자인 소수의 사람들, 중간 계층 그리고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 거예요. 평등은 없습니다. 이런 갈등이 모든 종류의 자살, 살인, 강간, 범죄, 뇌물, 폭력, 부패를 만들고 군대를 증강시킵니다. 핵무기까지요. 얼마 전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습니다. 조종사들은 오늘날 기술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조종사를 의심하더군요. 만약 그렇다면 이는 생겨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건데, 그 조종사의 마음이 그의 업무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마음을 두지 못한 거죠. 집안에 우환이 있든지, 돈을 빌려야 하든지, 분노에 휩싸여 있든지 어쨌든 마음이 그곳에 없었어요. 왜? 그도 고통받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일부니까요. 개인이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것도 국가의 아주 중요한 몫입니다.

안 = 재난과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면, 모든 구조적인 문제까지 흡수할 수 있는 표적이 등장하곤 합니다. 중세에는 마녀였고, 지금은 사이코패스나 일탈된 개인이죠. 개인의 과오에 여론이 집중될수록 구조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물질적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하셨는데, 제가 스리랑카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지적 때문입니다. GDP가 비슷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삶의 질을 가늠하는 지수에서 스리랑카가 월등히 높았습니다. 기대수명도 인도나 여타 서남아시아 국가보다 월등히 길고,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과 문맹률도 낮았죠. 이런 배경에 사르보다야 운동이 작용하지 않았나 궁금했습니다.

아리 = 사르보다야 운동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많이 주긴 했습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농촌 정책 대부분은 우리가 1960년대부터 해온 일이죠. 하지만 이는 원칙적으로 스리랑카 초대 지도자의 지혜에서 나왔습니다. 첫 정권은 정치를 돈에 종속시키지 않고 사람을 위해 일했어요. 국민이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를 명시했습니다. 맑은 물, 좋은 음식, 좋은 의료, 좋은 교육인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교육, 약을 포함해 모든 질병 치료가 무료입니다. 음식과 교통 역시 저렴해야 했죠. 하지만 지금 이 모든 것이 상승하고 있어요. 사립 국제학교를 허가하는 바람에 정부 학교는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 됐습니다. 병원도 사립 병원이 들어섰어요. 1978년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모든 국민이 소유하는 공공 설비들이 지속적으로 해체돼 왔습니다. 식품 가격도 높아졌고 생계 비용이 치솟았죠. 정부는 30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치러 그런 거라며 변명하지만, 전쟁도 우리 국민이 나서서 종식시켰습니다. 그런데도 군대는 증강되고 물가는 내려오지 않아요.

안 =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선생께서 이끄는 사르보다야 운동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왔습니다. 스리랑카 전체 마을의 3분의 1인 1만여 마을이 참가합니다. 50여년 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만든 비결은 무엇인가요?

아리 = 정치적 중립입니다. 수많은 정치 세력들이 혜택과 제약으로 우리와 함께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독립적이죠. 만약에 내가 대통령한테 전화를 건다면, 그는 매우 행복해할 거예요. 예산 지원도 할 거고.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를 자기들의 정치강령 아래 둘 수 없습니다.

안 = 정부나 기업의 후원을 받으면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을 텐데요.

아리 =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를 잃어요. 자유가 식량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자유는 마음에 영양을 공급합니다. 제일 상위에 있죠.

스리랑카는 타밀 타이거로 불리는 반군과의 내전을 오랫동안 겪었다. 현재 사르보다야 운동은 내전으로 황폐해진 타밀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타밀족 여성이 내전 중 실종된 아들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이다. | AP연합뉴스

스리랑카는 타밀 타이거로 불리는 반군과의 내전을 오랫동안 겪었다. 현재 사르보다야 운동은 내전으로 황폐해진 타밀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타밀족 여성이 내전 중 실종된 아들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이다. | AP연합뉴스

▲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말… 진정한 개발은 그 사회 속에서
마지막에 놓인 사람과 계층이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 진정한 종교는 나눔을 지원… ‘화’가 들어간 말도 삼가야
감정이 격앙된 사회는 무능해져

안 = 한국뿐 아니라 많은 단체들이 기업과 정부로부터 기금을 받고자 애씁니다.

아리 =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정치적으로 함께하는 NGO를 돕습니다. 하지만 정치 세력의 배후에는 기업이 있어요. 물론 우리도 기업이나 단체의 지원을 받습니다. 단 아무런 조건이 없을 때만요. 유엔은 우리 뜻에 동의했기에 그들 도움은 받겠다고 했습니다. 몇몇 기업들도 그렇게 돕고 있어요. 하지만 광고판을 설치해 달라는 경우는 미안하지만 받지 않겠다고 하죠.

안 = 벽돌 한 장에 이름을 새기는 것도 안되나요?

아리 = 안돼요. 초국가 기업들은 조건을 달려고 합니다. 아무리 작은 조건이라 해도 이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업(Karma)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기 때문에 지금 재정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남아 있는 겁니다.

안 = 작은 조건이 만든 파장이 미미한 시작과 달리 이후 활동에 장애를 초래한 경우들이 떠오릅니다. 특히 기업과 정치세력의 후원은 사회적으로, 또 조직 내부에 미칠 영향이 크기에 더욱 확고한 원칙이 있어야겠네요.

아리 = 반드시 명확한 원칙들을 가져야만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죠.

안 = 한국의 새마을 운동도 사르보다야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물질적으로 이룬 성과는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비판받는 지점은 기존 문화를 봉건의 잔재로 치부하며 부정했다는 겁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직선 포장도로로 만들듯이 토속의 정서가 산업적인 사고로 바뀌었습니다. 주민자치에 기반을 둔 공동체 문화로 쇠락했습니다.

아리 = 정부와 함께했고, 정부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번영을 이뤄야 합니다.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생각할 자유, 언론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더 나은 삶의 기준을 갖게 됩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것 같습니까?

안 = 길을 걷다 보면 화난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짜증 섞인 모습을 보게 되죠

아리 =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종교를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상업적인 종교 말고요. 진정한 종교는 나눔을 지원합니다. 첫째가 나눔입니다.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우리’를 생각해야 해요. 두 번째가 사용하는 말입니다. 절대로 화가 들어있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되요. 진실하지 않은 부정적인 언어도 안됩니다. 남을 화제에 올리는 것도 안 좋습니다.

안 = 조화로운 삶을 만드는 데 말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아리 = 물론이죠. 화는 우리 마음을 오염시킵니다. 바르게 생각할 수 없게 해요. 실제로 우리들은 바른 말, 친절한 말을 수행과정에 포함시킵니다. 이웃 그리고 사람이 아닌 존재들까지 내 형제자매처럼 보살필 수 있어야 하거든요. 돈을 갖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그러면 배가 가라앉거나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더라도 그저 소리치고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이성으로 꼭 필요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깊게 공감하면서 행동으로 대처해 나가게 되어요. 감정이 격앙된 사회에서는 그저 놀랍고 불안한 외침만 난무해요. 그럼 사회는 무능해집니다.

안 = 세월호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리 = 만약 당신의 지도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고요하도록 이끈다면 당신네 나라에는 살인도 줄고 카지노도 줄고 범죄도, 강도도, 정치적 폭력도 줄 겁니다.

안 = 사르보다야 운동에서 강조하는 명상을 이야기하시는데요. 의문점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그 엄청난 일이 그지없이 단순하게 그저 자신을 마주하는 그런 시간으로 이뤄질 수 있나요? 사회 변화의 예가 있습니까?

아리 =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타밀 타이거와 전쟁 중이었을 때입니다. 싸움이 고조에 이르렀을 때죠. 1990년대에 지속적으로 집단 자비 명상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사르보다야 회원들이 참가했고 일반 시민들도 동참했어요. 그러다가 2002년 100만인 평화의 자비 명상을 기획했습니다. 우리나라 북쪽에 있는 역사적인 고도 아누란다푸라로 모이자고 외쳤어요.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에서 화답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참가한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서로 죽이는 살육을 멈추고 양쪽 민족 모두를 고립시키는 폭력의 고리를 끊자는 결의의 장이었습니다. 90만명이 왔습니다.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차를 몰고,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걸어서도 왔어요. 군인들이 막아 오지 못한 이들은 그곳에 주저앉아 마음을 모으고 자비 명상을 했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모두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달하는 명상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고요하고 감정이 차갑게 내려앉으면, 그 속에서 지혜가 올라옵니다. 이 전쟁이 일어난 배경, 그 속에서 받은 상처의 근원, 그리고 이 전쟁이 가져올 미래가 보입니다. 우리 100만명이 밝은 이성으로 세상을 직시하며 천명했어요. 전쟁을 그만두라고요. 그리고 딱 2주 만에 스리랑카 정부가 타밀 타이거에게 협상 테이블을 제안했습니다. 느닷없이 총성이 멎게 된 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무참한 살육을 종식시켰습니다. 그저 가만이 앉아 자신과 나라와 세상을 직시하며 건져낸 지혜의 힘으로 말이죠.

안 = 네, 명상과 함께 종식된 전쟁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리 = 세상에는 세 가지 독이 있어요. 욕망과 성냄, 그리고 무지입니다. 욕망은 탐욕이죠. 갖고 싶은 걸 가져도 더 많이 갖고 싶어서 멈추지 못하는, 돈과 권력과 물질에 사로잡힌 마음입니다. 게다가 당신한테는 없는데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걸 보면 화가 부글부글 올라옵니다. 그런데요. 이 욕망과 화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요. 몰라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 마음이 작용하는 모양을 몰라서, 또 우리가 사는 현실이 돌아가는 구조를 몰라서 그래요. 바로 무지죠.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로부터 이어온 우리들의 위대한 도덕과 원칙 속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내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를 꿰뚫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안 = 한국인들 스스로 침몰하는 한국호를 구하자는 말을 합니다. 한국 지도자에게 메시지를 주신다면요?

아리 = 그래요. 제가 좀 오래 살았으니까 감히 한 번 말을 꺼내 보겠습니다. 마담 프레지던트, 부디 기억해주세요. 당신의 첫번째 목표는 당신의 모든 권력과 지식, 지혜를 모아 당신의 내각과 각계 지도자들이 이 한 가지를 마음에 새기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네 단어입니다. ‘The Last, The First.’ ‘가장 마지막에 놓여있는 사람이 최우선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개발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그 사회 속 최후에 놓여진 사람이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겁니다. 당신 나라의 번영을 부자나 중간계층에 맞춰서 꾸려가면 안됩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사람이 조금 성장해질 때, 나머지 모든 국민들도 혜택을 보게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두번째, 부자들에게 말하세요. 부를 반드시 가난한 이들과 나눠야 한다고요. 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세요. 그 권력으로 사람들을 억압하지 말라고요. 당신의 권력도 국민과 나누세요.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생각의 자유, 결사의 자유, 결정의 자유를 누리는 겁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반드시 가장 약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약속돼야 하는 겁니다. 저는 정치 권력을 잡아본 적도 없고, 재산도 없는 노인입니다. 그저 나이 많은 행복한 사람으로 드리는 조언이에요. 당신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 아리야라트네 박사
사르보다야 운동 이끄는 ‘스리랑카의 간디’


아리야라트네 박사와 필자 안희경씨.

아리야라트네 박사와 필자 안희경씨.

스리랑카 최대 민중조직인 사르보다야 운동의 창시자이자 ‘스리랑카의 간디’로 불린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이던 1958년 스리랑카 오지 마을로 교육운동을 떠났다. 하지만 마을 상황은 그를 학교에 묶어 두지 않았다. 식수 설비, 화장실, 주택, 도로, 에너지원 확보 등의 일을 하며 마을의 자립을 이끌었다. 이렇게 시작된 사르보다야 운동은 50년이 지난 지금 1만5000마을로 확대됐다. 이들이 만든 무상 유치원만 해도 4335개가 넘는다. 1990년대부터 평화와 갈등 해소, 경제 개발 부작용 치유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는 타밀 반군과의 갈등이 남은 스리랑카 북부 마을에 역량을 집중한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참여불교와 간디 사상에 뿌리를 둔다. 아리 박사는 1969년 막사이사이상, 1996년 간디 평화상, 2007년 스리랑카 국민훈장 등을 수상했다.

그와 함께 주민들을 만나면서 부러움을 느꼈다. 그를 향한 주민들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스리랑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정부로부터의 탄압, 암살 위협, 경제적 압력도 받는다. 그럼에도 50여년 노동을 나누며 정신 수행을 함께하고 세상 경제 돌아가는 논리를 설명해 주며 살 길을 같이 찾아 온 지도자의 면모는 달랐다. 그와 주민들은 한 몸으로 붙은 듯 끈끈했다. 한국에서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새 얼굴들과는 달랐다. 오랜 시간 삶으로 함께해온 민중의 지도자는 한 마디의 인사말에서조차 강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듣는 이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이성을 차갑게 깨웠다.


<시리즈 끝>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